"이타(利他)의 외피를 두른 이기(利己)"
왜 누군가가 이상한 행동을 하면 “장애인이냐”는 소리가 나올까. …(중략)… 과연 그런 말을 입에 담는 사람들이 불편한 신체로 노력하며 사는 사람을 따라잡을 수나 있을까?
- 2012.4.2.
오늘 SNS를 살펴보다가 기분이 팍 상했다. 상식에 못 미치는 행동을 하는 사람을 가리켜 ‘장애인’이라고 표현하더라. …(중략)… 그 누구도 장애인이란 단어를 모욕적으로 사용할 자격은 없다. 장애인은 장애인이지 욕이 아니다.
- 2014.2.7.
방치된 SNS를 둘러보다가 10년도 더 전에 썼던 글을 발견했다. 그때의 나는 장애인에 대한 비장애인들의 몰이해에 깊이 상처받은 모양이다. 글의 내용이 퍽 호기로웠는데 스스로가 기특하기도, 귀엽기도, 안쓰럽기도 하다. 내 동생들이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롭길 바라면서 정작 자유롭지 못한 건 나였을지도 모르겠다.
한편, 낯선 것을 경계하는 건 본능이고, 폭력의 기저에는 두려움이 깔려있다.
경계심을 친숙함으로 치환해야 이를 극복할 텐데 그 과정이 결코 쉽지만은 않다. 그러나 경계심이 두려움으로, 두려움이 폭력으로 자라나기 전에 우리는 서로 대면하고, 손 내밀어야 한다. 손 맞잡는 것이 순간이더라도. 비록 완전히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첫 번째 말, “엄마, 저 사람 이상해.”
우리 가족은 늘 아껴야 했기에 여행은 고사하고 외식도 사치였다. 그때 아끼던 버릇이 지독히도 뼈에 스며서 부모님은 여전히 ‘좋은 것’을 죄책감 없이 갖질 못한다. 특히 아빠는 좋은 음식을 먹거나, 좋은 물건 사는 건 그토록 아끼면서 정작 당신 몸을 아끼지 않아 가족의 속을 태운다
최근에서야 우리는 가족여행을 서너 차례 다녀왔고, 가끔씩 외식도 한다. 그때마다 우리가 꼭 챙기는 준비물에는 사랑이의 손수건과 앞치마가 있다.
사랑이는 소근육 사용이 불편한데, 턱과 입 주변 근육 역시 그러해서 저작운동이나 연하운동이 잘 되지 않는다. 씹고, 삼키는 것이 어려우니 늘 침을 흘리고, 식사를 할 때면 늘 먹는 것 반, 흘리는 것 반이다.
다 큰 성인이 멍한 표정으로 침을 흘리고 있는 것이, 식당에서 엉성한 숟가락질로 입에 넣는 것보다 떨어트리는 게 많은 것이 타인에게 익숙하지 않은 모양새라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우리 가족은 외출할 때마다 한 손은 사랑이의 손을 잡고, 남은 한 손에는 손수건을 꼭 쥐고 걷는다. 그 손수건으로 수시로 사랑이의 입가를 닦는다.
사랑이와 밥을 먹을 때에는 반찬을 잘게 조각내어 사랑이의 밥그릇 위에 올려둔다. 그러면 사랑이는 숟가락을 움켜쥐고 반찬이 얹어진 밥을 떠서 제 입으로 가져간다. 밥과 반찬의 양을 조절하듯 여러 번 숟가락질을 반복하지만 신중한 양조절이 무색하게 음식은 사랑이 입에 들어가기 전에 사랑이가 입은 옷 위로, 혹은 식탁이나 바닥 위로 떨어져 내린다.
집에서야 갈아입힐 옷과 바닥을 닦기 위한 청소도구가 늘 준비되어 있지만 밖에서는 그렇지 않으므로 엄마는 사랑이 전용 앞치마를 여러 벌 사서 그걸 들고 다니며 식사 전에 사랑이에게 덧입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바닥에 떨어진 음식물이 많아서 엄마는 매번 식사를 마치고 나면 우리가 앉았던 테이블 아래로 기어들어가 휴지로 바닥을 훔쳐 닦는다. 사랑이가 흘린 음식 때문에 식당 종업원들이 평소보다 더한 수고를 하지 않도록.
나로서는 떨어지는 음식의 양과 별개로 스스로 숟가락질을 해서 밥 먹는 사랑이가 그저 야무지게 느껴지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가족의 시선이고, 남들에게는 그 모습이 다소 지저분하고, 심지어 불쾌하게 여겨질 수 있다는 걸 안다.
삼키지도, 뱉지도 못해서 흘리는 침이 내게도 마냥 예뻐 보이지 않는데, 남들에게는 어떻게 보일지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내 동생은 제 이름대로 사랑이 많아서 사람을 참 좋아한다. 고양이처럼 집안 창가에 서서 바깥에 행인을 구경하거나, 강아지처럼 산책 중에 만난 낯선 이를 기쁘게 반긴다. 어릴 때는 동네 산책을 나가 놀이터를 지날 때면, 함께 놀 줄도 모르면서 제 또래가 모여있는 곳에 저도 끼고 싶어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상대방보다도 먼저 놀라서 사랑이의 손을 잡고, 그 애를 내 쪽으로 잡아당기며 말렸다.
아주 어렸을 때, 둘째의 휠체어를 끌며 받았던 시선이 떠올라서, 막냇동생도 낯선 이에게 그런 시선을 받을까 봐, 어쩌면 더 심한 말을 들을까 봐 겁이 났다.
실제로 놀이터에서 만났던 그 애들은 겁먹은 표정으로 사랑이를 피하거나, 당황한 표정으로 어정쩡하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언젠가는 한 어린아이가 우리 사랑이를 한참 쳐다보다가 옆에 선 제 엄마에게 “엄마, 저 사람 이상해.”라고 말하는 걸 들어야만 했다. 나는 그 애를 향해 표정을 단호히 찡그리지도, 인자하게 웃지도 못한 채 급히 사랑이를 데리고 자리를 떠났다.
내가 사랑해 마지않는 내 동생이 타인에게 미움받을까 염려하느라 그 애가 사람을 좋아하는 게 민폐라도 되는 냥 사랑이의 그 순수한 호의를 말리기에 급급했다.
누군가는 사랑이의 그런 모습을 보고 “더럽다.” 혹은 “이상하다.”의 수준을 넘어 몰상식의 영역으로 이해할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손쉽게 ‘장애’라는 특성을 비하의 영역으로 이해할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내가 사랑이를 사랑한들 세상 모두에게 사랑이의 모든 면면을, 그 모습 그대로 예쁘게 봐달라고 강요할 수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사랑이가 제 의지가 아닌 일로 누군가에게 미움받거나 멸시당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 우리 가족은 자꾸만 손수건을 챙기고, 외식 후에 자리를 치우고, 사랑이의 순수한 호의를 알면서도 아이를 저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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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말, “예인아, 네 인생을 살아.”
앞선 이야기에서 사랑이는 낯선 이들에게 다가갈 준비가 되었는데, 되려 내가 그 아이를 말렸듯 장애인을 바라보는 세상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한 건 오히려 나였다. 지금도 마찬가진데 심지어 그 정도는 더 심해졌다. 어릴 때에는 세상의 시선에 움츠러드는 게 전부였다면, 지금은 생존에 대한 불안이 더해졌기 때문이다.
내 동생, *타인의 애정에 기대어야만 살 수 있는 사랑이는 가족 없이 생존할 수 있을까? 가족으로서도 그 애를 돌보는 게 쉽지 않은데 직업윤리나 경제적 보수에 기대어 기꺼이 흐르는 침을 닦아가며 그 애를 어여삐 여길 수 있을까? 만약 그게 정말 불가능한 일이라면 우리 사랑이는 언젠가 제 몫이 될 애정 없는 돌봄에 적응할 수 있을까?
엄마는 늘 사랑이보다 하루를 더 사는 게 소원이라고 말씀하신다. 글쎄, 엄마가 사랑이보다 하루를 더 사는 것보다 내가 그 애의 마지막 나이보다 여덟 해를 더 사는 게 현실적이지 않을까?
‘부모 사후에 동생을 어떻게 돌볼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필연적이었다. 어릴 때에는 막연히 ‘내가 동생을 데리고 살아야지!’라고 생각했지만 나이를 먹으며 현실을 직면할수록 그게 막연한 상상에 불과했다는 걸 깨닫는다. 자가돌봄도, 시설보호도 내게는 아득할 뿐만 아니라 아찔한 일이다.
20대 초반에는 당연히 내가 미래에 결혼도 하고, 출산도 할 거라고 생각했다. 어느 날 내가 막연히 상상하는 미래의 가족구성에 사랑이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때의 충격과 죄책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서 한 친구에게 그 고민을 털어놓았다. 스스로를 ‘어린 나이에 고난을 겪고 일찍 철든 어른’이라고 생각하는 자의식 과잉상태에서도 나보다 성숙하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는 친구였다. 그녀는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예인아, 네 인생을 살아.”
희한했다. 그 말이 반갑지 않았다.
동생을 돌보려는 책임감을 좀 내려놓으라는 말이었고, 동생보다 나를 위하는 말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그토록 바라던, 동생이 아닌 나를 위한 말.
가벼워져야 할 어깨가 되려 무거워지는 걸 느꼈고, 돌연 뭉근한 서글픔이 심장께를 눌렀다. 그렇다고 “네가 동생 데리고 살아야지!”라는 말을 기대했던 건 아니었다. 나도 내 마음을 몰라서 결국 대화 주제를 돌렸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서글픔은 ‘내가 이해받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에 좀 더 가까운 것이었다. 나는 그 말에 ‘사랑이를 시설로 보내야 내가 인생을 살 수 있다.’는 전제가 깔려있다는 걸 알았고, 거기에 동의할 수 없었던 것 같다. 그 애를 직접 돌보는 일에서 한걸음 물러난다면 몸이야 편해질지 몰라도 마음은 편할 수 있을까? 어쩌면 나는 그 애에게 몸이든 마음이든 종속될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걸 확인했나 보다. 그래서 내 어깨가 더 무거워졌을지도 모른다.
사랑이를 돌보는 문제는 내가 선심을 써서 돌봄을 제공할 것인가, 내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 시설로 보낼 것인가를 양자택일하는 문제가 아니다. 직접 돌보기를 결정한다고 해서 선심을 쓰는 게 아니고, 시설에 보내기로 했다고 해서 그 애를 버리는 것도 아니다.
무엇을 선택하든 나는 그 애를 외면할 수 없을 테고, 그 선택 안에서 사랑이가 행복할 수 있도록 내가 할 수 있는 무언가를 해낼 것이다. 사랑이는 내게서 떼어낼 수 없는 삶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다만, 그 과정을 나 홀로 감당할 수는 없을 것이다. 주변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할 것이다.
‘사람인(人)’자가 서로 기대어 선 두 사람을 형상화한 글자라는 설이 있다. 사람이 서로 돕고사는 존재라는 뜻을 내포한 글자라는 것이다. 나는 사랑이의 가족으로서 최선으로 그 애와 기대어 살아갈 테지만 그 애의 모든 순간에 내가 함께할 수 없다는 걸 안다.
그러므로 나는 사랑이에 대한 세상의 이해를 이토록 간절히 바랄 수밖에 없다.
다만 이해(理解)란, 이타(利他)의 외피를 두른 이기(利己)다. 우리는 상대방이 되어보지 않고서는 결코 서로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이해는 내 경험과 관점의 반영이므로 그 범주는 내가 디뎌본 삶의 테두리를 넘지 못하기 때문이다.
내가 나보다 성숙한 친구로부터 애정 어린 조언을 듣고도 서글픔을 느꼈던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평생을 서글퍼만 할 것은 아니다. 서로가 더뎌본 삶의 영역을 넓히다 보면 우리의 테두리는 언젠가 맞닿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가족만큼 그 애의 삶에 근접해 본 사람은 없기에 그 애를 가족보다 어여삐 여길 사람은 없을지도 모른다. 그 애의 말랑말랑하고 사랑스러운 면을 이토록 선명히 보는 이는 더 이상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가족 역시 사랑이의 삶의 테두리에 근접했을 뿐, 스며든 대상은 아니라는 걸 기억해 본다.
어쩌면, **결핍에서 무언가가 피어나듯 애틋함이나 애정 역시 서로의 테두리가 닿지 않는 그 간극에서 피어나는 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게 외피라 한들 타인의 따듯함을 거절할 이유가 있을까, 그들의 심성을 의심할 이유가 있을까? 차라리 덮어놓고 믿는 게 행복에 가까워지는 길 아닐까?
나는 여전히 사랑이의 마지막 생애보다 여덟 해를 더 살기를 바라지만, 이제는 또 다른 바람을 더해본다.
사랑이가, 그리고 사랑이와 같은 혹은 다른 누군가가, 소위 ‘단정한’ 모습이 아닐지라도 그게 그이의 의지나 잘못이 아니라는 걸 모두가 애써 떠올리기를, 조용히 피해 갈지언정 불쾌감을 아무런 주저함 없이 드러내지 않는 세상이 되기를.
그리고 나와 관계없는 사람과의 간극에서 사랑을 피워내는 이기(利己)를 가진 사람들이 늘기를, 그래서 사랑이가 나 말고 다른 사람들과도 사람인(人) 자를 그리며 살 수 있기를.
* 3화(가족의 중심, 두 명의 천사) 참고
** 5화(결핍이 내게 준 것들)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