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의 말

"들리기보다는 보이는 것"

by 박예인


우리 사랑이는 정말 예쁘다. 아주 그냥 예뻐 죽겠다.

생긴 것 하며, 하는 짓 하며……. 겨울에 태어나서 그런가 표정이나 애교가 사람 애간장을 눈 녹이듯 녹인다.

아이를 키울 때 가장 아쉬운 게 너무 빠른 시간 때문에 한창 예쁠 때의 모습을 금세 놓치는 거라던데, 우리 사랑이의 시간은 남들보다 천천히 흘러서 그 예쁜 모습을 20년이 넘도록 보고 있다.


아이의 첫걸음을 보며 부모가 느끼는 그 벅차오름, 감동, 기쁨, 환희 같은 것들을 사랑이는 가족에게 꾸준히 선물한다. 글쎄, 사랑이의 느린 시간이 절망적으로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가끔은 그것이 이렇게 축복이 되기도 한다는 걸 사랑이가 주는 선물을 받을 때마다 떠올린다.


옛 속담에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예쁘다고 한다.’라는 말이 있다. 최근에는 틈만 나면 핸드폰 사진첩을 열어 자식자랑을 하는 직장상사나 친구에게 사회생활을 위해 겉으로만 웃어준다는 내용의 밈도 한참 떠돌았었다. 예나 지금이나 자식자랑이 지나치면 팔불출 소리를 듣는다.

나는 애를 가져본 적도 없는데 자꾸만 주변인들에게 애자랑(사랑이 자랑)을 하고 싶어 몸이 근질거리곤 한다. 그때마다 앞서 말한 인터넷 밈을 떠올리며 꾹 참지만, 오늘만큼은 여러분과 함께 사랑이의 선물 상자를 풀고 싶다.





사랑이는 언어적 표현이 불가하고, 그걸 이해하는 것도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가족은 종종 그 애에게 말을 걸고, 무언가를 가져다 달라고 부탁하기도 한다. 그러면 사랑이는 상대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일단 간 다음, 아무거나 덥석 집어 건네준다. 보통은 어림도 없는 걸 집어오는데 나는 포기하지 않고, 애초에 의도했던 그 물건을 조금 더 가까이 가리키면서 반복적으로 가져다 달라고 요청한다. 그렇게 가까이, 가까이, 물건을 가리키다 보면 되려 내가 사랑이보다 그 물건에 가까이 서게 된다. 심지어는 내가 그 물건을 짚으며 다시 사랑이에게 물건을 건네달라고 요청하는데, 사랑이는 자꾸만 그 주변에 애꿎은 물건만 골라 내게 건넨다.


그러다 보면 내 속이 터지는 만큼 사랑이도 짜증이 날 법도 한데, 그 애는 그걸 하는 내내 생글생글 웃는다. 아마 그걸 장난이라고 생각하거나, 무언가 해내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끼지 않으니 그저 즐겁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 같다. 그 해맑은 표정을 보면 나는 곧 녹아내려서 물건 받기는 포기하고, 물건 대신 사랑이의 양볼을 덥석 잡고, 얼굴 이곳저곳에 연신 뽀뽀를 하거나 껴안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사랑이는 나를 마주 안으며 더 크게 웃는다.


그러면서도 사랑이는 제가 원하는 물건만큼은 귀신같이 찾아내는데, 예를 들면 리모컨이다 휴대폰이 있다.

사랑이도 나이를 먹은 건지, 현대 문명에 적응한 건지, 더 이상 장난감을 가지고 놀지 않는데 그렇다고 남들처럼 제 맘대로 외출을 하거나 취미생활을 하지도 못하니 그 애가 하는 놀이는 비닐을 찢거나(그 애는 유난히 비닐의 감촉을 좋아하는데 내게는 이것도 킬링 포인트다.) TV나 핸드폰으로 유튜브를 시청하는 것이 전부가 되었다.


뭘 가져다 달라는 소리를 그렇게 못 알아듣다가도, ‘핸드폰’이나 ‘리모컨’이라는 단어는 기가 막히게 알아들어서 소파 틈에 숨겨져 있던 것도 찾아서 가져온다. 그리고 제가 원하는 채널을 틀어줄 때까지 몇 번이고 반복해서 리모컨을 다시 건넨다. 심지어 핸드폰으로 유튜브를 볼 때에는 그 작은 주먹 쥔 손에서 검지만 펴 들고 그 빨간색 아이콘을 찾아 콕 찍어 누르고, 화면을 위아래로 스와이프하며 제가 원하는 영상을 찾기도 한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얼마나 기가 막힌지 모른다.


먹기도 잘 먹는데, 다 흘리면서도 꼭 스스로 숟가락질을 하려 드는 모습도 귀엽고, 과자 중에 유독 홈런볼을 좋아하는 것도 귀엽다. 같이 편의점에 가면 그 애는 귀신같이 과자 코너에서 홈런볼을 집어 드는데 그런 모습이 가끔은 신통방통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워낙 홈런볼을 좋아해서 번들로 그걸 사다 놓기도 하는데, 그때마다 그걸 죄다 꺼내 한번에 먹어치우는 바람에 꼭 한 개만 주고 나머지는 어딘가 숨겨놓아야 한다. 과연 *보물 찾기의 달인들답게 숨기는 사람도, 찾는 사람도 보통이 아닌 게, 사랑이는 매번 숨겨놓은 과자를 찾아내고 엄마는 매번 과자를 숨길 새로운 장소를 찾아낸다.

냉장고 위나 부엌 찬장은 진작에 털린 과자 창고기 때문에 사랑이는 틈만 나면 나를 부엌으로 끌고 가서 제 손으로 내 팔을 잡고, 냉장고 위쪽이나 부엌 찬장을 향해 들어 올린다. 과자 달라는 말이다. 하나 더 우스운 건, 고 귀여운 게 꼭 그럴 때는 엄마가 아닌 나를 데려가서 그러는데, 엄마보다 내가 저한테 약하다는 걸 아는 거다.


배가 고프면 부엌에서 밥그릇이나 밥주걱을 찾아들고 오고, 목이 마르면 컵을 들고 온다. 한 번은, 목이 말랐는지 나를 정수기가 있는 부엌으로 데리고 갔다. 나는 예사처럼 과자를 찾아달라는 건 줄 알고, “간식 없어!”하고 모른 체하며 되돌아오기를 반복했더니 결국 저 혼자 식기건조대에서 컵을 꺼내 정수기에 대고 물을 따라 마시기도 했다.

물론 컵에 담긴 물의 양보다 바닥에 흘린 물이 더 많았지만 사랑이가 행동을 모방할 줄 안다는 게 신기하고, 기특해서 벌떡 일어나 “목이 말랐어? 언니가 못 알아들어서 미안해!”를 외치며 그 애에게 달려가 다시 컵에 물을 따라주고 머리를 수백 번 쓰다듬었다.


한편, 사랑이는 제 욕구뿐만 아니라 가족에 대한 애정을 섬세히 표현할 줄도 안다.

사랑이는 가족이 한데 뭉쳐있지 않으면 일종의 불안을 느끼는 것 같다. 가족 중 누군가가 방문이라도 닫고 있으면 꼭 문을 열고 들어와 한참 애교를 부리다가 거실 쪽으로 나가자며 손을 잡고 끌거나 힘을 써서 밀어내려고 한다. 또, 외출할 때 가족 중 한 명이라도 현관 밖으로 나오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으려 버티다가 모든 가족이 현관 밖에 나오고 나서야 걸음을 뗀다. 심지어는 누군가 뒤처지면 그가 따라오지 않을까 봐 걱정이라도 되는지 한참을 버티고 서서 기다린다.


아빠와 나는 각자 일 때문에 주중에는 회사 근처에서 지내고, 주말에 본가를 오곤 했는데 우리가 본가에 오는 금요일 밤이면 그 애는 커다란 선물꾸러미라도 받은 어린아이처럼 좋아서 어쩔 줄을 몰라했다.

온몸이 바르르 떨릴 정도로 힘을 주고 양팔은 팔꿈치를 접고, 주먹을 쥔 채 날갯짓을 하듯 앞뒤로 흔들뿐만 아니라 콧잔등이 잔뜩 구겨지도록 크게 웃었다. 그런 뒤에는 엉금엉금 다가와서 꽉 안기는 것이다. 그건 사랑이만의 환영 퍼포먼스였다. 세상 누구도 그토록 나를 환영해 주는 존재는 없을 것 같아서 고맙고, 기뻤다.


그런데 나름의 이유로 몇 주씩 본가에 못 가다가 오랜만에 가게 되면, 되려 그 환영의 정도는 시들해졌다.

자주 볼수록 서로 부딪힐 일이 많아지는 것을 두고, “가까울수록 가끔 봐야 한다”는 우스갯소리도 있지만, 사랑이는 가끔 볼수록 소원하고 자주 볼수록 친근했다. 마치 본능적으로 저를 향한 애정과 관심의 정도를 측정해서 상대방과의 거리를 유지하는 것처럼. 제가 받는 애정의 양을 느끼고, 그게 클수록 크게 보답하는 것처럼.

최근에 나는 다시 본가에서 지내고 있는데, 사랑이는 내 껌딱지가 되었다.

그 애는 내가 다시 집을 나갈까 봐 걱정이 되는지, 복지관에 다녀오면 꼭 나를 찾는다. 엄마 말에 따르면, 내가 외출해서 없을 땐 마치 나를 기다리는 것처럼 꼭 현관 앞에 앉아서 한참을 있는단다. 엄마는 그 모습을 찍어 내게 보내기도 했다.


함께 외출했다가 돌아올 때, 집에 오르는 계단에서 혹시라도 사랑이가 넘어질 때를 대비해 내가 그 애 뒤에 서려고 하면 사랑이는 절대 계단을 오르지 않는다. 내가 앞장서야만 제가 뒤따라오는 것이다. 마치 저만 올려 보내고 내가 갈까 봐 걱정하는 것처럼.

만약 내가 현관에서 택배를 챙기거나, 신발을 정리하느라고 미적거리면 그 애는 집에 곧바로 들어가지 않고 내 팔을 잡고 집 안쪽으로 잡아 끈다. 내가 들어오지 않고 다시 나갈까 봐 걱정하는 것처럼.


사랑이의 이 모든 행동은 가족에 대한 애정을 보여준다. 또, 한편으로는 꼭 가족이 제 옆을 떠날까 염려하는 것처럼 느껴져서 나는 집을 드나들 때마다 새삼 애틋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사랑이는 언어를 사용하지 못할 뿐 누구보다 또렷하게 제 의사를 보이고, 사랑을 말한다. 배고플 때 밥그릇을 들고 오고, 내 집에 온 가족을 그토록 격렬히 환영하는 방식으로.


사랑이의 행동은 말의 대신이라는 걸, 거기에는 가족을 향한 사랑이만의 따듯함이 묻어있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그 애의 말은 들리기보다는 보이는 것이므로 유독 찬란하다.

이 세상에 나에게 이보다 찬란한 말을 건넬 수 있는 이가 있을까?

그 고마움에 나는 사랑이의 방식으로 그 애에게 대답하려고 노력한다. 그 애를 가만히 바라보고, 머리를 쓰다듬고, 한껏 껴안고, 손과 발을 조물 거리며.


지난 화에서 남들의 말에, 완전하지 못한 이해에 고뇌하고 흔들리던 내 모습을 고백했었다. 그러나 타인의 모든 말들이 악의를 가진 것은 아닐 테다. 그들이 나를 부족히 이해하는 만큼, 나도 그들의 의도를 부족히 이해하는 것일지 모른다.

어차피 우리가 서로를 완벽히 이해할 수 없는 존재라면 그 말의 의도를 곱씹지 않고 받아들이는 연습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세상이 내 의도를 곱씹거나 곡해하지 않을 거라고 믿으면서 나도 세상에 이야기해 본다. 비록 팔불출 소리를 듣더라도. 우리 애, 진짜 예뻐요.



* 2화(말꾸러기 내 동생)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