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꿈꾸다

"무슨 꿈을 꾸었니?"

by 박예인


아기가 잠들었을 때 우리는 쉽게 사랑을 느낀다. 사락 감긴 눈꺼풀 끝에 길게 뻗어 나온 속눈썹, 보드랍고 말랑한 볼살, 약간 벌어진 입술, 숨 쉴 때마다 오르내리는 가슴팍, 곤하다가 한순간 소스라치는 몸짓. 어느 하나 예쁘지 않은 구석이 없어 한참이라도 그걸 보고 있을 수 있다.


내가 사랑하는 이가 자다가 한숨을 폭 쉬거나, 살금 웃으면 도대체 무슨 꿈을 꾸고 있는지 궁금해진다. 사랑이가 말을 할 수 있다면 꼭 하나 묻고 싶은 건 그런 거다.

무슨 꿈을 꾸었니? 어떤 재밌는 꿈을 꾸었기에 그리 예쁘게 웃니?




사랑이가 웃는 게 좋다. 보기에도 듣기에도 좋아서 사랑이가 웃는다는 이유만으로 나는 행복해질 수 있다.


대부분의 경우 사랑이가 웃는 이유는 금방 알 수 있는데 선행된 행동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가족들이 자기에게 집중해서 놀아줄 때 사랑이는 웃는다. 그 애를 잡으러 가는 흉내를 내거나, 간지럼을 태우거나, 까꿍놀이를 하듯 이불을 뒤집어 씌었다가 들추며 놀란 표정을 짓거나.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얼마 없어 하루 종일 심심할 그 애에게 휴대폰 화면 대신 장난스러운 가족의 표정을 보여주는 게 그 애에게는 더없이 행복한 일이다.

또 다른 예로, 사랑이는 물체가 날아가거나, 떨어지거나, 터지거나, 망가지거나, 통통 튀는 걸 좋아한다. 그걸 좋아하는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걸 보면 우스워한다. 파티의 폭죽처럼 시끄럽고 요란하지만 즐거운 행위쯤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그래서 내가 실수로 뭘 떨어트리거나, 자기가 보던 영상에서 무언가가 날아가는 장면이 나오면 깔깔거리고 웃는다. 진짜 말 그대로 '깔깔' 웃어서 다른 일을 하다가도 그 애를 쳐다보게 되는데, 그 웃는 모습이 어찌나 천진난만한지 같이 웃지 않을 수가 없다.


같은 이유로, 사랑이는 어릴 때부터 탱탱볼 가지고 놀기를 좋아했는데, 나나 아빠랑 캐치볼 하듯 공을 주고받는다.

날아오는 공을 잡지 못하는 사랑이를 배려해서 우리가 바닥에 공을 굴려 보내면 사랑이는 자기 근처에 다가와 멈춘 공을 집어 들고, 한참을 좋아하다가 다시 그걸 또 던진다. 방향을 조준할 줄 모르기 때문에 그 공은 엉뚱한 곳에 떨어지곤 하는데, 그걸 주우러 몇 번 다녀오면 나는 금방 지친다. 하지만 사랑이는 절대 지치지 않는다.

가끔은 조준되지 않은 공에 맞을 때도 있어서, 요즘엔 손수건이나 스티로폼처럼 맞아도 아프지 않을 가벼운 것으로 던지기 놀이를 한다. 놀이도구가 바뀌었어도 어쨌든 그건 사랑이가 가장 좋아하는 놀이다. 그 놀이를 할 때 사랑이가 어떻게 웃는지 본다면 그 사실을 모를 수가 없다.


사랑이의 모든 행동과 표정은 솔직하고 직관적이다. 나는 그 애와 말을 나눌 수 없지만 사랑이의 의도를 파악하는 게 누구든 말을 할 줄 아는 사람의 의도를 파악하는 것보다 쉽다고 여겨질 때가 있다. 물론, 아주 디테일한 영역(자꾸만 리모컨을 가져오는 사랑이가 원하는 만화가 도대체 무엇인지와 같은)에서는 쉽지 않지만.


그런 사랑이를 보며 말이란 '감정'보다는 '필요'의 영역에서 유용한 도구라는 걸 알게 됐다.

감정은 추상으로 귀결되나 필요는 실체로 귀결된다. 때문에 내가 지금 당신에게 기대하는 '태도'를 설명하기보다 '행동'을 요구하는 것이 더 쉬운 법이다. "나를 사랑해 주세요."보다는 "나를 안아주세요."가 상대로 하여금 다음 행동을 결정하도록 하는데 효과적인 것처럼.


나는 워낙 강성 문과에 F형 인간이다. 말을 잘하는 편이고, 직업상 대화를 통해 내 감정을 설명하거나 상대의 감정을 읽는 데 익숙하다. 그래서 말로 감정을 표현하는 게 그토록 어려울 수 있다는 걸 몰랐다. 그 무지 때문에 나는 종종 관계에서 쉽게 상처받았다.

*타인에게 내 의도를 완전히 이해받지 못한다고 느껴 좌절한 것도 어쩌면 같은 이유였을 것이다. 말이라는 도구로 감정을 전달하고 이해하는 일이 얼마나 복잡한 시도인지 미처 인지하지 못했던 것이다.

내가 상처를 잘 받으니, 남들도 그러리라는 생각에 조심하면서 눈치도 좀 늘었는데 덕분에 상대의 언어적 표현과 비언어적 표현이 어긋나는 순간을 자주 감지한다. 그런 순간에는 상대의 진짜 의중을 헤아리려고 눈과 머리가 바삐 굴러간다. 그 와중에 표정변화는 없으려고 무진 애를 쓴다. 그러다 보면 쉽게 피곤해진다.


사랑이의 의도를 다른 이의 의도보다 쉽게 알아챌 수 있다고 한 것은 사랑이는 오로지 비언어로만 표현하기 때문이다. 어느 하나 상충되는 것 없이 온전히 전달되는 그 애의 비언어적 표현만큼 믿음직하고 편안한 대화는 없다. 사랑이와의 관계에서 내가 의심해야 할 것은 없다.


복잡한 사회, 복잡한 인연, 복잡한 이해. 그것들에 뒤섞여 살다가 사랑이의 천진난만한 웃음소리를 들으면 이렇게 편안할 수가 없다. 그 애가 곧 나의 쉼이 된다.

그런 마음의 위안 때문일까? 밤중에 찾아온 편두통에 고생하다가 사랑이 옆에 누워서 그 애를 껴안거나 그 애 손바닥을 가져다 내 이마에 대면 두통이 조금 가라앉는 느낌이다.


비언어적 표현에 능통한 사랑이는 다른 사람의 그것을 캐치하는 능력도 뛰어난 모양이다. 저를 좋아해 주는 사람이나 선량한 사람을 금세 알아본다.

내가 혼자 살 때, 집에 얼마나 자주 오는가에 따라 그 애의 환영의 정도가 달랐던 것처럼. 그 애는 자신을 향한 애정과 관심의 정도를 측정할 줄 아는 것 같다.


사랑이는 기본적으로 사람을 좋아하지만 유독 마주칠 때마다 좋아서 어쩔 줄을 모르거나, 처음 봤는데도 막무가내로 다가가려 드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런 분들은 하나같이 다가오는 사랑이를 기꺼이 같이 반겨주셨다.

나는 그 순간, 그분들의 비언어적 표현 또한 사랑이처럼 순수하고 숨김없는 것이라고 믿고 싶다. 사랑이의 순수한 표현이 사랑이가 사는 세상을 물들인다고 생각한다.


나는 교회를 열심히 다니는 편은 아니지만 언젠가 그런 기도를 했다. 사랑이에게 필요한 때에 필요한 사람들을 허락해 달라고. 사랑이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사람이 비단 신변처리를 해주는 사람만은 아닐 것이다. 그 애가 걸어 다니면 아는척해주는 동네어르신들, 사랑이가 좋아하는 과자를 기억하는 슈퍼 사장님, 어느 날 우연히 마주쳤을 뿐인데 안기려 드는 사랑이를 주저 없이 마주 안아주던 꽃집사장님.

사랑이는 그들의 인사에 마주 화답할 줄은 모르지만 그들의 선의는 느끼는 것 같다. 그 애가 신이 나서 동네를 산책할 수 있는 건 그런 분들 덕분이다.


가끔 낮잠 자던 사랑이가 피식-하고 웃는 순간을 본다. 평소와 달리 그 순간에는 사랑이가 웃는 이유를 알 수 없으니 애가 탄다. 사랑이는 무슨 꿈을 꾸었을까?

사랑이가 꾸는 꿈을 알 수는 없지만 꿈속에서 행복한 그 애가, 사는 내내 행복했으면 좋겠다. 인간다운 삶, 그리고 인간과의 삶을 살기를 바란다.


사랑이뿐만 아니라 나도, 여러분도.

서로의 의중을 조금 덜 의심할 수 있기를, 관계의 피곤함을 덜어내는 순간이 오기를, 오직 순수한 선의와 즐거움을 느끼고 베풀기를. 그래서 모두가 함께 사는 내내 행복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