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선택"
우리의 시간은 관성처럼 흐른다. 모두에게 공평한 그것을 얼마나 값지게 사용하는가는 온전히 개인의 몫이다. 유한한 시간을 겪는 우리에게 모든 순간이 소중하겠지만 저마다 간직하고 있는 유독 찬란한 때는 제각각이다. 내게는 그게 오늘이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내 일생에 가장 찬란한 지금을 티끌 없이 기억하고 싶어서 그동안 짊어졌던 원망, 불안, 우울 등을 글로 모두어서 속에서 바깥으로 흘려보낸다. 내 속에서 나가는 것이 더 이상 날카롭지 않기를 바라며.
그렇게 이 이야기는 써졌다.
지금의 나보다 어렸던 그때의 부모님을 원망하는 대신, 품어본다.
언제까지나 어린 내 동생을 보며 부족한 것 대신, 채워지는 것을 떠올려본다.
영원히 못 미더울 나 자신을 힐난하는 대신, 꼭 하나 칭찬할 거리를 찾아본다.
나의 부모는 영원히 청년이 아니고, 나의 사랑이는 영원히 진짜 아기가 아니다. 모두가 그렇듯 나 또한 시간의 관성 속에서 흐르고 있다. 더 흘러서 큰 바다를 만나기 전에, 그렇게 우리가 윤슬로 산산이 흩어지기 전에, 나는 이 좁은 강물가를 답답해하기보다 충만히 여기겠다. 나와 얽혀 흐르는 물방울들을 사랑하련다.
작년 말, 퇴사를 했다. 많은 배움과 고통을 주던 일이었다. 내가 사랑하던 일이었다. 그러나 사랑에도 쉼이 필요한 법이다. 순전히 나를 위한, 휴식을 위한 선택이었다.
*빛이 없는 곳에 여유도 없다는 것, 그건 몇 년이 지나도 유효한 모양이다. 일은 내게서 사랑은 물론, 여유도 가져갔고 어느새 내 맘속에 또다시 어둠만 들어찼다. 마침내 퇴사를 결정하고 '드디어 쉴 수 있다'는 해방감에 마음속에 빛이 한줄기 내리쬐는 것 같았다. 그 사이로 여유가 찾아왔다. 덕분에 생각지도 못한 내 가족을 둘러볼 수 있었다.
돌아보니 엄마, 아빠는 환갑에 들어서고, 내 동생이 성인이 된 지도 수년이 흘렀다.
정 없이 흐르는 시간이 번득여서 모두가 건강한 지금에 감사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보기에 여전히 든든한 내 부모가 10년, 아니 그 절반만 지나도 누군가에겐 노인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스스로 어른인 척했을 뿐 결국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걸 깨달은 게 오래지 않았는데, 진짜 어른이 되려면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한 것 같은데, 내게 남은 시간이 10년이 채 되지 않는다면?
덜컥 겁은 나는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미리 대처할 방법을 모르겠다. 결국 나는 여전히 어린 채로 그날을 맞이할 것 같다.
그래도 확실한 것 한 가지는, 전전긍긍하느라 얼마 남지 않은 행복을 놓쳐버릴 수 없다는 것.
지금이 아니면 할 수 없는 것들을 삶 이곳저곳에 처박아둘게 아니라, 꺼내서 먼지 탈탈 털고, 감상도 하고, 만져도 봐야 한다는 것.
그래서 올해에 나는 본가로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지난 3월에는 엄마, 랑이와 함께 제주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종종 일찍 퇴근한 엄마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가까운 곳으로 외출한다. 평범한 어느 날에 바쁘게 일하고 있을 아빠에게 용건 없이 대뜸 문자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평소라면 민망함에 치를 떨며 생각해 놓고도 애써 잊었던 것들을 조금씩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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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이야기는, 9살 엄마는, 사랑이에 대한 이야기 같지만 사실은 나에 대한 이야기다. 비장애 형제가 겪는 흔한 갈등을 이야기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내가 겪은 개인적 갈등에 대한 이야기다.
애초에 나는 사랑이 이야기를 쓸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타인을 완벽히 이해할 수 없는 건 사랑이와 나 사이에도 마찬가지여서 나는 사랑이의 입장을 다 모른다. 이 글에서 드러난 사랑이의 모든 '의도'는 그저 내 '추측'일 뿐이다.
나는 사랑이나 세상 모든 비장애형제를 대신해서 이야기할 능력이나 권리가 없다.
앞에서 말했듯 이 글은 지난했던 나의 부정적인 감정들을 덮어내려고, 스스로를 치유하려고 시작한 글이다. 이 글에서 밝힌 깨달음은 완성형이 아니라 진행형이다.
그러므로 고백한다. 내가 사랑이를 특별히 아끼고 사랑하는 건 내가 착한 언니라서가 아니라 내 부모의 희생 덕분임을 밝힌다. 특히, 엄마의 노력 덕분이라고.
사랑이가 왈칵 구토를 할 때 그 뒤처리를 하던 사람은 내가 아니라 결국 엄마였던 것처럼 모든 결정적인 순간에 나는 '9살 엄마'가 아니라 그저 '언니'였다. 9살 엄마는 진짜 엄마를 대신할 수 없다.
내가 사랑이를 전적으로 예뻐할 수 있는 건 그 모든 뒤치다꺼리를 결국 다른 사람, 그러니까 우리 엄마가 해냈기 때문이다. 나는 어쩌면 그 뒤에 숨어서 사랑이의 예쁜 모습만 고개를 빼꼼 내밀고 봐온 게 전부일지도 모른다.
언젠가 내가 진짜 9살 엄마가 되어야 한다는 걸 잘 안다. 그날이 더 이상 멀기만 한 일이 아니라는 것도. 사랑이의 모든 일거수일투족을 내가 전적으로 책임질 날이 온다면, 고백하건대, 나는 어쩌면 지금보다 사랑이에 대한 사랑을 덜 느낄지도 모른다.
이 글은 그때의 나를 위해 쓰였다. 내가 얼마나 사랑이를 예뻐했는지, 내가 얼마나 사랑이에게 감사했는지, 내가 사랑이에게 무엇을 받아왔는지 보라고.
내가 언젠가 사랑이를 지금보다 덜 예뻐한다면 그건 사랑이 때문이 아니라 내 체력 탓이라고. 그러니 죄 없는 사랑이를 함부로 대하지 말라고. 내 몫을 사랑이에게 넘기지 말라고.
아, 이 고백은 내 ****구린 마음 저장고 가장 깊은 곳에 있는 마음을 꺼내보인 것이다. 가장 취약한 마음을 꺼내 보임으로써 나는 오늘 조금 더 컸다고 감히 믿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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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구린 마음 저장고 안에 감히 꺼내보이지 못할 마음들을 품고 산다. 그걸 모두가 꺼내 보일 필요는 없다. 다만, 남몰래 품은 그 마음덩어리가 은근히 걸리적거려 내내 불편한 이들에게 내 글이, 내 고백이 위로로 닿기를 바란다.
당신의 마음이, 우리의 마음이 조금 부끄럽더라도 잘못은 아닐 수 있다고. 잘못이더라도 더 나은 방향으로 풀어낼 수 있다고.
내가 나를 토닥이다 보면 아주 큰 바다를 만나기 전에 내가 흘러가는 물길의 안온함을 느끼게 될 거라고. 그러면 큰 바다가 되어 소금기에 절여질 때 짠기를 달게 참아낼 수 있을 거라고.
좁아터진 바위틈에서 시작해 냇가로, 강물로……. 우리는 서로를 부둥켜안고 흐른다.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내가 어느 바위틈에서 스며 나오게 될지는 스스로 결정할 수 없는 법이다. 다만, 흐르는 내내 불행할지, 행복할지는 어쩌면 선택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너랑 내가 함께할 수 있는 것은 그런 선택일 것이다.
모든 흐르는 사람들에게 응원의 마음을 담아 이 글을 보낸다.
* 3화(가족의 중심, 두 명의 천사) 참고.
** 6화(그 발에라도 입 맞추겠네) 참고.
***7화(타인의 말들) 참고.
****4화(오름사랑)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