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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비 Apr 14. 2021

고민은 사서한다.

고민은 나를 고민 안 하게 하는 지점으로 가게 해준다.

일을 마무리하니 벌써 점심시간이다.

사무실 아래 김밥집에 김밥 2줄을 주문하고 서류들을 챙겼다.

생계를 위해 40분 거리 떨어져 있는 초등학교 개인상담에 이력서를 넣어야 한다.

단기 상담인데 보수가 꽤 좋다.


김밥을 오물거리며 음악을 틀었다. 햇살은 따스하고 맑은 하늘은 어느 때보다 청명했다.

시골길은 한가하니 운전하기 좋고

꽃구경 나온 상춘객처럼 설레이기도 했다.


하지만 기분 좋은 것도 잠시,

순간 걱정이 들었다.

40분 거리가 꽤 멀다.

오전에 일을 하고 40분을 왕복하면 길에서 거의 2시간 가까이 걸리고, 사무실에 일이 생기면 또 사무실까지 가야 하고,

오전 일이 늦어진다면 빨리 달려야 한다. 그렇다면 마음이 급해지고 사고라도 나면?

비가 많이 오거나 태풍이 분다면,

겨울이면 이런 시골까지 오려면 눈이 많이 올 텐데.

걱정에 걱정이 앞섰다.


도착하자마자

교무실에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뭔가 이상하다."무슨 일 때문에 오셨어요?" 정말 이상하다.

서류접수 기한이 남았을 텐데 묻지도 않고 이상한 표정은 뭐지?

"서류 접수하러 왔는대요?"


"네? 접수 끝났는데  요..." 말끝을 흐리신다.

"오늘까지 아닌가요?"

"오전 12시까지예요."

"저 멀리서 왔는데" 혼자 시렁거렸다.

혹시나 잡을 까, 두고 가라 할까? 약간 기대했지만 아무도 관심이 없었다.

그저 뒤돌아 나오는 내 등 뒤가 따가울 뿐이었다. '시간 제대로 확인하고 오지'라는 환청도 희미하게 들린 것 같다. 그제야 생각났다. 학교는 마지막 날 12시에 마감인 것을.


나는 이제는 상춘객도 아니고 노래 들을 생각도 나지 않았다.

그냥 멍했다. 먹다 남은 김밥만 오물거리며 단숨에 사무실로 행했다.



하지만,

고민은 사라졌다. 또 이력서를 넣어야 하는 수고가 있지만

복잡하게 얽혀있던 고민은 사라졌다.

한편으로는 서운했지만 한편으로는 가벼워졌다.


너무 좋은 것도, 너무 나쁜 것도 없다.


하지만 이제는 고민은 잠시 미뤄두는 걸로 해야겠다.

고민은 정말 나에게 고민을 하지 않은 지점으로 데려갈 수 있으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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