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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파도에_가봤니?

by 배경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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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이 제주로 내려와 3박 4일을 있다 갔다. 첫날은 큰노꼬메오름을 올랐다. 다음날은 제주올레 15A 코스를 걸었다. 아침 10시에 시작한 발걸음은 오후 6시에 끝났다. 네댓 시간이면 충분한데 두 배나 걸렸다. 애월 중산간의 밭길과 숲길, 흙길을 걷는 코스였는데, 문제의 발단은 개두릅이었다. 두릅은 참두릅과 개두릅으로 나뉘는데, 그 개두릅을 한 걸음 걷고 따고, 두 걸음 걷고 따고, 눈에 띄면 따는 통에 진도가 더뎠다. 너무 오래 걷다 보니 나중엔 말할 기운도 없을 만큼 에너지를 다 써버렸다. 새마을금고(MG) 제주연수원에 도착하자마자 저녁도 안 먹고 잤다. 셋 다. 청춘들이 아니십니다, 이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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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파도 가는 날. 난 거기서 사는데도 가파도에 간다니 흥분된다. 친구들도 들떠 있다. 배를 타려는 사람들로 운진항은 인산인해다. 30분에 한 대씩 방문객을 부지런히 실어 나른다. 예약시간보다 일찍 도착해 주민 찬스로 승선 시간을 당겼다. ‘블루’에 짐을 풀고 나서 용궁식당으로 가 ‘용궁정식’을 아침 겸 점심으로 먹었다. 톳무침, 생선껍질무침, 게장, 멸치젓, 옥돔구이 등 스무 가지 정도 되는 반찬이 차려졌다. 오분자기미역국과 보말파전이 그중 맛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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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을 한 바퀴 돌며 올레 수첩에 10-1 스탬프를 찍었다. “섬이 참 낮고, 너르다. 눈에 거칠 게 없어 참 좋다. 가슴이 탁 트이는 것 같아.” 친구들은 몸을 쭉 펴고 숨을 깊이 들이마신다. 화창하면 화창한 대로, 그날처럼 안개가 자욱이 낀 날은 몽환적으로, 청보리밭은 방문객을 실망시키지 않는다. 보리 이삭이 패고 있는 초록의 땅. 종일 보리멍을 하고 싶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오늘만 같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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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의 주인장은 정성을 다하여 저녁상을 차렸다. 며칠 바닷가에 나가 ‘이따 만한’ 부시리나 참돔을 건져다 대접을 하려고 별렀건만 바람과 파도가 비위를 맞춰주지 않아 하는 수 없이 숙성 회를 준비할 수밖에 없었다고 면구스러워한다. “숙성회도 맛있어요.” 위로해주었다. 회에, 얼큰한 매운탕에, 생선구이에, 베프 우영팟(텃밭)에서 따온 상추로 상이 그득하다. 진수성찬이다. 한잔이 빠지면 안 되지. 한라산을 한 잔씩 돌린 다음, 우린 주인장에게 감사를 전했다. 방으로 건너와 12시까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제 그만 너희 방으로 가. 나, 졸려.” 옆방으로 건너갈 소음이 신경 쓰여 친구들을 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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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날은 모슬포 홍성방에서 아점으로 게 한 마리가 통째로 올라간 해물짬뽕에 해물짜장, 그리고 탕수육으로 마지막 만찬을 즐겼다. 그들은 공항으로, 나는 운진항으로. 만나면 반갑고, 헤어짐은 언제나 아쉽다. 변함없는 진리다. 그렇게 친구들은 3박 4일 동안 잘 놀다 갔다(고 믿는다).

제주올레 15A 코스에서 만난 팽나무. 제주에서 팽나무는 마을지킴이다.
카페 ‘가파리212’에서 속닥속닥.
<우리들의 블루스> 촬영지 근처의 바닷가.
바닷가에 무리지어 핀 무꽃.
나, 청보리밭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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