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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insight Dec 31. 2020

이 영화는 여행 장려 영화가 아닙니다.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리뷰

*이 글은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상상력은 인간과 동물을 구분 짓는 주요한 특징 중 하나이다. 인간이 상상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현실을 벗어나고 싶은 욕망을 가장 큰 이유로 꼽는다.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의 주인공 월터가 그것에 해당된다. 지극히 평범하다 못해 지루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그는, 다른 사람이 부르는 것도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깊은 공상에 빠지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잃어버린 표지를 찾기 위한 여정

월터는 폐간을 앞두고 있는 뉴욕의 시사 사진잡지사 <라이프>에서 사진 인화가로 16년째 근무 중이다. 표지를 도맡고 있는 사진작가 숀은 그에게 ‘삶의 정수가 담긴 마지막 표지 사진’이라는 말과 함께 필름과 가죽 지갑을 보낸다. 하지만 필름은 온데간데없고, 여행 중인 숀은 연락이 되지 않는다. 새로 부임한 상사에게 찍힌 데다가 표지까지 잃어버린 월터는 해고를 당할 위기에 처한다. 결국 그는 사라진 표지를 찾기 위해 지구 반대편에 있는 숀을 찾아 떠난다.

이제껏 상상만 하던 일들이 이제는 정말 현실이 되었다. 바다 한가운데의 헬기에서 뛰어내리고, 폭발 직전의 화산으로부터 도망치며, 높은 설산을 등반하기도 한다. 본의 아니게 시작한 모험, 월터는 과연 필름을 찾을 수 있을까?


많은 사람들이 명장면으로 꼽는 아이슬란드 롱보드 씬


지금 당장 모험을 떠나라?

이 영화는 모험을 통해 성장하는 월터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흘러간다. 뉴욕을 떠나기 전후 현실을 대하는 월터의 태도 변화가 눈여겨볼 포인트다. 잃어버린 표지를 찾기 위한 여정은 사실상 잃어버린 삶의 이유를 찾는 과정인 셈이다.

월터에게 상상은 현실도피였다. 자신이 처한 현실의 지루함과 해야 하는 일을 외면하고 싶은 감정이 투영된 것이다. 그는 상상에 지나치게 몰입하여 주변인들에게 비웃음을 당하기도 하고 난처한 상황에 빠지기도 한다. 그의 근무지 <라이프>는 ‘세상을 보고, 무수한 장애물을 넘어 벽을 허물고, 더 가까이 다가가 서로 알아가고 느끼는 것이 바로 인생의 목적이다’라는 모토를 가지고 있다. 월터는 그 모토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으면서도 막상 실행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지루한 현실을 상상의 즐거움에 의지하여 살아가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모험을 떠나고 돌아온 뒤부터는 더 이상 상상에 빠지지 않는다. 오히려 현실을 선명하게 마주하고, 그것에 당당하게 대응한다. 성숙해진 월터는 안정과 여유를 갖게 되었다. 다사다난한 모험을 통해 자신의 안에 잠재되어 있던 용기를 각성하여 진정한 자신을 찾은 것이다.

월터는 우리 현대인을 대변하는 캐릭터다. 누구나 일탈을 꿈꾸고, 마음속에 아주 작은 모험심을 품고 산다. 자신을 억압하는 것들을 모두 끊어버리고 어딘가로 떠나는 과감한 행동을 열망한다. 그리고 실제로 그것을 실행한 사람들을 동경하며 멋지다고 여긴다. 영화 자체도 사람들의 그러한 심리를 자극하여 모험의 아름다움에 대한 환상을 심어준다. 생생하고 광활한 영상미와 음악 연출을 통해 활기차고 모험적인 삶의 아름다움을 어필하기도 하고, 모험을 다녀온 뒤 한층 더 풍요로워진 월터의 모습을 보여주어 사람들에게 역동적인 인생을 즐기라는 메시지를 넌지시 던진다. 실제로 이 영화로 인해 적잖은 사람들이 직장을 그만두고 여행을 떠났다며 인터넷에 인증을 하는 현상이 발생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영화가 진정으로 말하고자 하는 바가 과연 ‘우리 모두 월터처럼 모험을 떠나 진정한 자신을 찾자’일까? 좀 더 깊게 생각해보자.



우리의 현실은 아름답다

월터는 고된 모험 끝에 가까스로 숀을 찾아내지만, 표지 사진이 필름과 함께 받은 지갑 속에 있었다는 허무한 사실을 알게 될 뿐이다. 설상가상으로 회사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자리를 비운 사이에 해고를 당한 상태였다. 그는 씁쓸한 마음으로 사진이 무엇인지 확인도 안 한 채 상사에게 필름을 넘겨준 뒤 회사를 떠난다.

월터가 겪은 2주 동안의 모험이 그의 지루한 인생의 전환점이 된 것은 맞지만, 그는 오히려 짧은 모험을 통해 이제껏 살아온 자신의 현실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표지를 찾고자 떠났지만 알고 보니 그것은 자신의 현실 속 지갑 안에 이미 있었던 것처럼, 삶의 이유 또한 자신의 현실에 존재했다.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현실이라는 뜻이다. 전에는 직장 상사에게 무례한 조롱을 당하면 상상으로만 복수를 했지만, 이제는 현실 속의 그에게 부조리함을 논리적으로 지적하여 부끄러움을 안겨준다. 전에는 자신이 짝사랑하는 여자와 관련하여 말도 안 되는 유치한 상상만 했지만, 이제는 현실 속의 그녀에게 당당하게 말을 걸고 다가간다. 직장 상사에게 반격을 한 것도, 짝사랑하는 여자에게 다가간 것도 더 이상은 상상이 아니라 현실이 되었다. 월터는 더 이상 실재하지 않는 상상 속이 아닌, 현실을 충실히 보내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그렇다. 이 영화의 진정한 메시지는 ‘지루한 일상을 탈출하여 모험을 떠나라’가 아니다. 진정한 메시지는 바로 엔딩 장면에서 드러난다. 서점을 지나가던 월터는 우연히 <라이프>의 폐간호를 마주친다. 표지에 ‘이것을 만들어 주신 모든 분들께 바칩니다’라는 문구와 함께 근무 중인 자신의 사진이 있는 것을 발견함과 함께 영화는 끝이 난다. 그 사진은 곧 <라이프>가 사람들에게 상상을 자극하기 위해 환상적인 사진들을 제공하는 동안 그 뒤에 가려져 회사에서 묵묵히 일해온 직원들의 현실을 가리킨다. 숀은 바로 그 사진에 삶의 정수가 담겨있다고도 말했다. 앞서 말한 <라이프>의 모토는 여행과 모험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현실에 더 잘 적용된다. 현실 속의 무수한 어려움을 극복하고, 인생을 살아가며 삶의 본질에 다가가고, 서로의 인생을 공감하고 감정을 나누는 것. 그것이 바로 <라이프>의 진정한 모토이자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삶의 정수인 것이다.


숀이 보낸 마지막 표지의 정체는 바로 일에 열중하고 있는 월터의 사진이었다.


진정으로 아름다운 것은 관심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영화 후반부, 월터가 높은 설산을 오른 후 겨우 찾아낸 숀은 그토록 기다리던 진귀한 눈호랑이를 포착하고도 사진을 찍지 않고 잠자코 감상하기만 했다. 월터가 이유를 묻자 그는 진정으로 아름다운 것들은 관심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며, 자신은 현재의 시간에 충실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것은 곧 16년간 묵묵히 일해온 월터, 그리고 우리를 가리킨다. 진정으로 아름다운 것은 주인인 우리에게 관심을 받지 못하고 외면당한 우리의 삶이다. <라이프>가 매월 선보이는 화려하고 꿈같은 이야기에 직원들이 가려진 것처럼, 우리 또한 비현실적인 모험과 환상 같은 이야기에 열광하여 우리의 삶은 빛이 바랜 사진 마냥 취급한다. 삶의 정수는 숨겨져 있어 그것을 자세히 보지 않으면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영화의 연출도 이러한 것을 의도한 듯이, 화려하고 멋진 영상미와 음악을 통해 사람들의 욕망을 일깨워 표면적으로는 현실을 벗어나 모험을 떠나라고 말하는 듯하다. 하지만 그것의 뒤에 영화의 정수, 진정한 주제가 있다. 현실을 떠나 실재하지 않는 아름다움에 휘둘리지 않기를, 또 우리가 몸 담고 있는 현실에 분명 실재하는 아름다움을 찾기를 응원하고 위로해준다.

무기력함에 빠져 삶의 이유가 희미해진 사람들이라면 반드시 이 영화를 보기를 추천한다. 옅어져 가던 의욕이 영화 속의 생생한 영상미와 함께 다시 선명해질 것이다. 이 세상은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성실히 노력하는 우리에 의해 돌아간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우리의 현실은 생각보다 아름답다.




To see the world, things dangerous come to,

to see behind walls, draw closer, to find each other and to feel.

That is the purpose of life.


세상을 보고, 무수한 장애물을 넘어,

벽을 허물고 더 가까이 다가가 서로를 알아가고 느끼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의 목적이다.


- 잡지사 <라이프>의 모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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