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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예인 Mar 29. 2018

정봉주 사건의 가해자들

물론, 정봉주가 가장 문제였다. 그리고...

정봉주가 백기를 들었다. 지난 3월 7일, A씨는 한 호텔 카페 룸에서 정봉주에게 추행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다른 ‘미투 운동’과 달리 이 사건은 정봉주가 추행은 물론 호텔에 간 사실까지 전면 부인하며 진실 공방의 영역으로 넘어간다.


결국 20여 일 만인 3월 27일 A씨가 언론 앞에 나서 포스퀘어 사진을 증거로 제시하고 추행이 일어났던 시간을 특정했다. 그리고 다음날 정봉주는 당시 호텔을 이용했던 카드 영수증이 발견되었음을 고백했다. 



정봉주


아직 그가 추행 사실을 명백하게 고백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애당초 그는 추행은 물론 호텔에도 가지 않았다며 A씨의 주장을 전면부인했으므로, 신뢰성에 이미 큰 타격을 입은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에서 정봉주의 추행 의혹이 사실이라 상정하진 않으려 한다.  거의 기울었지만, 본인의 자백이나 추행 자체의 증거가 나온 것은 아니니. 그렇다 해도 정봉주의 책임을 물을 수 있고, 또 물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진실 게임에서 그는 다소 이해하기 힘든 해명들을 내놓았다. 대표적인 것이 프레시안 기사가 자꾸 말을 바꾸었다고 주장한 부분.


정봉주는 프레시안과 A씨가 주장하는 추행 장소가 호텔 룸에서 식당으로, 다시 카페 룸으로 계속 바뀌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는 정봉주의 왜곡이다. A씨는 인터뷰에서 분명 “정 전 의원은 (중략) 1층 카페에서 만나자고 했다” “약속 장소에 도착하자 호텔 카페 직원은 A씨를 룸으로 안내했다”고 말했다. 즉 A씨가 주장한 사건 장소는 처음부터 ‘호텔 카페 내의 룸’이지, ‘호텔 룸’인 적이 없었다.


또 A씨와 주변인들은 추행 시간을 명확히 특정하지 않았음에도 정봉주가 자의적으로 역산하여 시간대를 1-3시로 좁히기도 했다. 알리바이 싸움으로 몰고 간 것이다. 하루 종일의 행적을 기록한 780장의 사진이 있다고 주장하면서도 실제로 공개한 것은 극히 일부였고, 명확한 알리바이도 아니었다. 



정봉주의 지지자들


정봉주가 사건을 알리바이 싸움으로 몰고 가면서 지지자들도 이 진실 게임에 심취(?)했다. 사실 나는 이런 진실 게임에, 사건의 전말을 파헤칠 수 없는 제 3자가 굳이 끼어드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유력 정치인의 성추문에 ‘당신들 일이 아니니 관심을 끄라’고 말하는 것도 좀 무리이긴 할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진실 게임에 끼어든 지지자들의 행위가 2차 가해에 가깝다는 것이었다. 사건의 전말이 드러나지 않은 이상 정봉주를 가해자로 확신하는 것은 잘못이다. 고발당했다는 이유만으로 피고발자의 혐의를 확실한 것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


하지만 반대로, 고발자의 증언은 경청되고 존중받아야 한다. 이건 무조건 믿어야 한다는 말이 아니라, 적어도 귀담아 들어주어야 한다는 것이고, 무고부터 의심하진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랬는가? 정봉주의 왜곡에 기초해 A씨를 거짓말쟁이로 몰아가는 글과 자료들이 무수히 쏟아졌다. 심지어 엉뚱한 사람이 A씨로 지목되어 조리돌림을 당하는 일도 벌어졌다. 사람들은 A씨가 시간을 특정한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A씨나 정봉주가 공간이동을 하는 게 분명하다며 조롱했다.


이 과정에서 특히 실명으로 비판해야 할 한 사람이 있다. 블랙하우스의 김어준이다. 정봉주의 동료로 알려진 김어준은 공중파 방송에서 분명하지도 않은 알리바이를 제시하느라 전파를 낭비했다. 그는 또다시 잘못을 저질렀다. 이명박의 비리를 끈질기게 물고 늘어진 공로도 인정해야 하지만, 황우석 사태에서 투표 조작 음모론 등에 이르기까지 무의미한 음모론을 쏟아내며 공론장을 오염시킨 그의 잘못은, 이 사건을 포함하여 결코 가볍지 않다. 



프레시안


결국 진실 공방에서 승리했으므로, 프레시안은 선역이었을까?


프레시안은 ‘미투 고발’을 즉각적으로 기사화하는 데 바빠 언론으로서의 책무를 거의 망각했다. 프레시안의 기사는 기사라기보다 마치 운동권의 대자보를 방불케 했다. 고발 내용에 대한 성실한 취재나 사실 관계 확인, 고발자와 피고발자의 입장 전달 등이 모두 미흡했다.


프레시안의 어설픈 기사는 정봉주와 함께 이 사건을 진실 공방으로 빠뜨린 두 번째 범인이었다. (물론 죄의 경중은 비교가 되지 않는다.) 특히 정봉주와 이미 척을 지고 적대하고 있는 인물 ‘민국파’의 인터뷰를 내세운 것은 심각한 패착이었다. 그는 정봉주가 호텔에 갔다고 증언하였으나 정봉주와 적대관계라는 점 때문에 인터뷰이로서의 신뢰도를 의심받았다. 게다가 호텔에 간 시간을 특정함으로써 이 사건을 다시금 진실 공방에 빠뜨렸으며, 결정적으로, 시간도 틀리게 증언했다.


프레시안이 조금 더 성실하게 취재했더라면, 정봉주가 추행을 저질렀거나 최소한 해당 호텔에 있었다는 간접적 증거라도 제시했더라면 이 ‘미투’ 고발이 이런 소모적인 진실 공방으로 이어지진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A씨가 고발한 추행 내용은 추하고, 짜증나고, 개저씨같은 것이긴 했어도 단죄할 수 있는 일인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는데, 이런 부분에서도 프레시안은 정밀하게 접근하지 않았다. 



진실 공방의 승리자들


진실 공방 단계에서도 ‘심증’은 기울 수 있다. 나 같은 경우에도 분명 한 쪽이 진실일 것 같다는 심증은 갖고 있었고, 사적으로는 “아무래도 이쪽이 진실 아니겠는가” 하는 입장을 여러 차례 이야기했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심증이다. 정봉주가 전면 부인을 한 이상 함부로 공공연히 확증인 척 할 수 없는 것이다. 누구처럼 귀류법을 동원해도 안 된다. 누구처럼 1억을 제시해도 안 된다. 누구처럼 그 심증만으로 엠팍에서 키워를 벌이며 상대의 논리력이 없다고 비웃어서도 안 된다.


진실 공방이 벌어졌을 때 가장 우려해야 할 부분은 무엇이었나? 심증 단계에서 이를 함부로 확신하여 한 쪽을 거짓말쟁이로 모는 것이었다. 정봉주의 지지자들은 정봉주의 불완전한 알리바이를 지나치게 신뢰하여 A씨를 거짓말쟁이로 몰았고, 2차 가해를 자행했다.


그건 지금 진실 공방에 승리한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고, 그들도 마찬가지로 자행할 수 있는 잘못이었다. 이 소모적인 진실 공방에 뛰어들어 어느 시간의 알리바이가 있는가 없는가를 제 3자가 파헤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정봉주도 A씨도 갖고 있지 않은 새로운 증거나 증언을 제시할 수 있는 것이 아닌 한.


그들이 집착한 진실 공방은 A씨를 지키지 못했다. 승리했으니 아마 본인의 마음은 시원할 것이다. 저 멍청이들을 짓밟았다는 자부심이 넘칠 것이고.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는데. 그들이 해야 할 것은 진실 공방에서 상대를 짓밟으며 승리의 희열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A씨를 향한 사냥에 우려를 표하는 것이었다.


정봉주가 7년 전의 알리바이를 명확히 구성하는 게 무리이듯, A씨도 7년 전의 기억을 명확히 떠올리는 건 무리다. 정봉주를 증언만으로 범인으로 몰아가는 게 무리이듯,  정봉주의 완전하지 않은 알리바이만으로 A씨를 거짓말쟁이로 사냥하는 것도 무리다. 진실 공방을 말리는 것이야말로 가장 우선이어야 했고, 가장 중요한 일 아니었나.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며 조리돌림 행진을 벌이는 그들에게 이 얘기가 들릴지는 잘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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