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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예인 Dec 24. 2018

나경원의 '데드 크로스', 받아쓰기 바쁜 언론

천룡인처럼 고귀하신 자유당의 원내대표, 주어의 약탈자 나경원이 홍문종 의원 출판기념회에 참석해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데드크로스다.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수행에 대해) 긍정평가보다 부정평가가 높아졌다. 진짜 동이 터오고 있다.”


고귀하신 천룡인의 발언이라 그런지 언론사들이 앞다퉈 받아씁니다.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 ‘데드크로스'”(한국경제), “지지율 첫 ‘데드크로스’, 뒤집은 정부 드물다는데”(중앙일보),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 첫 ‘데드 크로스’… 민생경제 악화에 민심 이탈”(동아일보), “문대통령 지지율 ‘데드크로스'”(뉴스1)…


특히나 중앙과 경향은 이를 소재로 사설까지 씁니다. “1년 7개월만의 데드 크로스”(중앙일보), “‘데드 크로스’ 맞은 문 대통령 지지율”(경향신문) 등. 보수와 진보가 하나 된 모습이 참 보기가 좋습니다.


대체 이 ‘데드 크로스’가 무엇이길래 언론이 이렇게 대서특필(?)하는 것일까요? 인터넷 백과사전 위키피디아는 ‘데드 크로스’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데드 크로스는 남부 캘리포니아에서 결성된 미국의 하드코어 펑크 슈퍼그룹이다.” 정말입니다. 이게 답니다. 다른 뜻은 없습니다.


구글에 “Dead Cross”와 “Presidential Approval Rating”을 함께 검색해보면 검색 결과가 없다고 나옵니다. 데드 크로스라는 단어를 대통령 지지율과 연결지어 쓴 용례가 없습니다. 다시 말해, 이 단어는 나경원의 창작입니다. 주어를 약탈하시는 대신 새로운 단어를 창조하시는 모양입니다. 역시 창조경제…


비슷한 단어로 ‘데스 크로스(Death Cross)’라는 단어는 있습니다. 증권가에서 쓰는 단어인데요, 50일(단기) 이동평균선이 200일(장기) 이동평균선보다 낮아지는 현상을 의미하며, 약세장으로 전환되는 신호로 이해됩니다. 말하자면 골든 크로스(Golden Cross)의 반댓말입니다. 한국에서는 어째서인지 이 ‘데스 크로스’를 보통 ‘데드 크로스’로 부르는데요, ‘골든타임’ 같은 느낌의 콩글리시랄까요.


그럼 이번엔 구글에 “Death Cross”와 “Presidential Approval Rating”를 같이 쳐 볼까요? 딱 하나 나옵니다. “Pres. Moon’s disapproval rating hits record high”, 어디서 쓴 건가 하니… 동아일보네요….


흥미로운 것은 일반적인 믿음과 달리, 실제로 ‘데스 크로스’가 약세장을 이끌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골든 크로스’가 딱히 강세장을 이끌지도 않는다고 합니다. 1970년 이전에는 그랬지만, 그 이후론 딱히 그런 추세가 관찰되지 않는다네요. 50년 가까이 예측 능력을 상실한 지표라는 것이지요.


어쨌든 증권가에서도 힘을 잃은 ‘데스 크로스’를 대통령 지지율에 갖다 붙이다니, 주어의 참살자 나경원의 언어 능력은 역시 대단합니다. 무슨 뜻으로 이런 단어를 썼는지는 명백합니다. 지지율이 죽었다니, 부정적인 이미지를 박기 너무 좋죠. 말의 힘은 강합니다. 그러니 누구 지지율은 골디락스 존이고 누구 지지율은 데드 크로스인 것이겠죠.


웃픈 것은 그 선동에 보수지야 적극 동참한다 쳐도 진보지까지 같이 사설씩이나 쓰며 가담했다는 것입니다. 비슷한 일을 얼마 전에 본 적이 있죠? 바미당의 유승민이 ‘코리아 패싱’ 운운하자 온 언론이 다같이 ‘오오 코리아 패싱!!’ 하며 받아쓰기 바빴던 시절 말이죠. 실제로 외국에선 아무도 안 쓰는 말을요. 그 우스꽝스런 촌극을 연출하고도 여전히 바뀐 게 없는 까닭은, 언론에게도 그게 꽤 쏠쏠하기 때문이겠죠, 여러 측면에서 말입니다.


사족. 나경원이 ‘데드 크로스’를 창조한 그 날, 그 자리의 주인공이었던 홍문종은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다시는 저 촛불 같은 간계에 넘어가서는 안 되겠다”. 뭐, 이게 자유당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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