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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예인 Oct 24. 2015

애플 워치, 느리고 굼뜬 애플의 직무유기

이 장치에 혈압 측정 기능이 없는 건 혈압 상승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애플 워치는 아이폰과 아이패드 이래 5년 만에 출시한 애플의 새로운 제품군이다. 이름 그대로 스마트워치. 전화나 메시지 도착 등을 알려주고, 심박수나 운동 시간 등을 체크하며, 메신저와 트위터, 게임에 이르기까지 간단한 앱까지 실행 가능한 똑똑한 시계다.


몸체는 알루미늄, 스테인리스 스틸, 금 등으로 만들어졌으며, 고무, 가죽, 스테인리스 스틸 등 다양한 디자인의 줄을 장착할 수 있다. 속칭 '줄질'의 재미도 놓치지 않은 셈이다.



... 는 제품 소개 페이지만 들어가도 알 수 있는 이 물건의 특징이다.


이 물건은 나오기 전부터 시장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그동안 스마트워치랍시고 나온 물건들이 하나같이 어딘가 나사가 몇 개쯤 빠진 듯 부실한 제품들이었던 탓이다. 손목에 차기엔 부끄러울 정도로 못났고, 그 어떤 작업을 하더라도 그냥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는 게 나을 정도로 불편했다.


애플 워치는 시중의 스마트워치 중 가장 뛰어난 제품이다. 어떤 사람은 동의하지 않겠지만, 적어도 다른 제품에 밀린다 할 물건은 아니다. 하지만 그게 한계다. 모든 스마트워치는 쓸모없으며, 이 또한 시중의 쓸모없는 스마트워치 중 하나일 뿐이다.



느리다


이건 가장 심각한 문제다. 그리고 본질적인 문제다. 애플 워치는 느리다.


만일 알림을 보고, 부재중 전화를 확인하고, 걸음 수를 재는 등 간단한 동작만을 원한다면 애플 워치는 충분히 빠르다. 이런 기능은 경쟁 제품인 구글 '안드로이드 웨어'(안드로이드 OS 기반의 스마트 워치 운영체제)에서도 충분히 쾌적하게 쓸 수 있다. 굳이 화면이 필요하지 않다면 훨씬 싼 값에 미 밴드 같은 제품을 선택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경쟁자들과 비교해 애플 워치의 뛰어난 점 중 하나는 서드 파티 개발자들이다. 메신저, SNS, 게임에 이르기까지 애플 워치라는 작은 기계에 특화된 다양한 앱이 개발되고 있다.


문제는 이들이 속 터질 정도로 느리다는 것이다. 카카오톡 등 메신저 앱을 예로 들어보자. 앱이 열리는 속도도 속도지만, 대화를 불러 올 때마다 심각한 수준의 딜레이가 생긴다. 이 딜레이는 블루투스로 폰에서 그때그때 메시지를 받아오기 때문으로 보인다. 수 초, 심하면 십수 초 이상 기다려도 메시지가 뜨지 않은 무한 딜레이 현상이 생기기도 부지기수다.


이런 문제는 WatchOS 2가 출시되며 서드 파티 개발자들도 네이티브 앱(애플 워치 자체에서 구동되는 앱)을 만들 수 있게 되면서 어느 정도 완화되었다. 하지만 한계는 여전하다. 애플이 직접 만든 앱에 비해 서드 파티 앱은 여전히 매우 느리고 버벅거린다. 메시지가 뜨기까지의 딜레이도 여전하다. 때론 앱이 멈춰버리기도 하는데, 애플 워치 내에서 앱을 강제 종료할 방법이 없으니 그저 손을 놓고 있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 또한 카카오톡 등 아직 WatchOS 2에 대응하지 않은 앱들은 여전히 절망적으로 느리다.



It just works?


왜 사람들은 애플에 열광하는가? 왜 아이폰은 그간 시장에 나왔던 모든 스마트폰을 누르고 수 년째 가장 높은 왕좌에 군림하는가?


한 두 마디로 어찌 그 이유를 설명할 수 있겠느냐만, "그냥 된다(It just works)"는 점이 개중 하나였을 것이다. 아이폰이 처음 나왔을 때 사람들은 이게 정말 양산품인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사진을 확대하기 위해 돋보기 버튼을 스타일러스로 눌러댈 필요가 없었다. 그저 두 손가락을 대고 늘려 주기만 하면 됐다.


누구나 직관적으로 쓸 수 있는 인터페이스도 대단했지만, 그 기반에는 이런 복잡한 동작을 부드럽게 끊김 없이 보여줄 정도로 빠른 속도가 있었다. 손으로 만지는대로 즉각적으로 작동했기 때문에 인터페이스의 직관성이 빛을 발했던 것이다. 아이폰은 당대 최고의 프로세서를 장착했으며, iOS라는 뛰어난 소프트웨어를 탑재하여 이런 성능을 이끌어냈다.


애플 워치는 어떤가? 용두를 장착하고 멀티 터치 인터페이스와 3D 터치(포스 터치)까지 탑재하여 인터페이스에 혼신의 역량을 기울였으나, 모두 빛이 바랬다. 느리기 때문이다. 요소 하나하나가 물흐르듯 부드럽게 움직이지만, 카카오톡에서 대화 하나 확인하는데도 스마트폰보다 수 배 이상의 시간이 소요되니 전혀 직관적으로 느껴지질 않는다.



왜 만든 것인가


언론은 스마트워치를 포함한 웨어러블 기기의 시대를 집중적으로 조망했으나, 그 어떤 업체도 웨어러블 기기가 우리 삶을 어떻게 바꿀 것인지를 보여주지 못했다. 애플 워치가 나온다는 소식에 많은 사람들이 기대를 걸었으나, 애플도 결국 마찬가지였다.


어떤 사람들, 알림을 절대 놓쳐선 안 되는 사람이나, 폰을 가지고 다니기 어려운 상황이 종종 생기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에게는 애플 워치가 의미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 외에는? 이 기기는 사람들의 삶에 얼마나 큰 효용을 줄 수 있단 말인가?


이 작은 기기의 형편없이 느린 속도는 안 그래도 제한적인 용도를 더 제한해버린다. 간단한 메시지에 답문을 보내는 용도라도, 이렇게 느려서야 그냥 스마트폰을 꺼내는 게 낫다. 폰을 꺼내서, 지문으로 잠금을 해제하고, 답문을 타이핑하는 것이 길거리에서 시계를 입에 대고 시리에게 말을 거는 것보다 훨씬 쿨해 보일테고 말이다.


스티브 잡스의 유령을 불러오는 건 영 취향이 아니지만서도, 잡스가 이 제품을 봤다면 이 따위 느린 물건을 어찌 쓰냐 역정을 부렸으리라 확신한다. 혹, 아직 서드 파티 앱을 탑재할 만큼 소프트웨어가 안정적으로 발전하지 못했음을 인정하고 오리지널 아이폰처럼 철저히 폐쇄된 하드웨어를 만들었거나. 난 이 물건이 아무리 봐도 미디어의 기대와 새 제품에 대한 요구에 치여 내놓은 미완성적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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