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태여, 액자

by 예이린

초겨울의 부산은 온화했다. 반팔 원피스에 목을 가리는 코트 차림으로도 괜찮았다. 서울에 올라온 지 십 년이 되자, 고향이 남쪽 지역이라는 것을 여실히 느꼈다. 전포역에서 내려 칠 분 정도 걷는 동안 학창 시절에는 여기서 뭘 그리 추워했나 생각했다. 전포는 서울의 을지로처럼 낡은 건물에 감성적인 카페나 술집이 들어서 있었다. 사진관은 그런 거리를 지나 코너에 있었고 문 앞에서 연아를 마주쳤다.


“스카프는?” 내가 물었다. 연아는 가방에서 꺼내어 보여줬다. 잔뜩 구겨져 있었다. 옷장 구석에서 찾아왔다고 했다. 뭐든 분명할 것 같은 인상으로 종종 보이는 엄청난 어수룩함에 웃음이 났다. 나는 같은 디자인을 이미 목에 두르고 있었다. 이십 대 초반 여러 사람 속에서 알게 된 후 종종 안부만 서로 묻던 연아와 나는, 어느 날 약한 인연을 이어보고자 용기를 내어 만났다. 그리고 닮은 점이 많아 무척 놀랐다. 단골 꽃집이 같았고, 하나 있는 스카프가 같은 것이었다. 비슷한 취향이 우리를 들뜨게 했다.


사진관은 제한된 시간 동안 직접 버튼을 누르는 방식이었다. 촬영 후 사진을 고르고 카페에 다녀오니 완성되어 있었다. 리터치를 잘하는 곳이라 군더더기 없이 단정했다. 손으로 만져지는, 또 앞으로도 손이 닿을 스물아홉의 우리를 보며 함께 웃었다. 그리고 서울로 올라오자마자 원목 액자와 사진 테두리를 채울 흰색 매트를 검색했다. 모서리 길이가 맞아야 해서 꼼꼼히 자로 길이를 재고 주문하여 사진을 넣었다.


그때의 액자는 여전히 방 한편에 있다. 책상 위의 조명, 노트북, 캔들, 그리고 꽃이 달라지는 중에도 변치 않고 늘 그대로였다. 시간순으로 정렬되어 과거의 것이 밀려나는 핸드폰 앨범과는 다르게 느껴졌다. 원하는 만큼 사진을 남길 수 있어지면서 추억하기보다 무엇을 택할지 고민하고 보정하는 시간이 더 길어졌다. 그사이 어쩌면 이 시대는 편리함을 각별함과 맞바꾼 게 아닐까 생각했다. 그게 사람들이 구태여 사진관으로 향하고 필름 카메라를 찾는 이유일지도 모르고.


해가 바뀌고 여름이 찾아왔을 때 상희언니 결혼식에서 축사를 했다. 그날 함께 찍은 사진을 인화하여 액자를 하나 더 만들었다. 그 다음 해에는 우연히 집에서의 모습이 담긴 모습을 선물받았다. 세 개의 액자를 살피며, 앞으로 매년 액자를 만들기로 다짐했다. 언젠가 못질을 마음껏 해도 되는 공간이 생기면 한쪽 벽면을 소중한 찰나들로 가득 메우려 한다. 삭제라는 버튼 하나로 사라지지 않는, 종이에 인화되어 투명한 보호막을 쓰고서 튼튼한 원목 갑옷까지 입은 장면들을 그려보면 마음이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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