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시한 커플의 섬과 좀비 아포칼립스의 생존 필수품은?

욕망을 거꾸로 말해보자♬ 망(맘)대로 하다 욕먹어요

by 심미금

최근 아빠가 마사지 기계의 새 용도를 개척했다.

그 마사지 기계는 ㄷ을 세워놓은 듯한 형태로 약 5년 전 온라인에서 소소하게 유행했던 어깨걸이형 마사지 기계로 만성적으로 굳어있는 어깨를 해결하기 위해 샀던 물건이었다.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것이 일상이다 보니 만성적으로 어깨가 굳었고, 목을 타고 올라가서 두통까지 유발하길래 샀던 물건인데, 모든 소비라는 게 그렇듯 살 땐 좋았지만 조금 시간이 지나자 귀찮아서 방치하고 있던 애물단지였다.

그냥 버리자니 반년에 두어 번은 찾아서 쓰니 버리기 아깝고, 그냥 두자니 의외로 공간 차지가 커서 신경 쓰이는 물건. 먼지가 뽀얗게 쌓여있던 마사지 기계를 굳이 꺼내 제2의 인생을 부여한 아빠의 방법은, 바로 배 마사지였다.

나이 들수록 배만 더 나오는 것 같다며 고민하더니 마사지 기계를 배에 두르고 TV를 보는 나름 실용적인 방법을 계획한 것이다. 밖에 나가서 운동하라고 노래를 불러도 들은 척도 안 하더니 이 방법은 꽤 마음에 드셨는지 퇴근하고 오면 샤워하고 거실 앞에 앉아 TV를 보며 배 마사지를 하는 것이 아빠의 저녁 루틴이 되었고, 편하게 뱃살을 빼보겠다는 야무진 욕망은 현재 진행형이다.


가만히 앉아서 배 마사지를 한다고 뱃살이 빠질지는 만무하겠지만 마사지 기계 입장에서도 이대로 잊혔다가 버려지느니 새로운 인생을 사는 게(심지어 마사지라는 본래의 명목도 유지) 낫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집콕으로 할 수 있는 모든 콘텐츠에 질려버린 가족들에게도 나름 신선한 콘텐츠가 되었다. 그럴 시간에 운동하라고 핀잔을 주면서도 오늘도 마사지 기계를 배 위에 올려놓을지 나름 흥미진진하게 지켜볼 수 있고 말이다.

그러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넷플릭스에서 욕망을 다룬 작품들이 끊임없이 나오는구나. 아빠의 뱃살과 마사지 기계에 비유하기엔 좀 미안하지만, 내가 넷플릭스에서 보는 작품 대부분이 개인의 욕망에 관한 내용이었으니 말이다.


올해 넷플릭스에서 가장 재밌게 본 작품을 꼽자면 단연 <스위트홈> 두 번째가 <투핫>이다.

넷플릭스 오리지널이라는 것을 제외하면 두 작품 사이에는 공통점이라곤 눈 씻고 찾아봐도 알 수가 없다.

이제 모르는 사람을 찾는 게 더 어려운 하반기 화제작 <스위트홈>은 욕망이 괴물로 변하는 세계관에서 살아남기 위한 사람들의 투쟁을 그린 드라마다. 그리고 상반기에 화제가 됐던 <투핫>은 아름다운 섬에 초대된 섹시한 남녀가 순수한 사랑을 찾으면 상금을 얻는다는 내용의 해외 리얼리티 쇼다.


닮은 구석이라곤 전혀 없는 두 작품이 묘하게 겹쳐 보이는 것은 궁극적으로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개인의 욕망은 어떻게 발현되는가

개인은 욕망 앞에서 어떤 선택을 할까

사람은 욕망을 제어할 수 있을까?


욕망은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이고, 그것을 절제한다는 것은 본능을 뛰어넘는 것이기 때문에 시대가 다르고 문화가 달라도 모두의 관심사가 되는 것이다. 인간 본질에 대한 호기심이랄까.

<스위트홈>에서는 욕망이 괴물을 만든다. 그래서 갑자기 괴물로 가득 찬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투쟁하고, 나 자신도 언제 괴물로 변할지 알 수 없어 두려워하고, 괴물이 되지 않기 위해 내면의 욕망과 끊임없이 싸운다.

나의 적은 괴물이 되기도 하고, 인간이 되기도 하고, 내 안의 욕망이 되기도 한다. 상대는 계속 얼굴을 바꾸지만 욕망이라는 본질은 바뀌지 않기 때문에, 끊임없이 욕망과 싸우며 앞으로 나아간다.


일반적인 아포칼립스 장르처럼 괴물에게 물리거나 감염돼서 괴물이 되는 것이 아니고 내면에 가지고 있는 욕망이 괴물화가 되는 것이기 때문에, 작품의 후반으로 갈수록 개인의 욕망 앞에서 어떻게 변하는지를 보여준다. 욕망이 괴물을 만드는 것은 맞지만 변화의 과정과 기간은 사람마다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그 모습을 계속 좇는다.

<투핫>은 대놓고 욕망을 절제할 수 있는지 지켜본다. 욕망의 절제가 곧 상금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이 섬에 초대된 남녀들은 사랑은 곧 스킨십, 자신의 욕망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는 인싸들이다. 초반에는 자유롭게 아름다운 섬에서의 휴가를 즐기며 마음에 드는 상대를 스캔한다.


하지만 순수한 사랑을 찾아야만 상금을 받을 수 있다는 룰이 공개되면서부터는 모든 게 달라진다. 순수한 사랑이라는 이름하에 모든 스킨십이 금지되고 규칙을 어길 때마다 공통의 상금이 깎이게 된다. 서로 마음이 통해 커플이 되면 모든 사람의 감시의 대상이 되고, 커플이 아닌 사람들도 순수한 사랑을 찾아야 한다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서로를 끊임없이 스캔한다. 여기에 욕구를 부추기는 미션은 덤.


이런 쇼에는 늘 룰 브레이커가 등장하기 때문에, 욕망을 절제하고 최대한 많은 상금을 가져가려 지키는 참가자들과 욕망을 못 이긴 참가자 사이의 부딪침과 화해가 반복되며 인간이 얼마나 욕망을 절제할 수 있는지 코너로 몰고, 몬다.

두 작품 모두 욕망을 절제해야만 하는 상황이 주어지고, 욕망 앞에서 사람들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를 끈질기게 지켜본다. 그 안에서 내부 분열이 생기기도 하고 위기를 극복하기도 하고, 결국 극복하지 못하기도 한다. 이런 룰은 멍청하다고 비난하며 무리를 벗어나는 사람도 나온다. 최대한 많은 사람을 끌고 갈 수 있게 중재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분란을 일으키거나, 사고를 쳐놓고 거짓말하거나 다른 사람 뒤에 숨어 적당히 묻어가려는 모습도 나온다.


평범한 인간에게 나올 수 있는 모든 모습이 나오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 초반에는 단순한 콘텐츠로 흥미진진하게 보다가도, 회차를 거듭할수록 내가 그 세계에 들어간 듯 ‘나라면 어떻게 할까?’라는 생각을 끝없이 반복하게 한다. 그렇다 보면 흔히 말하는 룰 브레이커, 빌런을 봐도 마냥 욕할 수 없게 된다. 사람이 사는 모습이 다 그런 거란 걸 이해하게 됐으니 말이다.

살다 보면 무수히 많은 욕망과 부딪치고, 선택에 기로에 서게 된다. 특히 미디어가 발달하면서 사람의 욕망을 자극하고, 그 욕망을 드러내는 것이 미덕이 된 지 오래다. 나도 어찌 보면 그에 한몫하는 직업을 갖고 있는지라 내 안의 욕망에 집중하는 것을 마냥 욕할 수는 없다.


하지만 모두가 자신의 욕망대로만 살 수 없다는 것도 확실하다.


이런 작품에서 말하고 있는 가장 공통된 목적이 그것이기 때문이다.


모두가 욕망을 가지고 있고

개인의 욕망은 절제하기 힘들지만

그럼에도 큰 목적을 위해 욕망을 제어하는 사람들이 더 많고 이러한 노력이 미래를 바꾼다는 것.


인류가 지구를 정복했다고 믿고 있던 21세기에 등장한 전염병은 1년 넘게 잡히지 않고, 그로 인해 실제로 많은 사람이 감염되고 목숨을 잃고 직업을 잃고 있다.

전 세계 정부와 전문가들은 코로나 극복을 위해 개인위생을 강조하고, 불필요한 이동을 삼가 줄 것을 끊임없이 요청하고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요청에 성실히 응하고 있다.

하룻밤 사이에 지구 반대편도 갈 수 있던 세계에서 집안에만 갇혀 외출을 최대한 삼가는 좁은 세계로 변하면서 답답함을 느끼지만 더 큰 목표를 위해 자신의 욕구를 누르고, 제어하고, 적응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노력을 비웃듯 자신의 욕망대로 움직이는 룰 브레이커들은 끊임없이 등장하고 있고, 좀 더 심각하게는 이 모든 게 음모라고 주장하며 사람들을 선동하기도 한다. 사실 이런 룰 브레이커들을 보고 있으면 스스로 발에 묶은 끈을 풀어버리고 싶을 때도 많다. 룰을 지키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란 자괴감이 들기도 한다.

그럴 땐, 마음을 가라앉히고 갈등 상황에 처한 이들의 면면을 지켜보자.


세계관도, 궁극적인 목적도 모두 다르지만 끝까지 남아 무언가를 바꾸는 사람들의 선택은 늘 같았기 때문이다. 서당개도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데 넷플릭스로 개인의 욕망에 잠식되지 않는 법과 욕망을 제어하는 방법, 그렇게 했을 때 얻어지는 것들에 대해 배우는 연말이 됐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