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대기작 Oct 20. 2021

오른 발목 걸치기


어릴 때부터 나는 올라타기를 잘했다. 왜, 어쩌다가 높은 곳에 오르는 일에 꽂힌 것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어느 순간부터 높은 곳을 보면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다른 놀이기구보다도 철봉이나 정글짐, 하늘 다리 같은 것들이 재밌었고, 운동장에서 벗어나 골목에 있는 집 담벼락, 공사하다가 방치된 높은 구조물 등에 관심을 보였다. 길을 걷다가도 마음에 드는 목표물을 발견하면 그 앞에 서서 높은 곳을 올려다 보고, 목표를 잡고, 갖은 수를 써서 기어올라 정상을 차지했다.


운동신경이 있는 편이긴 했지만 또래보다 키도 체구도 작은 편이라 오르기에 적합한 편은 아니었다. 손아귀 힘이 약해서 철봉을 있는 힘껏 꽉 쥐어도 다리가 미처 오르기 전에 미끄러지는 일이 허다했다. 있는 힘껏 철봉을 쥐다 보면 손이 빨개지는 건 양반이고 손바닥이 벗겨지거나 비스듬한 자세로 떨어져 상처가 나는 일도 허다했다. 손가락 마디가 쓰라리고 무릎에서 피가 나는 건 특별할 것 없는 일상 중 하나였다.

그럼에도 나는 매일 어딘가를 기어올랐고, 보통 집에 가기 전에 목표지점에 올라가곤 했다.


그 시절의 나는 지금의 나보다 스스로의 장점을 잘 파악하고 있었다. 그리고 내 장점을 어떻게 활용하는 게 좋은 지도 본능적으로 터득하고 있었던 것 같다.


팔다리가 짧기 때문에 힘껏 점프를 해도 목표 지점에 손이 닿는 것조차 어려웠고, 어렵게 손이 닿아도 다리가 올라오기까지 버티기 쉽지 않았다. 하지만 길이가 짧고 면적이 좁은 만큼 다리가 가볍게 날쌔다는 점은 매우 잘 알고 있었다.


처음에는 운동장에서, 거리에서 본 누군가가 했듯이 무작정 힘으로 밀어붙이려고 했다. 근력이 좋은 남자애들은 상체 힘으로 올라가는 걸 보며 나도 그렇게 하면 되지 않을까 했던 것이다. 하지만 몇 번 시도하면서 그 방법이 나와 맞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고 나에게 맞는 방식으로 진화하기 시작했다.


손으로 쥐는 쉬간을 최대한 줄이고 빠르게 다리를 걸치자.


내 전략이었다. 일단 양손으로 목표지점을 잡고 다리를 힘차게 저어서 오른 발목을 걸치는 방식이었다. 가장 어려운 점은 양손으로 목표지점을 잡는 일이었는데, 담벼락 같은 경우는 디딤발 디딜 곳이 마땅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리 뛰어도 손이 닿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 이 과정만큼은 대체 방법이 없었고 반드시 해야만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기 때문에 이를 악물고 될 때까지 시도했었다.


디딤발을 디딜 아주 작은 공간이 있거나 받쳐줄 친구가 있는 경우는 수월했지만 대부분은 두 조건이 충족하지 않는 상황이 많았으므로 내가 쓴 방법은 반동을 이용하는 거였다. 목표지점까지 최대한 빨리 달려와서 발을 박치고 점프하듯이 뛰어오르는 것이었다. 한 번 시도해봐서 안 되면 조금 더 뒤로 가서 뛰고, 그래도 안 닿으면 도움닫기 하는 거리를 조금 더 늘렸다.


오른 발바닥 앞쪽이 닿을 만한 아주 작은 공간만 있어도 된다. 멀리서 달려온 추진력으로 오른쪽 발바닥을 딛고 점프하듯 팔을 올려 목표물을 잡는다. 목표지점을 잡고 나면 여전히 남은 추진력을 이용해서 다리를 힘차게 젓는다. 몸 전체가 딸려갈 힘은 안 되니 팔은 죽 늘어뜨리고 그 대신 오른 발목을 최대한 위로 들어 올렸다. 오른손잡이라 그런지 한쪽 손 or발이 앞으로 나갈 일이 있으면 오른쪽 삐죽하고 먼저 움직였다.


오른 발목을 끌어올린다는 느낌으로 몸을 사정없이 뒤틀면 아주 조금 오른발이 위로 올라간다. 그 타이밍에 잽싸게 오른 발목을 목표지점에 걸치는 게 중요하다. 높은 곳일수록, 내가 힘과 추진력을 많이 사용한 장소일수록 이미 에너지 소모가 커서 오른 발목을 걸치는데 쓸 수 있는 힘은 많지 않았다. 한 번 삐끗하면 두 번째 기회가 있을까 말까 한 정도? 보통 이 과정에서 손에 힘이 떨어져서 바닥을 나뒹구는 일이 많았다.


다리 전체를 올리려고 해도 기력이 안 되니 가장 높이 올라갈 수 있는 오른 발목이 얼마나 추진력을 받을 수 있는지를 신경 쓴다. 오른 발목을 걸칠 때는 욕심을 부리지 않는 게 중요한데, 발꿈치라도 아슬아슬하게 걸리기만 하면 그다음은 어려울 게 없었기 때문이다. 한 번에 다리 전체를 안정적으로 걸치겠다 욕심을 내면 다리에 힘이 들어가면서 더 올라갈 수 있는 영역까지도 못 가고 발이 떨어진다. 그래서 이 시점에서는 '발을 걸치는데' 목적을 두었지 '발을 얼마나 걸칠 수 있는지'는 신경 쓰지 않았다.


오른 발목을 걸치고 나면 그다음은 일사천리다. 목표지점이 높았을수록 오른 발목은 곧 떨어질 듯 아슬아슬하게 걸쳐있고, 손바닥은 피가 돌다 못해 터질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힘들지만 이를 악물고 참으며 야금야금 다리가 걸쳐지는 범위를 넓혀나간다.


발끝을 좀 더 안 쪽으로 밀고 발목을 타고 종아리, 허벅지, 오른 엉덩이 밑까지 간다. 사실 종아리만 안정적으로 걸치고 나면 떨어질 가능성은 거의 없기 때문에 한참 허세(?)를 부리던 초등학교 저학년 때는 종아리만 걸친 채 거꾸로 매달려서 빨개진 손을 툭툭 터는 퍼포먼스를 하기도 했다.


오른 허벅지까지 걸치고 나면 손을 고쳐 잡고 허공에 매달려 있던 왼쪽 다리도 들어앉는 자세로 바꿔주면 오늘의 등반도 대성공. 어릴 때 눈앞에 보이는 곳마다 기어오르는 나를 보고 친구들은 몽키라고 불렀고, 엄마는 원피스와 구두는 본인 욕심이었다는 걸 깨달았다고 했다.


이렇게 기어코, 열심히 오른 뒤에는 무엇을 했을까? 정상의 경치를 만끽한다거나 못 올라온 친구들의 시선을 즐겼을까?


그 시절의 나는 좀 더 심플했다. 기껏 높이 올라가서 먼 곳을 바라보는 것은 아주 잠시, 올라간 시간이 무색하게 빠른 속도로 지상으로 내려갔다. 올라가느라 들인 시간과 노력, 내 피땀, 그리고 옷에 묻은 흙먼지에 골머리를 앓을 엄마의 눈물 같은 건 고려대상이 없었다. 오르는 목적을 달성했으니 빠르게 내려온다. 그리고 다음 놀이를 찾아 떠난다.


친구들이 지켜보는 경우에는 '너도 올라와볼래?' 정도 말을 하긴 했지만 친구가 고개를 저으면 나도 두 번 묻지 않았고, 상대를 올라오라고 채근하는 것보단 내가 내려가는 쪽을 택했다.


심지어 여러 번 시도해도 도저히 정복이 안 되는 마의 벽을 만날 때도 있다. 높이도 중요하지만 디딜 곳이 전혀 없다거나 때론 그냥 아무리 해봐도 안 되는 곳들이 있다. 다양한 방법과 각도로 시간과 정성을 들여 올라가려 시도해봐도 도저히 안 되는 곳을 만나면, '에이 안 되네'하고 다른 장소를 찾아 떠났다. 정복조차 못하고 그곳에서 보낸 시간을 통째로 날리는 셈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가성비가 떨어지는 일이다. 그렇게 힘들게 올라가 놓고 그 위에서 보내는 시간은 길어봐야 1분 남짓? 그간 들인 노력이 전혀 아깝지 않다는 듯 뒤돌아서 다른 곳으로 떠나 또 새로운 곳에 오르는 일을 어린 시절의 나는 왜 계속 반복한 걸까?


한 번 올라본 곳은 이미 경험치가 쌓여있기 때문에 또 오를 수 있다는 생각이 있기 때문이었을까?

막상 해보고 나니 시시해져서? 친구들의 호응이 오래가지 않아서?


그저 올라가는 게 재밌었기 때문 같다.

정상에 올라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게 목적이 아니라 올라가는 행위 자체에서 즐거움을 느꼈었다. 힘들면 힘든 데로, 실패하면 실패하는 데로 즐겁게 놀았고 재밌게 놀았으니 미련 없이 자리를 털고 떠날 수 있었던 것이다. 분명 앞에 말한 이유도 내면에 있었겠지만 어린 시절의 나는 지금보다 단순하고 계산적이지 않았기 때문에 높은 곳을 오르느라 들인 시간이 아깝지도 않았고, 옷이 찢어지거나 피가 나도 슬프지 않았다.


몇 번을 시도했지만 실패한 곳은 다음에 도전하기도 하고, 안 될 것 같으면 다른 장소를 목표로 잡았고, 더 자주 존재 자체를 잊어버렸다. 꼭 거기가 아니어도 세상에는 오를 곳이 많았으니까.


요즘 필요 이상으로 몸이 무거워진 게 느껴진다. 초등학생 때 성장이 끝났으니 키 차이는 아닌 것 같고, 마음의 차이가 아닌가 싶다. 세상의 시선, 마음이 나에게 주는 부담감, 노력해도 오를 수 없는 벽이 많다는 현실의 깨달음들이 오른 발목에 잠기고 무게를 더해가는 느낌이다.


시도를 안 하는 건 아닌데, 시간이 지날수록 눈앞의 벽이 내가 오를 수 있는 벽인지, 내가 깜냥이 안 되는데 오기로 버티고 있는 건지 가늠이 되지 않기도 한다. 마음이 무거워지고 조금 길을 잃은 느낌이 들던 즈음 문득 어린 시절의 내가 생각났다. 그때의 나라면 어땠을까.


아마 마음 가는 데로 했을 것이다. 오른 발목을 걸칠 수 있는지 가늠하고 몇 번이고 시도해보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때 옷을 툭툭 털고 다른 놀이를 하러 떠나면 된다. 눈앞에 벽에 올라도 될지, 오르면 어떻게 될지,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는 전혀 생각하지 않고 오르고 싶은 마음이 드는지만 판단했을 것이다. 고민이 깊어질수록 시간이 길어지고 그러면 다리는 무거워지기만 한다. 마음이 갈 때까지 시도해보고 안 되면 그때 털고 다른 벽을 찾으러 가면 된다. 혹은 오르는 일이 지겨워진다면 다른 놀이를 하면 될 일이고.


그래서 요즘은 마음이 무거워지려고  때마다 의식적으로 탈탈 털어내고 있다. 이유를   없는 것들로 마음이 쫓기는 느낌이  때마다 오히려 천천히 걸으면서 어디서 놀면 재밌을까 하는 마음으로 주위를 둘러본다. 가벼운 마음은 필수. 진지해지지 말기. 절박한 마음이 들수록 잘하던 것도  되고 몸이 무거워지니까.


오른 발목은 걸치기도 쉽고 빼기도 쉽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매거진의 이전글 새로운 희망에 중독되면 생기는 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