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줌마의 축구일기(2)

포지션? 어디에 가라고요? 앞이요? 뒤요?

by 보리보리

축구를 배우기 전에는 국가대표 경기를 볼 때 다른 일을 하면서 볼 수 있었다. 왜냐하면 골을 넣는 사람만 봤기 때문이다. 그래서 실컷 치킨 먹고 영화를 보다가 남편과 아들이 "골!"이라고 소리를 지르면 그때쯤 어슬렁 거리면서 거실로 나가서 다시 재생해 주는 골을 넣는 장면을 보았다. 그리고는 스포츠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 된 것 같아 뿌듯해하며 "대한민국"을 한 번 외쳐주고 다시 방에 들어가 영화를 보았던 것이다. 그래서 축구에 대한 나의 지식은 2002년에 골을 넣었던 박지성, 안정환 등 몇 명이 끝이었다. (상식 끝...)


내가 생각했던 축구는 한 명의 엄청난 공격수와 나머지 선수들이라는 그림이었다....(축구지식 끝..)

마라도나 vs 벨기에
나의 축구 이미지

팀원들의 모습을 보면서 나의 축구 이미지는 달라졌다.


생활축구에서는 연습을 하고 마지막에 늘 미니 게임을 했다. 팀을 나누고 팀원들은 대표가 포지션을 정해주는 것을 근엄하게 듣고 있었다. " 영희 씨가 미드필더하고 영자 씨가 오른쪽 윙을 하고....( 더 이상 이해 불가 ) " 다들 회의를 끝마치고 조끼를 입고 있는데 아직 포지션을 받지 못한 내가 덩그러니 서 있었다. 나는 대표에게 부담을 주기 싫어 발끝을 바라보며 딴 청을 했다. ( 눈물ㅜㅜ 저 같은 거지발, 강아지 발은 버리셔도 됩니다 ) 그리고 예전에 드라마에서 봤던 장면이 떠올랐다. 체육시간에 가장 잘하는 친구 두 명이 가위바위보를 해서 팀을 나누는 장면이었다. 그 장면에서 곧 왕따를 당할 친구가 혼자 남게 되는데... (두둥)


내 차례였다.

" 아 보리씨는 음....... (난처, 곤란) " 일단 맨 앞에 서서 뛰고 옆에 서 있는 미미 양을 보고 줄을 잘 서보세요"


나는 속으로 '아니 이렇게 중요한 공격수 자리를 왜 나에게 주는 거지?' 하는 생각을 하며 내가 호날두 같은 공격수라니 하며 좋아했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빌드업에서의 손해는 최소한으로 줄이고 수비는 탄탄하게 하면서도 신규에게 기회를 주려는 큰 그림인 줄 몰랐던 것이다. 한참을 아무 곳에서나 체력을 낭비하면서 뛰다가 9분이 지났을 때 팀원이 거의 내 발에 떼굴떼굴 굴러준 공을 당당하게 골대 밖으로 정확하게 차 낸 후 다른 팀원과 교체하고 운동장을 나왔다. ( 너덜너덜 )


아주 조금 뛰었으면서도 누구보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팀원들이 경기를 하는 모습을 보았다. 아마 공격수가 공을 넣는 것만 보다가 처음으로 골이 골대에 들어가기 전에 어디서부터 시작되는지를 차분하게 본 첫날이었던 것 같다.


골키퍼가 공을 잡아서 찰 준비를 했다. 골키퍼가 왼쪽에 선 선수에게 공을 패스했다. 그 사람은 앞으로 돌진하다가 상대편 수비수와 가까워지자 바로 가운데에 있던 다른 팀원에게 공을 보내주고 그 팀원은 다시 공을 패스해서 주고받았다. 상대편 수비수들이 여러 명이 오자 우리 팀은 공을 한 번은 빼앗겼지만 겨우 따라잡아 공을 빼앗았고 그 선수는 공을 반대편으로 멀리 찼다. 오른쪽 끝에 있던 선수가 공을 차면서 빠른 속도로 달려갔다. 그러다 다시 상태 편 수비가 공을 걷어찼다. 그러자 다시 맨 뒤의 팀원들이 공을 받았고 아까와 비슷하지만 다른 과정들이 끝없이 반복되었다. 서로 주고 뛰고 받으면서 공을 빼앗기다가 다시 뺏고 다시 서로 돌리다가 옆으로 보냈다. 팀원들이 이렇게 여러 번 공을 돌려 상대편 골대 앞으로 겨우 빼낸 공을, 그래서 내 발에 톡 맞춰 준 공을 내가 골대 밖으로 차낸 거였다. ( 이럴 수가... )


물론 신입인 나에게 큰 기대를 하지 않아 툭툭 털며 일어나는 현명한 선배들이었지만 그래도 정말 미안했다.


한참 뒤에 여자 월드컵 친선경기를 보러 상암월드컵 경기장에 갔다. 골을 넣기 위해 각각이 맡은 자리에서 선수들이 고군분투하는 90분의 가치를 처음으로 느끼면서 경기를 보았다. 그렇게 경기를 보자 경기가 훨씬 재미있었다. "아 축구는 이렇게 보는 거구나." 처음 느꼈다. 어느 하나 중요하지 않은 터치, 패스, 자리는 없었다...


나도 팀원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오늘이 축구 배운 지 5주 되었나? (그것도 일주일에 1번 감... 부끄부끄 수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