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데 이제, 어쩌다 우연히 만난 사람과.
최근 1년 여 동안 무난하고 평범하다고 여겨지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이런 인생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열렬히 사랑하는 것들을 향해 에너지를 내뿜는 과거의 내 모습을 그리워하면서.
맞지 않는 옷도 훌륭하게 소화해 내는 것이 성장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꽤 그럴듯하게 성장해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날의 커피챗은 그냥, 뭐, 흔하게 있는 커피챗이었다.
비슷한 업계에 있는 사람들끼리 만나는 그런 것?
양쪽 다 크게 기대를 갖지 않았던 것 같고
각자의 사정으로 세 번이나 미뤄졌던 그 만남이 기어코 실현되었을 때,
나는 그것이 심상치 않은 만남인 것을 알아차렸어야 했다.
첫 만남에서 마주한 그의 첫인상이 나에게 해를 끼칠 것처럼 보이지는 않아서,
경계심을 내려놓고 편하게 내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그는 AI와 함께하는 미래에 대해 신나서 얘기를 했고
그게 내가 그리던 그림과 비슷했기 때문에 나도 금방 신이 났다.
나는 AI와 함께하는 미래를 그린 테드 창의 소설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주기’를 추천했다.
그는 그의 말을 금방 이해하는 사람을 처음 봤다며, 여러 의미로 나를 괴인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그는 자신을 괴인콜렉터라고 소개했다.
아마도 나는 그날 간택당한 것 같다.
3주 뒤, 두 번째 만남에서 그는 우리가 신나서 이야기를 나눴던,
그 미래를 직접 실현하기 위해 창업을 할 거라고 했다. 나에게 같이 하면 좋겠다고도 말했다.
아 그런가 보다. 그때는 그냥 그렇게 흘려들었다.
또다시 3주 뒤, 세 번째 만남에서 그는 구체화된 아이디어를 들려주었다.
그가 꿈꾸는 미래가 내가 시도해 봤거나 꿈꿔왔던 방향과 일치해서 신기하고 재밌었다.
나는 다시 한번 합류 제안을 받았다.
단순히 재미로 이런 결정을 해도 될까? 싶어서 이런저런 현실적인 제약들을 길게도 주절대던 나는,
그래도 재밌어 보이니 일단 발만 담가보기로 한다.
(당시 임시로 붙인 팀의 이름은 ‘블루감마’였는데,
그건 내가 첫 만남 때 추천해 준 소설 속에 나오는 AI를 만든 개발사의 이름이었다.)
다음 만남이 있기까지 2주 간
정말 발만 담가보려 했는데, 아주 퐁당 빠져버렸다.
2주 뒤 네 번째 만남에서 공식적으로 합류 제안을 받았다.
나는 이미 마음이 기울었지만, 내 재미 만을 고려한 이기적인 결정인 것 같아서 남편의 의견을 물었다.
남편은 지난 2주간 내가 그 프로젝트를 하면서 행복해하는 걸 보았고, 나에게 그걸 해야만 한다고 했다.
그렇게 내 걱정이 무색하게 순식간에 합류가 결정되었다.
내가 창업을 한다면 왜 할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진 적이 있다.
이유는 두 가지로 수렴한다.
첫째, 내가 좋아하는 것을 마음껏 만들고 그걸 좋아하는 사람들(팀원, 유저)과 함께 즐기기 위해서.
둘째, 그 과정에서 사람들이 틈틈이 소소한 행복을 선물 받았으면 해서.
일단 합류를 결정하고 2달이 지난 시점에서 봤을 때,
이번 시도는 저 두 가지 목표를 달성할만한 잠재력이 충분히 있어 보인다.
이전과 비슷한 꿈을 꾸면서도 이전의 나와는 다를 나의 모습이 기대되기도 한다.
이전 경험을 양분 삼으면서도 과거에 갇히지 않고,
큰 꿈을 꾸면서도 현실과 연결되어 있으며,
제품과 사람들을 위해 조금 더 나은 결정을 할 수 있으리라 믿어본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건, 꾸준히 즐길 것.
총 평: 이제 시작이라 마냥 신남. 앞으로 어떤 일이 닥쳐올지 예상이 안되어서 스릴 넘치는 콘텐츠.
- 기분 회복력: 300% (무한 에너자이저 상태)
- 즐거움: ★★★★★
- 난이도: ★☆☆☆☆ (창업 결정에 대한 난이도를 뜻함. 실제 일의 난이도는 변동성 큼)
- 총비용: 생계를 위협할지도 모름(?) 하지만 얻어지는 콘텐츠 경험과 가치를 생각하면 가성비 최고!
- 색깔로 표현한다면: 반짝반짝 노랑
- 코멘트: 제대로 즐기려면 개인의 결정 외에도 주변의 무한한 사랑과 도움이 있어야 가능한 럭키비키 운수대통 핵유니크 리미티드 콘텐츠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