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매주 쓰기 #1

아니 카스티요 <핑!>

by yeji

내게 워케이션을 처음 떠났던 그때에 대해 묻는 이들이 있다. 내가 처음 대충 둘러대는 말은 이것이다. '일이 너무 많았거든요.' 하지만 정말로 솔직해져 보자. 익숙하지 않은 환경에서 불안감이 높아지는 내가 일하는 장소를 굳이 바꿔야만 했던 이유가 무엇일까? 사무실에서 함께 일하며 받는 스트레스가, 일이 많아서 받는 스트레스보다 압도적으로 컸기 때문이다. 사무실에 앉아 있으면 수시로 들이닥치는 질문에 말도 못 하게 지쳐있던 시기. 차라리 혼자라면 방해받지 않고 실컷 일하고 싶은 대로 일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고성으로 떠났다. 스스로를 유배시켰던 시기였다.


그 유배지에서 그림책의 세계를 처음 만났다. 고성의 일출을 처음 보러 나갔던 날, 미나 님은 내게 그림책을 펼치도록 안내해 준 은인이었다. 고성과 강릉을 여행하는 데 무거운 그림책을 10권 이상 짊어지고 온 사람이라니, 그땐 그저 재미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미나 님은 책을 읽기 전에 명상을 하고 일출을 보며 차를 같이 마시자고 했다. 명상의 ㅁ도 모르는 나지만 미나 님을 흉내 내며 명상을 해봤다. 루프탑에서 내려온 뒤엔 라운지에서 그림책을 골라 들었다. 그때 만난 것이 바로 <핑!>이었다. 그림책답게 사이즈가 컸고, 표지에 그려진 캐릭터가 귀여웠다. 그리고 '핑'이 대체 어디서의 핑인지가 궁금했다.


큰 기대 없이 첫 번째 페이지 그리고 두 번째, 세 번째 페이지까지 펼쳤을 때 바로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여러분, 우리는 이 세상에서 '핑'만 할 수 있어요. '퐁'은 친구의 몫이에요.' 이 문장을 처음 봤을 때 우두커니 멈춰서 책장을 넘기지 못했다. 탁구의 핑퐁이었던 것이다. 흔히 우리가 잘 통하는 이와 '핑퐁이 된다'라고 표현할 때처럼, 탁구를 통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설명하는 책이다. 작가는 책의 초반부에서 이 이야기를 무려 3번 반복한다. 나는 핑, 너는 퐁. 핑과 퐁은 명확하게 서로 다른 이의 몫이라는 것을. 독자가 그 사실을 아주 천천히 받아들일 수 있도록 힘주어 3번 이야기한다. 결국 독자는 스스로 그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된다. 마치 나처럼.


그래서 '퐁'은 내가 아닌 저 사람의 몫이니 내게 남은 선택지는 받아들이는 것뿐일까? 사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하나 더 있다. 나는 얼마나 어떻게 '핑'하고 있는지 살피는 것이다. '퐁'을 겁먹지 말고, 피하지 말고, 무엇보다 온 마음으로 해낼 것! 그 말들이 나의 코너에 정확하게 스매싱을 꽂아 넣었다. 당시 나는 온갖 핑계로 '핑' 하지 않는 상황이었는데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선 퐁이 애초에 돌아올 수 없다. 핑 없는 퐁을 기다리던 나, 핑을 날렸지만 퐁을 받지 못했을 상대방. 상황이 서서히 악화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찾았다. 두께도 무척 얇고 글씨도 한 바닥에 최대 두 줄이 넘어가지 않는 그림책에서 말이다. 무관심했던 그림책에 한 순간에 빠져들었다.


그 이후에도 모든 관계에 당장 많은 핑을 하진 못했다. 한 사람의 관성이란 그런 것이니까. 그러나 할 수 있는 작은 핑을 하기 시작했다. 일에 갇혀서 약속도 잡지 않던 내가 사람들과의 만남을 늘려가기 시작한 것도 딱 그때쯤이었다. 가볍게 보낸 핑에 퐁이 돌아오지 않거나, 무겁게 보낸 핑에 가볍게 돌아온 퐁을 보면서 깨달은 바가 많았다. 기준이 나에게로 맞춰졌다. 최선을 다했는지만을 묻는 것이다. 보고 싶은 이에게 함께 밥 먹고 싶다고, 친해지고 싶은 이에게 한 번이라도 더 만나자고 나는 그렇게 온 마음으로 핑을 하고 있는지 물어볼 수 있었던 것이다. 하여 어떤 '퐁!'이든 다 내게 의미가 있었다. 이제는 놓을 때라는 것을 알려주는 마음 아픈 '퐁'마저도.


워케이션을 다니면서 그 많았던 일을 싹 정리하지는 못했다. 오히려 내가 더 일을 만들어 프로젝트를 이끌곤 했다. 그렇지만 전보다 훨씬 깨끗하게 생각할 수 있었다. 다시 시작해 보자는 마음을 먹었고, 반년이 넘게 핑 날려보고 퐁 돌아오는 몇 번의 과정을 거치자 나름대로 다음 단계로 가는 마음을 먹을 수 있었다. 그리고 저 사람의 ‘퐁’마다 대단한 의미 부여를 하던 과거의 나에게 조금은 거리를 둘 수 있었다. 진짜 중요한 건 퐁 그 자체가 중요한 것보다도 내가 어떻게 받아들일지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다 소통이 어려워지면 힌트를 얻으려고 다시 <핑!>으로 돌아갔다. 저번에는 보이지 않던 문구가 새롭게 읽히는 날들이 있었다.


<핑!>은 내게 '핑'을 날렸고 나는 여러 방향으로 '퐁!' 받아치며 살아왔다. 처음엔 사람 사이에서, 그다음엔 커리어와 일에서, 가끔은 사랑과 때로는 인생의 큰 결정 앞에서 올곧은 방향으로만 보내지 못하고 삐끗한 핑들이 많다. 준비가 안 되었거나 여전히 힘 조절이 안되어서 엉뚱한 방향으로 보내기도 한다. 그래도 이 책은 내게 끊임없이 말을 건다. 다음 '핑'은 무엇인가요? 준비되었다면, 온 마음으로 날려보자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