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저한다는 것은 가야한다는 말
고성을 떠올릴 때마다 온통 좋은 것에 대해서만 글을 써 왔습니다. 고성에서 가장 좋아하는 일출과 행복한 추억들에 대하여, 좋아하는 작은 가게들과 좋아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요. 그런 이야기들을 쓸 때 고성은 마치 낙원 같이 느껴집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제가 진짜로 고성에 가기 전에 한 번은 생각해봐야 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주변 사람들도 한 번쯤은 저에게 "이건 어떻게 하시려고요?" 하며 물어보는 것들이지요. 고성에서의 생활에서 제가 가장 많이 잃어버릴 것들, 그래서 끊임없이 주저하게 만드는 것들에 대하여서요.
가족과 완전히 다른 공간에 살게 되리라는 상상을 해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자취하는 곳을 골랐던 이유도 본가에 가기에 가장 편리하고 좋은 중간 정류장이었기 때문입니다. 자취하는 것을 독립한 것이 아니라, 가족에게서 잠시 떨어져 나와 사는 곳이라고 생각했으니까요. 특히 조카들이 생긴 이후엔 가족과 더욱 자주 만났습니다. 조카들을 2주 이상 보지 않은 적이 없었습니다.
이어져 가던 커리어가 고성에서 끊기면 어떡하냐는 걱정들도 참 많습니다. 물론 저는 이미 일하던 형태를 바꾸고 있지만, 언제나 예상은 현실과 빗나가기 마련이니까요. 며칠 전에는 <시대예보> 시리즈를 쓰신 송길영 작가님과 만나서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는데, 강원도 고성은 제가 가진 업에 대한 수요가 너무 적은 지역이라며 가지 말라는 단호한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따로 검색해 본 것도 아닌데 고성군 인구가 2만 명 대라는 사실도 이미 알고 계시더라고요.) 그 말이 서운하거나 나쁘게 들린 것이 아니라 참 현실적이라 생각해 볼 만한 지점이었습니다.
서울에 있으면 저는 아주 바쁜 사람이기도 합니다. 많으면 일주일에 5~6일을, 적어도 일주일에 2~3번은 일 외의 일정이 있습니다. 고성에 가게 되면 평소 참여하는 모임이나 알고 지내온 지인들과 보낼 수 있는 시간이 분명히 적어질 겁니다. 독서모임을 하러 서울에 올라올 때도 많은 걱정들이 따라올 테고, 보고 싶은 전시가 하나 있어도 선뜻 가겠다고 마음을 먹기 쉽지 않을 거예요. 오가는 기름값과 운전에 대한 걱정, 가끔은 버스값이나 이동할 때의 피곤함까지도 모두 짐이 되겠지요.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은 한편으로 새로운 문을 열 기회로 읽힙니다. 주저하게 만든다는 것은 오히려 꼭 가야만 하는 이유가 숨어있다는 뜻이 아닐까요? 제게 진짜로 두렵고 무서운 것은 주저하며 걱정하다가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시간을 흘려보내는 비용은 그 어떤 것으로도 복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시간은 유한하고 지금이 아니면 할 수 없는 것들이 있으니까요.
가족과 새로운 공간에서 보낼 수 있는 추억이 늘어나게 될 거란 상상은 참 설레는 일입니다. 가족에게는 한 번씩 그런 큰 변화들이 활력을 불어넣어 주기도 한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더 기대하고 있을 수도요. 마치 제 조카들이 처음 생겼을 때처럼요. 그저 작은 아이 하나 생겼을 뿐인데 전과 확연히 달랐지요. 소중한 조카들에게도 이모가 사는 곳이 바닷가 앞일 때만 가능한 경험들을 잔뜩 안겨 주고 싶습니다. 서울의 오피스텔이 아니라요.
서울이 아니라고 해서 끊길 커리어라면 솔직히 당장 끊겨 버려도 억울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고객이 멀리 떨어져 있어야만 한다면, 대면하는 것처럼 잘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먼저일 것 같아요. 서울에 내가 있다고 해서 또 내게 일이 당연히 맡겨지는 건 아닐 테니까요. 앞으로 조직의 규모는 점점 더 소규모로 바뀔 텐데 저처럼 프로젝트 단위로 자유롭게 일하는 사람들은 계속 많아질 겁니다. 그렇다면 앞으로의 10년을 생각해서라도 저의 일을 새롭게 만들어 나가야 하는 시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학교를 졸업한 지 얼추 10년이 되었습니다. 그때 뭐든 하고 싶었던 마음으로, 또 한 번 뭐든지 다시 해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드네요.
서울이 아닌 고성에서도 재미있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작은 가게들과 새로운 시도들이 계속 펼쳐지고 있고요. 제게 고성은 서울에서도 못 만나던 사람들을 만나던 곳이기도 합니다. 만약 그런 이벤트가 없더라도 제가 만들면 되는 것이 아닐까요? 유병욱 CD님이 해주신 말씀인데요, 인풋도 아웃풋도 필요하지만 우리에겐 NO PUT의 시간이 분명히 필요하다고 합니다. 의도적인 단절과 거절로 만들어 낸 시간에 내가 스스로 고민하고 몰입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죠. 그러려면 무언가를 포기해야 하는데 지금 제 일상엔 그런 것들 투성이니까 이제는 끊어낼 것은 끊어내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진짜 중요한 것은 시간이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흘러버리도록 가만히 두지 않는 것입니다. 한정된 시간 동안에 끊임없이 좌절하고 기쁘고 충분히 슬퍼하고 행복하도록요. 하고 싶은 것을 항상 머리에 정확히 떠올리고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나아가지 않으면 결국 모래같이 흩어진 시간과 하지 못했던 후회에 더해진 기회비용들만 곁에 남을 겁니다. 그래서 나중이 아니라 지금 당장 몸을 움직여서 실패든 성공이든 한 번은 가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 시기가 미뤄질수록 곱절로 불어날 걱정과 불안을 떠올려보세요. 오늘이 가장 값싼 값을 치루게 될 날일 겁니다.
정말 바보 같은 것은 이것도 저것도 다 하려고 하다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놓치는 것입니다. 일단 제가 마음을 정했다면 안 될 이유는 이미 충분히 고려해 보고 그 결정을 내렸을 겁니다. (그도 그럴 것이 분석과 심사숙고가 최상위 강점인 사람이니까요.) 그런 나를 믿고 이젠 될 이유만 골라서 더 날카롭게 벼려야 할 시간이 아닐까요. 나부터 강력하게 믿어야 합니다. 된다고 믿기 때문에 가능해지는 기적 같은 일들이 세상엔 있습니다. 아니 많습니다.
우리를 붙잡는 건 다른 이가 아니라 사실 다른 이의 입을 빌린 우리 자신의 생각들입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뭔가 두렵다는 생각이 든다면, 우리의 그릇이 비워야만 채워질 수 있다는 사실을 떠올려 봅시다. 그릇에 어느 새 가득 차버린 딱딱한 고정관념, 과거의 경험, 굳어진 신념을 깨버리고 한 번은 새로운 물을 담으러 나가서 놀아보자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