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일기
1/5일 새벽 3시 (출산 11시간 후)
이제 곧 아침이 오려나 싶었는데 시계를 보니 3시 밖에 되지 않았다.
이제야 통증도 좀 가시고 정신이 든다.
얼른 봄이도 보러 가고 싶고 눈 뜨면 어떤 모습일까 너무 궁금하다.
젖도 물려보고 싶다. 참 이상한 일이다.
아직 얼굴도 못 봤는데 봄이에게 막 애정이 생긴다.
마취 풀린 직후의 통증은 정말 어마어마했다. 생각해 보면 배를 그냥 칼로 가른 거니까 안 아프면 이상하지.
통증을 잘 참는 편인데 진통 주사 놓느라 복대를 푸는 순간 너무 아파서 악 소리를 지르고 욕도 해버렸다. (간호사 선생님이 숨죽여 웃으셨다.) 그래도 그때 한 번뿐이라 다행이다. 그 진통 주사 효과가 이제 떨어질 때가 됐는데 거의 안 아픈 걸 보니.
병원에 도착한 시간은 병원에서 오라고 한 8시가 조금 지난 시간이었다. 커다란 캐리어 하나를 들고 풍과 함께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으려니 꼭 어디론가 여행을 떠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지난여름에 힘든 업무를 마치고 난 뒤 갑자기 심하게 어지러워서 밤에 급하게 응급실을 찾은 적이 있었다. 그때 방문했던 5층 분만실 앞에 이번엔 정말 분만을 하러 왔다. 남편은 잠시 밖에서 기다려야 했다. 유리 문을 지나 들어가니 긴 복도를 따라 양쪽으로 가족분만실이 여러 개 있었다. 5번 분만실로 들어가 어색하게 두리번거렸다. 이곳에서 곧 아주 큰일이 일어나겠구나. 옷을 갈아입고 조금 기다리니 풍이 들어왔다. 잠시 떨어져 있었는데 무척 반가웠다.
출산 예정일이 일주일이나 지났기 때문에 유도 분만을 시도하기로 했다. 문제는 아직 자연적인 진통이 한 번도 없었다는 것이다. 출산을 하기 위해서는 자궁이 수축해야 한다. 자궁 수축이 바로 진통이고 자연적으로 진통이 오지 않는 경우 촉진제를 투여해서 자궁 수축을 유도하는 것이 바로 유도 분만이다. 하지만 아무래도 인위적으로 하는 것인 만큼 잘 안될 가능성이 높다. 오랫동안 작고 큰 진통을 겪다가 결국 실패하고 제왕절개 수술을 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
예정일은 12월 28일이었는데 2022년 생으로 태어나게 하고 싶어서 마지막에 출산에 좋다는 운동 등을 거의 안 했다. 봄이에게 며칠만 더 참아라 참아라 하다가 1월 1일이 지나자 이제 빨리 나와라 나와라 했다. 정말 어른들은 제멋대로다. 그치 봄아? 봄이는 제멋대로인 어른들 뜻대로 고분고분 따라 줄 생각이 없었나 보다.
환자복으로 갈아입고 내진을 했다. 그동안 정기검진에서 내진을 한 번도 한 적이 없기 때문에 다들 그렇게 아프다고 하는 내진이 어떤 건지 오늘에야 알게 됐다. 살짝 긴장했지만 그냥질에 검지와 중지를 쑥 넣고 살짝 벌려서 자궁 문이 얼마나 열렸는지 확인하는 거다. 질 초음파나 자궁경부암 검사할 때 느낌이랑 비슷해서 그렇게 아프진 않았다. 물론 그 느낌은 늘 그리 유쾌하진 않다.
놀라운 사실은 내 자궁경부가 이미 3-4센티나 열려있었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출산 후기에서 진통이 엄청 오는데도 자궁문이 안 열려서 진통제도 못 맞고 엄청 고생했다는 얘기를 많이 본 지라 자궁문이 많이 열렸다고 하니 뭔가 수월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무통주사라는 게 있는데, 쉽게 말해 진통 주사다. 아기가 나오려고 할 때 엄청나게 아프기 때문에 그 통증을 덜 느끼도록 해주는 주사인데 이 주사를 맞으면 순식간에 통증이 사라져서 산모들 사이에서는 무통 천국이라는 말로 유명하다. 척추 주사라서 기피하는 사람도 있다는데 나는 그냥 맞기로 했다. 옆으로 돌아누워 새우처럼 등을 말고 척추에 관을 삽입한다. 나중에 이 관으로 진통제를 흘려보내는 것이다. 척추에 주사라니. 사실 좀 무섭긴 하다. 하지만 나는 애써 안 무서운 척했다. 산모들에게 막말을 던지기로 유명한 이 병원 마취과 선생님이 나에게 주사 잘 맞는다고 칭찬해 줬다.
이제 만반의 준비는 다 끝났는데 봄이가 아직도 나올 생각이 없다. 좁은 분만실 안을 왔다 갔다 하며 나름대로 운동을 했다. 짐볼도 타고. 나와라 나와라.
두 번째 내진은 담당 의사 선생님이 와서 했다. 진료실과 분만실을 바삐 오가느라 늘 앞머리가 촉촉이 젖은 채 우리를 맞아주던 의사 선생님을 오늘은 바로 그 진땀의 현장에서 만났다. 자궁문은 7센티나 열렸는데 아기가 아직 너무 위에 있다고 한다. 많이 걸으라고 하고 가셨다. 봄이야, 엄마 뱃속이 좋니? 이제 그만 내려와.
몇 시간이 지났다. 드디어 진통이 조금씩 오기 시작했다. 하하 호호 웃으면서 봄이의 신호를 기다리고 있던 나와 풍은 살짝 긴장하기 시작했다. 나는 모로 누웠고, 풍은 내 손을 잡았다. 배에는 봄이의 심장박동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측정기를 붙여 두었다. 심박측정기에서 봄이 심장 소리가 들렸다.
진통은 생리통과 비슷한데 조금 더 아프다. 그 느낌이 밀물이 밀려오듯이 쏴하고 오다가 다시 사라진다. 침대에 누워 호흡을 시작했다. 4시간 만에 유도 분만을 성공했던 시누이는 자신의 순산 비법으로 호흡을 꼽았다. 어젯밤이 돼서야 유튜브를 보고 부랴부랴 호흡 연습을 한 것 같지만 사실 나는 20대 때부터 호흡을 준비해 온 사람이다. 대학생 때 취미로 보컬 학원을 다녔었는데 살짝 오버해서 거의 1개월 정도를 호흡 연습만 했었다. 숨을 복부 깊숙이 넣어 배를 부풀리고 천천히 깊고 크고 길게 들이쉬고 내쉬는 호흡인데 선생님이 이걸 시키면서 복식호흡을 잘 하면 나중에 출산에 도움이 된다고 했었다. 대충 웃자고 한 소리지만 왠지 좀 더 열심히 연습할 동기부여가 됐던 거 같다. 그리고 필라테스나 요가를 배우면서도 호흡 연습을 많이 했기 때문에 복식 호흡은 자신 있었다. 유튜브에서 알려주는 출산 호흡도 그것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본격적으로 진통이 오면 오히려 숨을 짧게 쉬고 마지막에 힘줄 때는 절대 소리를 내면 안된다는 것 정도만 추가로 기억해두었다.
흐윽.. 진통이 온다. 눈을 질끈 감고 숨을 깊게 쉰다. 풍은 내 손을 잡고 호흡을 도와주면서 응원을 한다.
"들이쉬고- 내쉬고- 여보 너무 잘하고 있어."
별거 아닌 것 같은 말이지만 그 순간에는 그 말이 큰 의지가 되고 마음에 안정을 준다.
갑자기 간호사 선생님들이 들어왔다. 밖에서 태아 심박을 모니터링하고 있는데 갑자기 심박 수가 떨어져서 들어와 보신 거다. 알고 보니 내가 살짝 뒤척이느라 심박 측정기가 봄이 심장 위치에서 떨어져서 졸지에 내 심박 수가 잡힌 거였다. 도로 제대로 잘 붙이고 나가셨다.
다시 우리 둘이 남았다. 아니 셋이 남았다. 진통은 봄이가 나오려는 몸부림이다. 진통이 올 때 나는 봄이의 존재를, 의지를 느꼈다. 하나, 둘, 셋, 영차영차 하고 힘을 모아 줄을 당기는 줄다리기처럼 우리 셋은 그 순간에 한마음 한뜻이었다. 그게 너무 좋았다. 비록 누워서 끙끙대고 있었지만 진통의 아픔, 출산에 대한 두려움보다 우리 셋의 최초의 팀워크가 나를 고양시키고 동시에 안심시켰다. 착한 아기. 나오려고 노력하고 있구나. 엄마 아빠가 도와줄게. 그렇게 한참을 밀려오고 밀려가는 진통을 견디며 더 큰 진통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다시 간호사 선생님들과 이번엔 의사 선생님까지 들어오셨다. 내진을 하고 심박 모니터링을 하시더니 아기 심장 박동이 떨어지고 있다고 했다. 아까는 측정기 문제였지만 이번엔 진짜로 봄이의 심박수의 문제였다. 아직 너무 작고 연약한 봄이가 좁은 산도를 통과하기 위해 애를 쓰고 있지만 힘에 부쳐서 심장 박동이 느려지고 있다는 것이다. 진통이 올 때마다 봄이의 심박수가 떨어졌다.
수술을 해야 할 것 같다고 하셨다. 웬만하면 자연분만을 하고 싶었다. 내 몸의 회복도 빠르고 봄이의 의지대로 태어나는 그야말로 자연스러운 방법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가 위험하다면 고집할 수는 없는 일이다. 더군다나 심장박동기를 통해 느려지는 봄이의 심장소리를 내 귀로 직접 들었으니 말이다. 우리 아기, 지금 많이 힘들구나. 빠르게 결정했다. 우리 담당 의사 선생님은 체구도 작은 여자분이신데 상냥한 말투와는 대조적으로 의료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굉장히 단호하신 편이다. 글쎄요, 이럴까요, 저럴까요 되려 우리에게 물어보는 법이 절대 없다. 이게 좋습니다. 이렇게 하셔야 합니다. 그래서 이번에도 나는 선생님을 믿었다.
결정을 하고 나서 그다음 과정은 정말 빠르게 진행됐다. 풍은 보호자로서 수술 동의서에 서명을 했다. 나는 팔에다가 항생제 테스트 주사를 맞았다. 테스트 결과가 나오자마자 심장 박동기를 제거하고 휠체어로 옮겨 앉아 수술실로 향했다. 언제 어떻게 풍과 인사를 나눴는지도 생각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분명 씩씩하게 인사했을 거다. 은은한 조명과 클래식 음악이 흐르던 분만실을 나와 환한 불이 켜진 복도를 휠체어를 타고 지나갔다. 수술실로 가는 짧은 시간 동안 생각했다. 나는 이렇게 제왕절개 분만을 한 사람이 되는구나. 아쉽다.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봄이가 위험하니까 어쩔 수 없다. 내가 일주일 더 고생하는 건 전혀 상관이 없다. 그러나 영문도 모르고 갑자기 배 밖으로 꺼내져서 환한 수술실 불빛을 보는 봄이는 당황스럽지 않을까? 너무 놀라지 않을까? 걱정이 됐다. 그때 제왕절개로 출산한 많은 동지들을 떠올렸다. 소윤이도, 서윤이도 다 제왕절개로 태어나서 지금 너무 예쁘게 잘 크고 있잖아. 그리고 우리 엄마도 나를 제왕절개로 낳았잖아. 괜찮아, 다 잘 될 거야.
수술실은 심지어 더 환하고 추웠다. 휠체어에서 내려 수술대로 올라갔다. 약간 실험대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의료진을 믿으니까 담담하고 빠르게 시키는 대로 했다. 초등학생 때 미끄러져서 귀가 찢어진 이후 수술은 처음이다. 이미 속옷은 다 벗고 원피스 환자복을 입고 있긴 했지만 수술대에 오르면 정말 하반신을 훤히 다 드러내야 한다. 창피하다는 생각이 0.5초 정도 들었지만, 이건 의료 행위니까... 제왕절개 부위는 팬티라인보다 살짝 아래다. 그러다 보니 음모로 인해 감염이 될 수도 있어서 음모를 제거해야 한다. 이것 때문에 브라질리언 왁싱을 하고 가는 산모들도 있다고 하는데,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 간호사 선생님들이 무료로 빠르게 슥슥 면도해 준다. 창피하다는 생각이 0.7초 정도 들었지만, 이건 의료 행위다.
수술대 위에 누워서 기다리는데 별로 긴장이 되지 않았다. 아까 그 막말 마취과 선생님을 다시 만났다. 소문대로 담배 냄새가 난다. 간호사들을 구박한다. 야 니들 약병 이렇게 섞어 놓으면 안 된댔지. 이거 헷갈리면 큰일 나. 음.. 간호사들을 가르치는 건 좋은데.. 듣는 환자가 매우 불안하거든요? 불안하든 말든 나는 누워있는 환자고 마취제를 맞고 그냥 잠들어버렸다.
"정신이 드세요? 입에 있는 거 빼보세요. 혀로 미세요."
혀? 나에게 혀가 있나? 혀를 어떻게 움직이지? 그래도 모범생인 나는 열심히 노력해서 간신히 밀어냈다. 그게 뭔지도 모르겠다. 정신을 차려 보니 옆에 풍이 있었다. 아, 수술 끝난 거구나. 무슨 말을 처음으로 해야 하지?
"건강해?"
오직 그것만이 궁금했다. '응, 건강해. 건강해.' 그 말을 듣고 나는 다 안심이 되었다. 그런데 풍은 내가 너무 걱정이 됐나 보다. 목소리가 파르르 떨렸다. 사실 나는 담담했는데 그 목소리를 듣고 나도 마음이 떨리고 눈물이 왈칵 나왔다. 괜찮아 나는 괜찮아.
마취가 깨고 나서 바로 병실로 옮겨졌다. 나는 잠시 잠들었다가 깼는데 그 사이에 내 배는 갈라졌다 다시 꿰매졌고 10개월 동안 뱃속에서 자라던 아이는 이제 밖으로 나와 자기 힘으로 숨 쉬고 있다. 풍이 봄이 동영상을 보여줬다. 엄청난 소리로 울고 있었다. 이랬구나. 태어나자마자 이런 모습으로 울었구나. 영상 속에서 풍이 탯줄을 끊는다. 간호사가 이렇게 하라고 하는데 못 알아듣고 저렇게 한다. 풍 다워서 웃겼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것보다 더 어버버 하는 아빠들도 많다고 한다.) 봄이가 태어나자마자 안아주지 못한 게 여전히 너무 아쉽다. 태어나자마자 그 울음소리를 직접 듣고 아기를 직접 보면 어떤 기분일까?
수술 직후의 산모는 누워서 꼼짝 못 한 채로 링거를 맞고 소변줄을 꽂고 물도 마실 수 없고 배가 아파서 크게 웃거나 기침도 할 수 없지만 할 수 있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핸드폰. 여기저기 소식을 알렸다. 많은 이들이 기뻐하고 축하해 줬다. 그날만큼은 나와 봄이가 주인공이 된 것 같은 기분을 마음껏 느꼈다. 출산 후 3시간, 저녁 7시가 되어서야 신생아 면회가 가능했다. 나는 갈 수 없으니 풍이 가서 사진을 찍어왔다. 얼굴은 동그랗고, 입술은 빨갛고, 머리숱은 풍성했다. 안녕 봄이야. 고생했다. 힘들어서 푹 자고 있구나. 우리는 언제 만날 수 있을까?
병원에 있는 동안, 조리원에 있는 동안 생각보다 심경이 많이 복잡했다. 호르몬 때문일까, 엄청난 변화를 겪었기 때문일까. 특히 병원에 있는 동안은 통증과 싸우고 체력을 회복시키느라 몸이 많이 힘들었는데 마음도 참 힘들었던 것 같다. 잠도 잘 못 자고 악몽도 많이 꿨다. 4인실을 쓰느라 풍과 대화도 숨죽여 하고, 밤에 신음 소리도 제대로 내지 못했다. 내리 악몽을 꾸고 마지막 이틀을 1인실을 쓰기로 하고 옮긴 날, 풍과 밀린 대화를 하다가 내 마음이 그렇게 힘들었던 이유 중 하나를 알게 됐다.
"아쉬워 너무 아쉬워. 우리 셋이 힘을 합쳐서 잘 하고 있었잖아. 잘 할 수 있었는데... " 울며 소리 내어 말하고 나니 그래도 조금은 치유가 되는 느낌이었다.
"봄이를 위해서 가장 좋은 선택을 한 거야."
맞다. 봄이를 위해 가장 좋은 선택을 한 것이니 후회할 것은 하나도 없다. 그리고 나에겐 언제고 떠올리면 힘이 될 기억이 남았다. 이 기억만큼은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우리의 것이다. 그것은 앞으로 수없이 하게 될 우리 셋의 팀워크 중 가장 최초의 그리고 꽤나 훌륭했던 팀워크였다.
잘 부탁한다 신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