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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예지 변호사 Mar 23. 2020

고마워요. 돌아와줘서.

살아야겠다. 나도, 그리고 당신도.

나의 사랑 김우빈님이 3년만에 돌아왔다. 길고 긴 터널을 지나 돌아와 주었다. 얼마나 두려웠을지, 얼마나 외로웠을지, 그 걸음이 얼마나 조심스러웠을지 누구보다 잘 알기에 정말 고맙고 또 고맙다.      


나 역시 암환자였다.

9년 전 딱 이맘때, 원인도 모르게 시름시름 앓다가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던 어느 날 결국 병원에 실려 갔었다.


당시 나는 로스쿨에 재학중이었고 막 2학년에 올라갔을 때였다. 뒤늦게 전공을 바꾸어 30대에 시작한 새로운 공부가 너무 재미있어서 정말 미친 듯이 공부를 하던 중이었다.

 

그런데 그 날 이후 갑자기 모든 것이 멈추었다.      


중간고사를 준비하던 나는 암환자가 되었고, 항암치료를 시작했고, 학교를 휴학해야 했다.      


1차 항암치료를 마치고 퇴원한 다음 꽤 많이 나온 치료비에 바로 실비보험청구를 해야 했다(몸이 아파도 이런 일들은 어김없이 기다리고 있다). 울렁거리는게 조금 가라앉기에 보험회사에 보낼 서류를 복사하려고 학교 앞 복사집(당시 나는 학교 앞에 살고 있었다)에 겨우겨우 갔는데, 오전 이른 시간이라 동기들이 그 앞을 계속 지나가는거다(한 달 만에 동기들 얼굴을 보는 거였다).      


복사집이 반지하라 동기들은 나를 보지 못한 채 나만 동기들이 지나가는 걸 바라보고 있는데, 반가운 마음 뒤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그들은 햇볕 속에서 그들의 길을 쭉쭉 가고 있는데, 나 혼자 지하에 갇혀서 오도가도 못하고, 갇혀버린 느낌이었다.      


막막했다. 그리고 정말 무서웠다.      


사실 나는 치료기간 내내 아주 몹시 매우 긍정적인 마음으로 굉장히 잘 지냈고, 거의 울지도 않았다. 다행히 치료결과도 아주 좋았고, 긴 시간이 지나 완치판정도 받았다.      


하지만 그 때는 나 혼자 앞이 보이지 않는 깜깜한 터널 속에 갇힌 것 같았다. 나도 다시 저 햇볕 속에 서 있을 수 있을런지 궁금했다.      


그러나 나는 비련의 여주인공은 되지 않기로 했다. 반드시 돌아가기로 했다. 그 욕망만으로 치료에 전념했다. 숨 쉬는 것도 힘들어 가만히 누워만 있던 시간도 그렇게 버텼다. 1년이면 돌아갈 수 있을 거란 생각이 턱도 없는 생각이었다는 것을 깨닫고 1년을 더 요양해야 했을 때에도, 나는 괜찮았다. 어쨌든, 언제든, 나는, 돌아갈거니까...     


사람들의 걱정을 뒤로하고 로스쿨에 복학했을 때, 참 많은 것을 배웠다.

크게 숨쉬기, 멀리보기. 내려놓기...     


복학해서 처음에는 남들 체력의 반도 되지 않았다. 남들이 10시간을 앉아있을 때 나는 서너시간도 채 앉아있지 못했다. 아프기 전과 같은 욕심은 부릴 수가 없었다. 한 학기만 버텨보자, 1년만 넘겨보자, 졸업만 하자, 변호사시험만 보자... 이렇게 나를 달래가며 응원하며 보냈다. 그래도 좋았다. 돌아왔으니까.      


다행히 내 옆에는 나를 응원해주고, 보살펴주는 좋은 사람들이 많았다. 살아줘서 고맙다고 이야기해주는 가족들이 있었다.      


덕분에 한걸음 한걸음 깜깜한 터널을 묵묵히 걸었다. 걷다 보니 저 멀리 빛이 보였고, 어느 순간 터널을 빠져나와 있었다. 물론 다 빠져나온 줄 알았는데 재발이 의심된다는 청천벽력같은(솔직한 심정으로는 쌍욕이 튀어나오는 ^^;;;) 순간들도 몇 번 있었지만(다행히 아니었다), 지금 나는 살아남았다.

 

한 집 건너 한 명씩 암이라더니, 지인들이 암에 걸렸다는 소식을 듣는다. 지금 어떤 마음일까... 나 역시 숨이 잘 안쉬어진다. 간절히 소망한다. 그들도 꼭 살아주기를.


김우빈처럼, 허지웅처럼(허지웅씨는 나와 같은 병이다. 고생 많았어요~!), 병을 딛고 돌아와 주는 사람들이 너무나 반갑다. 얼마나 힘들었을지, 얼마나 외로웠을지, 말하지 않아도 안다. 너무나 장하고, 너무나 대견하다. 돌아와 줘서 정말이지 아주 몹시 매우 고맙다.      


아직 터널 속에 있는 분들

힘을 내시기 바란다.

힘을 내주는 것만으로도 고맙다.

힘을 내주는 것만으로도 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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