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터디 셋째날] 롱아일랜드 아이스티: 관계는 달고 시다.
제가 칵테일을 좋아하는 이유는 다양한 맛이 섞여서 새로운 맛과 향을 만들기 때문입니다. 여러 가지 재료를 섞는 과정에서 마시게 될 사람만을 오롯이 생각해야 한다는 것도 장점입니다. 개별 존재를 존중하되 포용까지 하는 칵테일 같은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술터디 셋째날 시작합니다.
# 롱아일랜드 아이스티
콜린스 글라스 가득 얼음을 넣고, 재료를 다 넣은 후엔 7~8회 젓습니다. 아이스티의 색과 맛이 나서 롱아일랜드 '아이스티'인데요, 콜라를 너무 많이 넣으면 아이스티의 색과 맛이 사라지기 때문에 적당히 넣어야 합니다. 콜라를 제외한 재료를 셰이킹해서 만들기도 합니다.
롱아일랜드 아이스티는 1972년 미국의 뉴욕 동남부의 섬 롱아일랜드의 바 오크비치 인(Oak Beach Inn)에서 처음 탄생했습니다. 이 해에 칵테일 경연 대회가 열렸는데요, 대회에는 반드시 트리플 섹을 사용해서 칵테일을 만들어야 한다는 조건이 있었습니다. 당시 오크비치 인의 바텐더 로버트 버트(Robert Butt)가 이 경연대회에 참가했고, 홍차 맛이 나는 독특한 칵테일을 선보인 데서 시작됐습니다.
롱아일랜드 아이스티는 조주기능사 실기 레시피와 국제 바텐더 협회의 레시피가 다릅니다. 위에 소개한 레시피는 조주기능사 실기 레시피고, 아래가 국제 바텐더 협회 레시피입니다.
가장 눈에 띄는 차이는 스윗앤사워믹스의 유무입니다.
# 스윗앤사워믹스
스윗앤사워믹스는 말 그대로 달고 신 맛을 내는 재료들이 섞여 있는 액체입니다. 스윗앤사워믹스 시럽에 파인애플주스, 사과주스를 넣거나, 레몬파우더에 시럽을 넣는 등 여러 재료들을 어떤 비율로, 얼마만큼 넣을 지는 바텐더가 결정합니다. 그래서 스윗앤사워믹스를 통해 술에 대한 바텐더의 열정을 엿볼 수도 있습니다. 이런저런 시도를 해야지만 맛있는 스윗앤사워믹스를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스윗앤사워믹스는 롱아일랜드 아이스티에 들어가는 여러 가지 재료 중 하나일 뿐인데 대충 만들어도 맛에 큰 영향을 안 줄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스윗앤사워믹스는 롱아일랜드 아이스티 맛의 키를 쥐고 있습니다. 맛있는 스윗앤사워믹스는 롱아일랜드 아이스티의 달콤한 향과 깊이를 만들어냅니다. 그 반대의 경우 롱아일랜드 아이스티에서 ‘아이스티’는 사라지고 ‘폭탄주’만 남습니다. 제멋대로 섞인 술들이 어지러운 향을 내고, 스윗앤사워믹스가 이 향들을 잡아주기 보다는 알 수 없는 맛과 향을 추가해버리기 때문입니다.
스윗앤사워믹스가 롱아일랜드 아이스티에만 쓰이는 것이라면 ‘대충 만들어도 된다’는 주장을 받아들일 수 있을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스윗앤사워믹스가 쓰이는 칵테일은 무척 다양합니다. 알코올계의 육수라고 볼 수 있는 거죠. 좋은 육수가 찌개, 국, 각종 반찬 등에 쓰이면서 깊이를 더하듯, 좋은 스윗앤사워믹스 하나를 만들어 놓으면 다양한 칵테일들이 깊이 있는 맛을 낼 수 있습니다. ‘달고 신 그냥 음료’라고 하기엔 너무나 중요합니다.
# 행동은 몸에 시나브로 스며든다.
인간관계가 스윗앤사워믹스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바텐더의 노력에 따라 스윗앤사워믹스의 맛이 달라지고, 이 달라진 맛은 칵테일의 맛을 좌우합니다. 사람을 만나고, 관계를 맺는 것 또한 개인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비슷합니다. 내가 얼마나 힘을 쏟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는 점에서 스윗앤사워믹스 같습니다.
한 사람과의 관계만 놓고 보면 크게 힘을 쏟을 필요가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또 다른 사람을 만나면 되니까요. 하지만 작은 관계에서 내가 했던 행동들이 다른 곳에 간다고 크게 바뀌지는 않습니다. 행동이 몸에 배어 버리니까요. 이렇게 모인 인간관계들은 전체 삶에 영향을 줍니다. 내가 평소에 관계에 힘을 쏟고, 좋은 사람을 곁에 두려고 노력할수록 인간관계의 단 맛과 신맛은 조화를 이루기가 쉽습니다. 달고 신 맛이 잘 조화를 이루는, 맛있는 인간관계는 인생의 깊이도 더합니다.
# 인간관계는 달고 시다.
저는 입시, 학교 프로젝트, 입사 등 제 인생에 중요한 일을 앞두고 있을 땐 모든 인간관계를 내팽개치고는 했습니다. 내 상황이 조금이라도 괜찮아지면 쉽게 새 사람을 만나거나, 어그러진 관계를 다시 복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잘못된 생각이었습니다. 평소에 맛있는 스윗앤사워믹스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막상 칵테일을 만들 때 쓸 재료가 없는 것처럼, 평소에 사람과 관계 맺는 법을 잊어버린 저는 중요한 순간에 가서 필요한 인간관계를 만들어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때마다 신 맛만, 단 맛만 느껴지는 인간관계를 만들며 들쭉날쭉한 감각들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지금이라도 주변에 더 관심을 가지며 너무 달거나, 너무 신 게 아닌 단 맛과 신 맛이 적당히 섞인 사람관계를 만들겠다고 다짐합니다. 맛있는 스윗앤사워믹스가 칵테일의 깊은 맛을 내듯 단맛과 신맛이 조화된 인간관계는 제 인생도 더 깊이 있는 맛을 낼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라고 믿습니다.
참고로 스윗앤사워믹스는 술에 섞지 않고 그냥 물에 타서 먹어도 맛있답니다. 곧또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