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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써머 Nov 22. 2020

컴퓨터 학원에 등록하다

컴알못이라... 컴퓨터 학원은 처음인데요...

나는 생각만 해도 무서운 것이 수도 없이 많았는데, 그중 대표적인 게 외국어와 컴퓨터, 그리고 세금 같은 ‘공적 업무’를 처리하는 일이었다. 나는 그것들과 담을 쌓으며 살아 왔고 피할 수 있으면 계속 피하고 싶었기에 컴퓨터 학원에 등록했을 때 나는 내가 있는 곳이 무려 ‘컴퓨터학원’이라는 사실에 어색함과 쑥쓰러움, 은근한 뿌듯함마저 느꼈다. 별 것 아니지만 그 별 것 아닌 그게 또 사람을 되게 우쭐하게 하는 법이니까. 엣헴...


나는 국비 지원을 받아서 집 근처 컴퓨터학원의 ‘프리미어프로와 에프터이펙트를 활용한 유튜브 영상 편집 수업’에 등록했다. (주제와 상관없는 얘기지만 나는 ‘구직자 전형 - 일반전형’으로 등록했는데, 나와 같은 입장이라면 ‘취업성공패키지’를 추천한다. 등록금은 얼마 차이가 안 나지만 학원 수업이 끝난 후 지원금이 나온다. 나는 그걸 몰랐다. (눙물)) 수많은 국비 지원 수업들 중에 영상 편집을 등록한 이유는 심플했다. 나는 콘텐츠 크리에이터가 되고 싶었기 때문에 간단한 영상 평집을 할 줄 안다면 취업할 때 플러스요인이 되고 영상 편집자들과 소통하기도 더 수월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평일 아침 9시부터 오후 2시까지 2달 반 가량을 공부했다.


두 달 반의 수업은 굉장히 빡빡한 일정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개강 직후 열흘 정도는 포토샵과 일러스트레이터라는 이미지 편집 툴의 기본 기능을 익혔고, 3주 정도는 프리미어프로를 이용한 컷 편집을, 한 달 정도는 에프터이펙트를 활용해 영상에 모션이나 효과를 주는 방법을 익혔다. 그리고 이후 남는 시간은 포트폴리오를 만드는 데 썼다. 


학원을 다니기 전 나는 프리미어프로와 에프터이펙트는 물론이고 포토샵과 일러스트 한 번 조작해본 적이 없었다. 그 프로그램들을 어떻게 켜는지, 어떻게 설치하는지도 몰랐다. 그래서 나는 취업 면접이 있던 날만 빼고는 하루도 빠짐없이 출석했고, 주말에 하는 포토샵 단과 수업도 따로 들으며 GTQ 그래픽자격증도 땄다. 학원을 파하면 방안에 틀어박혀 그날 배운 내용을 복습하고 과제를 했다. 새로운 것들을 배우며 어떻게 가는지도 모를 시간이 갔다. 정말 빨리도 갔다. 영상 편집 학원을 다니면서 느낀 장점과 단점을 간단히 소개하자면 이렇다.




장점


1. 물어보고 조언을 받을 곳이 있다 : 요즘엔 유튜브에도 영상 편집 방법을 알려주는 좋은 콘텐츠가 많지만 독학을 하면 문제가 생겼을 때 물어볼 곳이 없다는 게 가장 곤란했다. 특히 초반에는 뭘 잘못 누르는 경우도 많고 초기 세팅도 컴퓨터마다 달라서 이때 바로바로 해결하지 않으면 다음 진도로 나가는 게 무척이나 어렵다.  


2. 어떻게든 진도를 나간다 : 작심삼일이 몸에 밴 나 같은 사람은 이 점이 가장 좋았다. 내가 그 기능을 완벽히 이해하지 못했어도 다음날이면 다른 진도를 나갔기 때문에 선생님께 따로 여쭤보든 밤을 새든 어떻게든 기능을 익히고 과제를 했다. 또 학원을 마치는 날이 딱 정해져 있기 때문에 그 안에 선생님께 최대한 많은 걸 물어보고 확인받고 해결(?)해야 한다는 압박감도 작용했다. 


3. 나만의 포트폴리오가 생긴다 : 디자인이나 영상 쪽 취준이 처음인 사람들은 어떤 포트폴리오를 만들어야 하는지도 감을 못 잡는 경우가 많은데, 진도에 따라 선생님이 어떤 포트폴리오를 만들라고 이야기해주고, 학생들의 결과물을 함께 보며 보완해야 할 점을 알려줘서 좋았다. 아직 좋은 디자인을 가려낼 눈이 없는 초보자들에게 특히 필요한 부분이다.


4. 학원에서 취업 연계를 해준다 : 구직자 과정을 듣는 학생들에게만 해당하는 부분이다. 물론 학원을 100% 믿을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누군가 계속 신경 써 준다는 것에 심리적 안정감이 들었다. 대부분의 경우 취업 상담 선생님이 따로 계시고, 그분이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도 함께 봐주신다. 


단점


1. 수업을 듣는 5시간은 몇 개의 기능을 익히기에도 빠듯하다 : 2달 반의 짧은 기간이지만 선생님은 우리 한 명 한 명을 봐주고 기능을 하나라도 더 알려주려고 노력하셨다. 더 많은 기능을 익혀야 더 화려한 포트폴리오를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일단은 수업 시간에 많은 기능을 알려주는 데 주력하고 집에서 그 기능을 활용해 작품을 만들어 오라고 숙제를 내준다. 그 숙제는 뒤로 갈수록 양도 많아지고 중요해져서, 나중에 나는 밥 먹고 잠자는 시간 말고는 모두 아트웍이나 포트폴리오 영상을 만드는 데 주력했다.


2. 진도를 따라가지 못하면 포기하게 될 수 있다 : 오늘 배운 걸 제대로 익히지 못하면 다음날 뒤처질 게 뻔했고, 하루이틀은 쌓여서 일주일, 이주일이 되어 나중에는 따라잡기가 거의 불가능해진다. 우리 학원의 경우 학생들이 모두 끝까지 출석하긴 했지만 (그래야 환급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마지막 포트폴리오를 완성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3. 끝나고 나면 드는 약간의 번아웃 : 짧은 시간 동안 빡세게 했기 때문에 수업이 끝나면 엄청난 후련함과 피곤함을 느낀다. 쉬고 싶고, 쉬어도 될 것 같고, 내 새끼 같은 나의 작업물들을 보며 그 뿌듯함에 취해 ‘다 이루었도다’ 하는 말도 안 되는 도취감이 나를 감싼다. 그래서인지 꾸준히 자기 페이스대로 걸어온 독학러들에 비해 학원러들은 학원을 마친 후의 시간을 잘 활용하기가 어려운 것 같다. 하나하나 직접 부딪혀서 익힌 기능들보다 빨리 흡수되고 빨리 내뱉어진다는 게 단점이라면 단점이다. 




수업을 끝마쳤을 때 나는 아트웍 세 작품과 영상 포트폴리오 두세 작품을 남길 수 있었다. 물론 개수만큼이나 중요한 게 포트폴리오의 질일 테지만. 그래도 수업을 끝마쳤다는 뿌듯함과 함께 내가 쌓은 벽을 스스로 무너트렸다는 만족감을 느꼈고, 이미지와 영상 편집을 배우니 할 수 있는 것도 굉장히 많아졌다. 나는 이제 내 명함이나 엽서도 직접 만들 수 있다. 내가 재밌게 본 영화의 포스터나 예고편도 내 해석대로 다시 만들어볼 수 있고, 가족들, 친구들과의 추억 영상을 제작할 수도 있게 되었다. 내가 혼자 놀 수 있는 범위가 넓어지고 수준도 높아졌다. ‘내가 중고등학교 때 이런 기능을 다룰 줄 알았다면 내 삶은 조금은 달라졌을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물론 디자인이나 영상을 보는 내 눈을 높이는 게 가장 중요하겠지. 정말 중요한 것들이 남아 있지만 말이다.


자발적으로 무언가를 열심히 했던 지난날은 퍽 좋게 추억된다. 열심히 하는 나에게 취해 더 열심히 하게 된다. 물론 모든 날을 그렇게 사는 열정 만수르 유노윤호가 되면 좋겠지만 한때라도 그렇게 지냈고 무언가를 이룬 기억은 다른 부분의 갈증도 해소할 수 있다는 용기를 주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내가 할 수 없는 많은 기술들, 예컨대 운전이나 코딩이나 외국어 구사 같은 것들, 그런 기술을 자유롭고 능숙하게 활용하는 사람들이 부럽지만, 이제는 그것들이 내가 할 수 없는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우리는 뭐든 할 수 있다. 할 수 없던 일을 하게 되는 것, 그건 나에게 없던 능력 하나가 생기는 것 이상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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