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국이 아닌 흔적으로
우리 생은 허무하다. 그 이유는 생명체로서 우리가 의미있다고 여겨질만한 그런 가치와 아무 상관이 없고 생명체로서 우리에게 어떤 가치가 있다고 말해줄 수 있는 누군가가 없기 때문이다. (*물론 아마도 화학물을 연구하는 사람이나 동물을 연구하는 사람들에게 생명체 표집 'A'인 우리가 의미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런 의미부여도 우리 자신에게 허무함을 안겨줄 뿐이다. 게다가 연구자들은 그들이 동물이 아닌 그 이상의 존재이기 때문에 연구를 하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뼈와 살이 붙어 있는 동물이다. 그러니 우리가 의미가 있다고 여기는 모든 것은 동물로서 우리 자신에게서 기인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하자. 우리가 생을 허무하지 않다고 여기거나 허무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우리가 동물이지만 그 이상을 스스로에게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우리는 우리 자신의 삶이 행복하지 않을지라도 그 고통스러운 순간을 극복할 방법을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우리는 더이상 버티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버티지 못하는 순간순간이 우리 자신을 단지 동물이 아닌 존재자로 만든다.
주위의 사람이 죽는다. 우리는 그걸 우리 두 눈으로 목격한다. 해서 나는 내 삶 또한 나의 신체 기능 정지와 함께 끝날 것임을 예감한다. 난 결국 죽는다. 그럼 지금 여기 있는 나는 무얼 위해 있는가? 왜 내가 없지 않고 있는가? 모든 것이 불확실해 보인다. 나의 세계는 나의 모든 것이다. 그렇지만 나 자신이 스스로에게 의문스러운 지금 나의 세계는 불확실하다. 그럼에도 모든 것이 불확하게 변한 여기에 피할 수 없는 사실이 있다. 이런 질문을 지금 하고 있는 존재는 나 자신이며, 나 자신은 이에 대한 정답을 알지 못한채 살아가게 될 존재다.
나는 이런 불확실한 허무함을 거부할 것이라고 선언한다. 나의 인생은 의미가 있다고 모든 세상이 듣게할 것이다. 적어도 나의 인생이 망각되도록 그래서 나의 생이, 살아가는 삶의 순간순간에 있는 내가 고민하고 분투하는 모든 나의 삶이, 쓰레기처럼 버려지도록 가만히 냅두지 않을 것이다.
여기 지금 내가 존재한다. 음악을 들으며, 막걸리를 마시며, 생각을 하며, 나의 기분을 표현하려고 시도하는 지금의 여기의 내가 존재한다. 나의 삶의 자국들이 단지 자국이 아니라 흔적이게끔 만드는 내가 지금 여기에 있다. 이런 내가 있기에 이런 나 자신을 스스로 체념하고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비로소 나는 허무하게 살아가지 않는다.
허무함은 나의 힘이다. 허무함은 나에게 생의 빈자리를 너의 흔적들로 채우라고 요구한다.
허무함이 있어 난 분투한다. 내 인생이 허무하지 않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