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 자본주의
오늘은 그린투어를 했다. 약 4만원 정도의 돈을 주고 하루종일 돌아다니는 코스다. 데린쿠유 지하도시를 갔다가, 이흐라라 협곡을 걷고, 점심을 먹고, 또 동굴 교회를 갔다가, 또 다른 피죤벨리를 보는 코스였다.
만약 날씨가 춥지 않았다면, 그냥 혼자 데린쿠유를 갔다가 점심을 먹고 이흐라라 협곡이나 동굴 교회를 방문해보는 정도만 했어도 괜찮았을 것 같다.
이런 데이투어의 장점은 차로 태워다주니까 교통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고, 단점은 포함된 식사가 사료처럼 맛이 없고 가고싶지 않은 기념품샵도 가야한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유로자전거나라 데이투어들은 점심도 포함하지 않고 자유시간 줘서 먹고 싶은 데서 먹게 하고, 기념품샵도 안가니까 좋은 상품인 것 같다.
나름 야매 투어가이드로서, 오늘 하루 투어 가이드에 기대를 했다. 그런데 이걸로 밥을 벌어먹고 사는 직업인 가이드면서, 저렇게 실력 없고 못해도 되는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한 가이드였다. 여기 괴레메에서는 각 여행사들이 손님을 물어다주면, 가이드&드라이버가 각 여행사에서 온 손님들을 합쳐 데리고 다니는 시스템인 것 같다. 물론 그 가이드와 드라이버를 관리하는 여행사는 또 따로 있겠지만. 어쨋든 그렇다보니 고객으로서 가이드의 질을 따져서 선택할 수가 없다. A여행사에서 예약한 나나, B여행사에서 예약한 옆 사람들이나 같은 투어를 듣는다. 우리는 여행사를 선택할 순 있어도 가이드를 선택할 순 없었던 거다. 물론, 따지고보면 여행사를 선택하는 의미도 없다. 어쨌든 가이드는 내가 예약한 여행사에 속한 사람이 아니니, 가이드에 대한 피드백/평가를 남길 플랫폼도 없다. 이렇다보니 가이드의 질이 이렇게 낮을 수 밖에 없겠다. 이러한 시스템은 가이드들의 일자리들을 철밥통처럼 안정적인 일자리로 만들겠지만, 자본주의를 통한 자연스러운 가이드의 질 개선은 어려운 구조다. 결국 장기적으로 보면 다같이 하향평준화되는 구조일 것 같다.
또 한가지, 여기 카파도키아에서 유명한 열기구 이야기를 해보자. 열기구는 작년까지만해도 한번 타는데 60~100유로 사이였는데, 중국 자본들이 들어와서 열기구 회사들을 잔뜩 사들였고, 지금은 한번 타는데 130~180유로다. 중국 자본이 가격을 두배나 올린 것이다. 같은 서비스인데, 천한 자본주의 때문에 소비자들이 2배나 되는 돈을 내야하는 건 너무 억울한 일이다.
여기서, 지난 10월에 방문했던 스페인 빌바오를 떠올렸다. 주민조직, 협동조합 등의 사회적경제가 지역을 탄탄하게 지켜주고 있는 전통적이면서 세련된 동네, 빌바오. 과연 여기가 빌바오였다면 이렇게 중국 자본에 먹혀, 소비자들을 이렇게 능욕했을까?
만약 괴레메 열기구 여행사들이 조합을 꾸리고 있어서, 더 좋은 서비스를 더 좋은 가격에 제공한다는 비전으로 함께 큰 덩어리로 연대하여 손 잡고 있었다면, 이렇게 중국 자본에 회사가 하나둘 팔려가다가 결국 다 잡아먹히는 사태는 일어나지 않을 수 있지 않았을까?
물론 조합이라고 강제성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니, 얼마든지 이탈자들은 있고 이탈자들로 인한 붕괴도 매우 쉬운 것은 사실이긴 하다. 결국 조합도 조직(organization)보단 공동체(community)의 성격이 강할수록 성공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공동체(community)는 예측가능한 조직에 비교하면, 어디로 튈지 모르는 탱탱볼같기 때문에 어쩌면 지금보다 더 망하는 길로 갔을지도 모르지.
어쨌든 너무 아쉬운 일이다. 이 곳 괴레메, 수백년전 화산폭발이 만들어낸 신기한 지형과, 초대교회 교인들의 신앙이 남겨져있어 전 세계 사람들의 발길을 모으는 곳인데, 이렇게 결국 자본에 먹히는구나. 조금 더 이곳 괴레메를 지키면서 세련된, 다른 길을 갈 수는 없었을까?
이번엔 빌바오가 아니라 오스트리아의 한 와인농장을 하는 마을을 떠올린다. 14년도에 오스트리아 친구들과 마을 전체가 와인농사를 하는 마을을 방문했다. 마을에선 포도농사해서 와인 갔다파는 것 외에도, 이 마을을 방문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신선한 와인과 음식들을 파는 호이리게 장사가 또 다른 수입원이었다. 그 곳에서 특이했던 것은 1년동안 호아리겐 장사를 할 기간을 서로 돌아가면서 가진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1월 1~2주는 철수네집, 그다음 몇주는 영희네집, 이런 식으로. 이건 마을 전체가 1년치 일정을 다 같이 정하고, 그대로 따른다고 한다. 굉장히 전통적이면서 세련된 방식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돈에 관한 합의는 서로간의 신뢰가 없으면 절대 불가능한 부분이다. 하지만, 신뢰를 바탕으로 서로가 서로를 견제한다면 불가능한 부분도 아니다. 이런게 조금씩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가는게 아닐까?
물론, 미국과 중국처럼 천박한 자본주의가 가져온 발전들도 유의미한 것들이 많다. 그들의 인정사정없고 규칙도 없고(유일한 규칙이라면 '돈이면 된다' 일듯) 폭력적인 자본주의는,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큰 발전(?)들을 이루었다. 전 세계를 섭렵한 할리우드 영화시장, 페이스북, 구글, 맥도날드, KFC 등. 달에 사람도 보내고. ㅎ 하지만 동시에 그들의 천박한 자본주의는 이라크의 무고한 시민들을 두려움에 떨게하고, 제 3세계에 공장을 지어 21세기 노예들을 거느리고, 환경을 파괴하고, 아프리카 콩고의 내전을 지속하게 만든다.
돈과 성취는 우리에게 만족감을 주지만, 행복을 주지는 않는 것 같다. 만족감은 공허할 수 있다. 행복은 돈과 성취가 아니라 관계와 공동체에서 온다. 천한 자본주의는 돈과 성취에 기반하여 우리에게 편안함과 만족감을 주지만, 행복을 주지는 않는다. 다시 반복하면, 행복은 관계와 공동체 안에서 느낄 수 있는거다. 좋은 관계와 공동체가 있을 수 있는 사회가 행복한 사회 아닐까? 그래서 조합도시 빌바오와 오스트리아 와인농장 마을이 행복한 것 아닐까?
그런데 문제는, 빌바오처럼 원래부터 부자동네도 아니고, 오스트리아 와인농장처럼 신뢰가 두터운 곳도 아닐 경우, 즉, 너무나 제한된 자원과 신뢰수준이라면, 정말 말그대로 야생-천한 자본주의로 가게된다. 당장 생존해야하는데 신뢰고 행복이고 눈에 보이겠는가? 그래서 우리나라 박정희도 그랬고, 지금 아프리카의 많은 나라들이 다 때려죽여가면서 무서운 리더십으로 나라 경제발전해보겠다고 애쓰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그렇다면 어디까지가 생존이고 어디서부터가 욕심인걸까? 그 경계는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