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급함 vs 즐거움

by 타냐

내가 잘한 부분도 있고
잘 못한 부분도 있다.
잘 한 부분은 잘했다고 인정하고 싶고 인정받고 싶고
잘 못한 부분도 잘 못했다고 정확하게 지적받거나, 아니면 그래도 괜찮았다고 이야기를 듣고 싶다.
그래야 내가 잘못한 부분에 대해서 마음에 담아두지 않고 다음 스텝으로 넘어갈 수 있을 것 같아서.
자꾸 내 자신이 내 자신에 대해 잘과 잘못을 구분해서 판단한다.


하지만 내가 스스로 이 일을 하는 것 자체를 즐긴다면
잘하는 것과 잘못하는 것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그냥 내가 이 정도인 것을 인정하고
즐기면 된다.
그러면 그렇게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경험과 지식이 쌓여서 다음엔 더 잘하게 된다.
하지만 준비하는 과정도, 진행하는 동안도 즐겁지 않았다.

즐겁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일까?

부정적인 생각을 입 밖으로 내는 것은 좋지 않다.
혼자 일기를 쓰면 되는데 팀장님한테 그렇게 이야기한 것은
꼭 필요했던 일은 아니었던 것 같다.
다음에는 그냥 혼자 일기를 쓰고 털어내야겠다.
물론 힘든걸 혼자 삭히는 것만이 정답은 아니지만, 나의 힘듦을 조금 더 정제된 상태에서 표현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 상대방이 꼭 팀장님이어서가 아니라, 상대방이 누구이든간에 나의 힘듦은 내 자신과 기도로 즉각적인 조치를 하고, 상대방에게는 상대방에게 잘 전달할 수 있는 방식과 표현으로 전하는 것이 좋은 것 같다.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 그런가
지난달에도 그랬고, 이번달에도 그랬고
이곳에서 즐기지 못하게 될 때마다 드는 생각은, 내 역할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인걸까. 중요한 직책이나 역할은 아닌데, 애매하게 걸쳐있어서 자꾸 이것도 저것도 다 해야하는 부담감. 내 일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것 같은데, 많은 일을 하는 것 같은 억울함 말이다. 하지만 지난달에도 이 문제로 기도했을 때, 주셨던 마음은 애매함이 문제가 아니라, 애매함을 문제삼는 나의 마음이 문제인 것이고 이런 역할 저런 역할을 다 기쁨과 즐거움과 감사함으로 감당하고자 하는 마음을 주셨었다.
그런데 몸과 마음이 좋지 않은 컨디션이어서 그런가 다시 이런 생각이 나를 괴롭힌다.

한편으로는 육적으로 편안한 생활을 누리고 있기에, 이런 시험에 드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이럴때일수록 더욱 기도하고 주님을 붙들어서, 나와 내가 맺는 관계에서 사랑에 실패하고 싶지 않다. 내 주변의 사람들을 더욱 사랑하고, 즐거워하고, 아껴주는 마음이 공격받지 않으면 좋겠다.
그 것보다 중요한 것이 생기지 않으면 좋겠다.


생리전은 겨울과 같다. 힘든 시기이다.
이 시기에는 부정적인 생각이 많이 나를 괴롭힌다.
새롭게 생겼다기 보다는, 평소에 눌려있었던 감정이 다시 올라오는 것 같다.
그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덮어둬서 다시 이런 마음이 생기는걸까?
그러면 해결하기 위한 나의 어떤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한걸까?
내 역할의 애매함을 해결할 수 있을까? 해결될 수 있을까?
세상은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곳이 아니다. 불합리하고 불공정하고 비논리적인 곳이다. 아마 태국 파견근무의 마지막 날 까지, 내가 문제라고 생각하는 많은 것들이 해결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럴 확률이 높다.


겨울을 잘 보내려면, 봄과 여름, 가을에 잘 준비하면 된다.
한 달을 봄, 여름, 가을, 겨울이라고 보면 생리하지 않는 시간에, 생리가 끝난 봄과 여름에 열심히 기도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키워야겠다. 그러면 겨울은 여전히 힘든 겨울이겠지만, 그래도 조금은 덜 힘든 겨울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한 편으로는, 겨울은 원래 힘든 것이라고 인정하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 같다. 그러니, 불평하지 말자.


조금 더 장기적으로 보면, 태국 근무 자체가 나에겐 봄이고, 여름이다. 키본도라는 혹독한 겨울을 지나, 행복한 시기를 보내고 있다. 이 시기를 조금 더 잘 보내면, 다음에 다시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겨울을 조금은 더 잘 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번 8월은 참 힘들었다.
팀장님의 휴가기간 동안도 참 힘들었고,
행사를 준비하는 과정도, 진행하는 것도 힘들고, 전혀 즐겁지가 않았다.
하지만 또 뭐 생각해보면, 일이라는게 다 힘들고 즐겁지가 않는게 디폴트인건데 탄자니아 근무 이후에 너무 비교되게 좋은 태국 생활과 업무에 심하게 업 되있어서 잠시 일이 너무 재밌었던건가 싶기도 하다.


그냥 어차피 재미없고 힘든 일인데
탄자니아에서도 본부에서도, 그런데 태국이라고 뭔가 특별하게 계속 재밌고 행복할 줄 알았나보다. 그냥 잠깐 초반의 버프를 받아 그렇게 느꼈던 것이고, 사실 이 곳에서도 지금도 그리고 남은 기간도 똑같이 재미없고 하기 싫을 것 같다. 너무 큰 의미나 재미를 찾으려고 하지는 말자. 그냥 해야되니까 하는거지 뭐. 특별하게 여기서 내가 의미를 찾거나 재미있게 일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면서 그렇게 남은 1년 4개월도 훅 가겠지.
욕심을 버려야겠다.


하지만 또 너무 체념하거나 회의적으로 되지는 않을거다. 그냥 해야되니까 하는 일들에, 특별히 재밌거나 의미가 있지는 않지만 그래도 소소한 재미와 의미가 있고, 그래도 내가 생각하지 못한 것들이 나를 즐겁게 해주고 배움이 있게 해주니까. 내가 생각한 재미와 의미를 기대한다면, 당연히 그 기대가 충족될 확률은 낮을 수 밖에 없다. 내가 모든 것을 속단해서는 안된다.
겸손하게 주어진 것에 감사하면서 즐겁게 하다보면, 내가 생각하고 판단한 것 이상으로 주어지는 것들이 있을 것이다.
은혜가 필요하다.


분명히 내가 판단하고 생각한 것 이상의 것을 주실 것은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내 역할의 애매함이 해결되기를 기도하면, 분명 그 해결이 아닌 다른 길로 나를 인도해주실 것도 안다. 하지만 자신이 없는 부분은, 이 모든 것을 알고 믿음에도 불구하고, 욕심이나 조급함, 또는 체념 때문에 이 과정을 즐기지 못하게 되는 순간이 온다는 것이다.
그래서 가장 은혜가 필요한 부분은, 이 모든 과정에 있어서 감사함과 즐거움을 잃지 않는 것에 은혜가 필요하다. 오늘처럼, 때로는 육체적인 피곤함과 여러 이유들 때문에, 감사함과 즐거움을 잃더라도 그게 다른 사람들한테까지 부정적인 에너지가 전가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또 다른 욕심은, 그때의 나의 부정적인 에너지로 내 자신이 그런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았으면 좋겠다.


A라는 문제를 놓고 기도하면서, B라는 해결책을 원할 때 내가 생각하지 못한 C라는 길로 인도해주실 것을. 그리고 그 길이 내가 생각한 B라는 해결책보다 훨씬 좋은 길임을 안다.
그래서 기도하기는, A라는 문제를 겪고 있는 지금과, B라는 해결책이 나타나지 않는 시간들을 조급하지 않게 누릴 수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C라는 길을 보여주셨을 때, 내가 기도했던 B가 아니라고해서 불평하지 않고,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한 마음으로 기뻐하면서 즐길 수 있으면 좋겠다.


조급해하지 않고
어린아이와 같이 순수한 마음으로 기뻐하기.

그러면 내 역할이 이것이 되든 저것이 되든 중요하지 않다. 내가 잘하든 못하든 중요하지 않다.

즐거움보다, 사랑함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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