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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별 Dec 16. 2018

버티는 마음으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하여

첫 직장, 일보다 사람이 힘들었던 3개월의 기억

작년 여름부터 초가을까지 3개월을 다녔던 내 첫 직장은 사보 잡지를 다루는 디자인 회사였다. 기약 없이 길어지는 백수 생활에 불안한 마음이 들어 닥치는 대로 이력서를 넣다가 운 좋게, 혹은 운 나쁘게 합격한 곳이었다.

두 명의 실장과 기획 팀장이 공동으로 창업한 그곳에서, 나는 사람에 관한 스트레스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뼈저리게 깨달았다.


상사 세 명은 모두가 한 성격하는 편이었지만, 그중에서도 기획팀장과 디자인 실장은 말 그대로 견원지간이라 할 만했다. 직원들이 모두 모인 공간에서 소리를 질러 가며 싸우는 건 일상다반사. 한 번은 그렇게 싸우고 나서도 일주일 내내 서로 말을 안 해서 아래 직원들만 서로의 말을 전달하며 새우등이 터지기도 했다.

뭐 본인들끼리의 싸움이야 내 알 바 아니라지만, 가장 스트레스였던 건 나와 업무적으로 자주 마주쳐야 하는 기획팀장이 굉장한 기분파였다는 거다.

기분이 좋은 날은 약간의 실수가 있어도 웃으며 괜찮다는 말을 해 주는가 하면, 기분이 나쁜 날은 실수 없이 일을 해도 어떻게든 꼬투리를 잡아 화풀이해대는 식이었다. 내 하루는 매일 아침 출근하는 팀장에게 "안녕하세요", 인사하며 그의 안색을 살피는 것으로 시작되곤 했다.



가장 기억나는 몇 가지 사건을 얘기해 보자. 그날은 사보 잡지 앞표지에 들어갈 원고를 작성한 날이었다. 가을, 그리고 기차 컨셉에 맞춰 짧은 원고를 작성하고 팀장에게 보고를 올렸다. 다행히 그날은 팀장의 기분이 좋은 모양이었다.

작은 테이블에 마주 앉아 피드백을 기다리던 내게, 팀장은 이렇게 말했다.


"잘 썼네. 바로 디자인 팀에 넘겨도 되겠는데? 근데 뭔가 인상적인 한 문장이 더 있으면 좋을 것 같아. 지금도 잘 쓰긴 했는데 너무 부드럽게 술술 넘어간다는 느낌이 들거든. 확 마음을 이끄는 부분이 있으면 좋겠는데, 그냥 무난해 보여. 나쁘다는 건 아냐. 바로 디자인 팀 넘겨도 상관은 없는데, 아직 마감도 좀 남았으니까 우리 조금만 더 욕심을 부려 보자. 한 문장 정도만 더 고민해 봐."


맞는 말이었다. 나 역시 쓰면서도 글이 조금 심심하다는 느낌을 받았으니까. 그래도 나쁘지 않은 평가를 받은 터라 가뿐한 마음으로 "알겠습니다.", 인사를 하곤 자리로 돌아갔다.


다음 날, 피드백을 받았던 대로 기존 원고에 새로운 문장을 추가했다. 전체적으로 한 번 더 탈고하긴 했지만 그야 조사나 몇 가지 단어 정도를 다듬은 수준이었고, 전날 '디자인 팀에 넘겨도 될' 원고와 달라진 점은 거의 없었다.

딱 하나, 달라진 건 팀장의 기분이었다.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네?"


전날과 다른 날카로운 한 마디에 심장이 쪼그라들었다. 팀장은 고개도 들지 않은 채 빨간 펜으로 원고의 처음부터 끝까지, 단어 하나하나에 동그라미를 치며 따지고 들기 시작했다.


"넌 지금 이게 괜찮다고 생각하니? 말이 안 맞잖아. 지금 이런 글을 쓰고 니가 나중에 부끄럽지 않을 수 있어? 나중에 니 후임 들어오면 이거 보여 주면서 가르칠 수 있냐고."


어제까지만 해도 괜찮았던 원고는 하룻밤 사이에 '남부끄러운, 쓰레기 같은 원고'로 변해 있었다.

웬만하면 비판은 수용하는 편이지만, 이건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문제가 많은 글이라면 처음부터 다시 쓰라는 피드백을 줬어야 하는 것 아닌가. 어떻게 '당장 넘겨도 괜찮을 원고'가 하루아침에 '남한테 보여 주기도 부끄러운 원고'로 변한단 말인가.

그날 흰 종이에 빨간 동그라미를 흉터처럼 걸쳐 입은 원고를 들고 나오면서, 혼란스러운 마음에 핑 도는 눈물을 삼키려 어찌나 애를 썼는지 모른다.


이처럼 업무에 대한 기준이 없으니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었다. 일을 잘하는 것보다 팀장의 기분을 잘 맞추는 것이 더 중요하다니.




또 한 번은 그런 적도 있었다. 분명 6시까진 팀장의 기분이 좋아 보였는데, 8시쯤 기분이 확 나빠져서 납득되지 않는 지적을 쏟아붓던 날. 그땐 기분파에게 조금 익숙해져 있던 터라, 그런 말을 들으면서도 한 귀로 흘릴 수 있었다. 마감 때문에 혼자 남아 야근을 하느라 안 그래도 피곤했던 상황. 단련된 멘탈로 눈물을 짜는 대신 욕을 하며 집으로 향했다.

다만 '아 진짜. 아까까지만 해도 기분 좋더니 또 왜 저래?' 하는 의문은 남아 있었다.


그 '팀장의 기분이 대체 왜 저렇게 한순간 나빠졌는가'에 대한 의문은 다음 날 저녁 모든 직원이 모여 식사하는 자리에서 풀리게 되었다.

당시 사진실장, 기획팀장님과 디자인 실장님은 모두 굉장한 야구팬이었기 때문에 종종 대화의 주제가 야구로 흐르곤 했다. 그때도 평소처럼 야구 이야기를 하던 중이었는데, 사진 실장님이 갑자기 웃음을 터뜨리며 이야기했다.


"어제저녁에 롯데 지고 나서 기획팀장 완전 욕하고 난리 났었잖아, 하하."


그 말을 듣자 '왜 갑자기 기분이 또 저렇게 안 좋아졌는가'에 대한 의문이 풀렸다. 하다 하다 이젠 본인이 응원하는 야구팀이 경기에 졌다는 이유로 제 직원에게 그렇게 화풀이를 해댄 것이다.

순간 욕지거리를 내뱉고 싶었으나 '까라면 까야 하는' 수습 직원이 뭘 어쩌겠는가. 그저 웃으며 분위기나 맞추다가 퇴근 직후 친구에게 전화해서 한바탕 쏟아내는 것밖에는.




그의 화풀이에 공포를 느낀 날도 있었다. 촬영 대상자와의 소통에 차질이 생긴 날이었다. 영화 포스터를 패러디하는 촬영이었는데, 대상자가 '자신은 영화 포스터와 비슷한 옷이 없다'는 말을 전해왔다. 당연히 있을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하고 팀장에게 전달했다가 사달이 났다.

그가 "그럼 어쩌라고!" 하며 소리를 치더니 보고 있던 잡지를 온 힘으로 바닥에 집어던지며 큰 걸음으로 내게 다가와 핸드폰을 빼앗는 것 아닌가. 촬영 대상자와 통화를 이어가려 했던 것이지만 순간 내가 느낀 감정은 공포에 가까웠다. 내게 고함을 치곤 곧장 꾸며낸 친절한 목소리로 통화하는 그를 보며, 나는 놀라 덜덜 떨리는 손을 감추려 노력했다.

사실 글을 쓰기 위해 그 순간을 다시 더듬더듬 떠올리는 지금도 심장이 뛴다.


어쨌든 일일이 늘어놓으려면 끝도 없지만, 다시 겪어야 하는 백수 생활이 무서워 하루하루를 버티는 마음으로 출근했다. 그러다가 결국 '이딴 취급 받으면서 더 못 다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날, 반쯤 넋이 나가 일을 그만뒀다. 금요일 저녁, 생기 넘치는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홍대 거리를 눈물 펑펑 쏟으며 정처 없이 걷던 그날이 아직도 생생하다.


당시 퇴근길, 유일한 위로였던 한강의 노을




뜻하지 않게 이야기가 길어졌다. 그곳에 다닐 땐 하루하루가 고비였고, 매일 아침 스트레스로 인한 두통과 메슥거림을 참아내며 살았다. 퇴근하고 나서도 다음 날 아침을 생각하면 두려움이 몰려와 심장이 불안하게 뛰었다. 가만히 있어도 눈물이 쏟아져서 어쩔 줄을 몰랐던, 너무나 긴 3개월이었다.


퇴사를 결심하고 들은 말 중 기억에 남는 것들은 아래와 같다.


"원래 직장 생활이 다 그런 거 아냐?"

"너는 멘탈이 너무 약해. 안 그런 곳 어디 있냐?"

"다른 데 가면 괜찮을 줄 알아? 더 심할 수도 있어."

"야, 다 참으면서 사는 거야. 네가 아직 고생을 덜 해서 그래."


그래, 그땐 정말 그런 줄로만 알았다. 모든 사람이 하루하루 '버티는 마음'으로 출근을 하는 건 줄 알았다. 다들 아프고 힘든 속내를 숨기고, 비틀거리는 두 다리로 지하철 손잡이 하나에 몸을 의지하며 살아가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 나는 현재에 만족하며 일을 하고 있다.


물론 지금 다니는 출판사도 100% 완벽하게 만족스럽냐 묻는다면 그건 아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겠나. 나 역시 서면 앉고 싶고, 앉으면 눕고 싶은 사람일 뿐인데.

단지 내가 업무적으로 지적을 받을 때 그 이유를 납득할 수 있고, 누군가의 화풀이 대상이 되는 느낌을 받지 않으며, 아침마다 상사의 기분을 파악하려 눈치 보지 않아도 된다는 것. 그리고 더 이상 내일이 오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나는 겨우 이걸 바랐을 뿐이다. 입이 벌어지는 연봉도, 남들이 부러워하는 대기업 복지도 아닌 그저 인격적인 대우를 받는 것.

그러나 이런 최소한의 근무 환경을 바라는 것조차 타인의 입을 거치면 '욕심'이 되어 버리곤 했다.


그들의 말대로 누군가는 '다 이렇게 사는 거지' 하며 하루를 견디고 있을지 모른다. 훨씬 열악하고 힘든 환경에서 일하는 사람들, 왜 없겠나. 다만 남들이 그렇다고 해서 나까지 참으며 살고 싶진 않았다. 남들이 그러면 나도 그래야 하나? 가장 중요한 건 내 행복인데. 나는 행복하기 위해 사는 건데.


디자인 회사를 그만두고 반년 가까이 눈물과 함께 하는 백수 생활을 보냈지만, 그 긴 나날에도 그곳을 그만둔 걸 후회한 적은 맹세컨대 단 한 순간도 없다. 왜냐하면 나는 버티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삶을 더 이상 원하지 않았으니까.

요즘은 마감 때마다 종종 외근을 나간다. 공교롭게도 그때 타는 버스는 예전에 다닌 디자인 회사 앞을 지나가곤 한다. 나는 그럴 때마다 그곳 건물을 보며 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린다.


'기획팀장, 엿 먹어라.'




그래. 나는 이제 버티는 삶을 원하지 않는다.

한 번 겪어 봤으니, 더는 그렇게 살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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