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센티멘탈 밸류>

그림자가 되어 어른거리는 집 한 구석의 틈

by 예림

잠깐 다른 누군가가 되어 내 삶의 시간에서 벗어날 수 있는 건 꽤 중독적인 일이다. 어떤 문제가 있는 건 알겠는데 그 문제의 원인은 분명하지도 않고 내가 도무지 뭘 해야될지도 모르겠을 때, 다른 사람이 되는 건 완벽한 도피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노라도 그랬을 것이다. 국립극장의 무대에 오르는 그녀라면 실력은 말할 것도 없을 것인데, 그녀는 급기야 의상을 찢고 상대 역의 인물에게 때려달라는 등 무리한 요구까지 한다. 영화를 다 보고 돌이켜봐도 그녀의 문제가 뭔지는 알 수 없다. 그녀가 자신의 삶이 엉망진창이라고 인지하고 그런 자신이 누군가에게 사랑받을리 없다는 생각을 한다는 걸 알 뿐이다.


그런 그녀가 완벽히 배역에 몰입한 대가로 극찬을 받을 때 그녀는 어떤 기분일까? 어쩌면 더욱 더 비참함을 느낄지도 모른다. 자기 자신으로서 살 수 없을 거 같은 비애. 그 처절한 고통이 심각해지고 있는 때 난데없이 이 고통을 만든 장본인일지도 모르는 아빠가, 그 배경이 되었던 집에서, ‘엄마’의 역할을 하라니. 화가 나는 게 전혀 이상해 보이지 않는다.


한편, 노라를 대신하여 구스타브의 영화에 출연하려는 레이첼은 자신이 연기하는 엄마의 역할을 이해하기 위해 구스타브에게 여러 차례 질문을 던지고 리허설을 해보기도 하지만 혼란이 가중되며 길을 잃는다. 구스타브는 그런 그녀를 달래기도 하지만 레이첼은 도리어 노라를 찾아가 자신의 복잡한 심경을 고백한다. 이때도 노라는 자신의 아빠의 눈썰미를 믿으라는 둥의 이야기를 하지만, 표정은 무심하기만 하다.


그녀가 아빠의 영화에 참여하게 되는 계기는 아그네스의 부탁에 의해서다. 핑계를 댄 뒤 무대에 오르지도 않고 집은 엉망진창인 채로 드라마나 보며 지내고 있을 때, 동생 아그네스가 찾아온다. 아빠가 두고 간 시나리오를 들고서.


아그네스는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자신만의 가족이 있는 인물이다. 엄마의 장례에 손수 음식을 준비하고 눈물을 흘리며 노라가 찾아가는 유일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녀의 직업은 역사학자인데, 구스타브의 말에 따르면 가끔 자신의 자료 조사를 돕는다고 한다. 그리고 노라의 말에 따르면, 그녀는 아빠의 말에 반박하지 않는다고 한다. 아그네스는 노라의 말에 장난 반, 진담 반으로 자신도 아빠의 말에 대항한다고 이야기하는데 이는 진짜가 된다.


영화 내내 노라와 아빠의 중간 지점에서 갈등이 깊어지지 않도록 중재하던 아그네스도 어렸을 때 자신을 아빠 영화에 출연시킨 것처럼 자기 아들을 영화에 출연시키려 하는 아빠와 한바탕을 벌인다. 현재 자신에게 중요한, 아들이 자신처럼 아빠(할아버지)로부터 상처를 받을까 그녀는 감정을 표출한다.


아그네스도 두 자매와 엄마를 두고 홀연히 떠나버린 아빠가 미웠던 것이다. 하지만 아빠가 다시 돌아왔다고 해서 그녀의 삶이 흔들리지는 않으니까, 이제는 어른이 되었으니 아량을 베푸는 마음에서 아빠를 대했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녀가 겪었던 불안과 슬픔을 아들이 겪는 건 용서할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그네스는 아빠가 두고 간 시나리오집을 읽고 마음을 풀게 된다. 영화는 이 시나리오의 전체 내용이 어떤 내용인지 이야기하지 않지만 특정 대사와 마지막 원테이크 신을 언급한다. 읽어만 보라던 아빠의 말을 뒤로 하고 자리를 뜬 노라도 특정 페이지를 읽어보라는 아그네스의 부탁에 마음 없이 읽다 그만 눈물을 흘리고 만다. 서로의 소식도 모르던 그들이 같은 말을 하고 싶어했던 건 아니었을지.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이들은 모두 집을 그리워하고, 필요로 했던 것이다.


가정을 이룬 아그네스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노라가 묻는다.

“아그네스, 너와 난 같은 어린 시절을 보냈는데 넌 훌륭하게 잘 컸구나.”

“나도 힘들었어 언니. 그리고 내겐 언니가 있었잖아.”


자신의 품에 안기는 아그네스를 끌어 안는 노라의 표정은 꽤나 복잡 미묘하다. 나는 그 표정이 이제까지 자신을 방치한 사실을 새삼 깨달은 표정같았다. 그 사실은 인지하고 반성하며 이제는 그러지 않을 거라는 확신으로 느끼는 안도. 영화의 절정까지 경계로 가득한 노라의 표정은 결말부에 이르러 완전히 이완된다. 초중반부에 노라의 웃는 장면이 없었던 게 아닌데 그 미소 가득한 얼굴을 보았을 때 나는 다른 사람을 보는 것 같은 기분까지 들었다.


이들은 한 편의 영화를 위해 지어진 세트장에서 다시 화합한다. 구스타브는 대자본과 스타성을 업고 레이첼의 말을 반박하며 작품을 이어나갈 수도 있었지만 자신의 직감을 인정했고, 노라는 자신의 내면을 직면하게 되었고, 아그네스는 시나리오를 읽고 아빠가 단순히 영화를 만들기 위해 출연을 제의한 게 아니라는 걸 알았다.


다른 사람이 되는 건 쉽고 편리하다. 하지만 다른 사람이 되어 살아가다보면 나와 연결되어있던 나만의 '센티멘탈 밸류'는 어딘가 유실되어 없고 방황하게 될 것이다. 때때로 이해관계, 축적된 감정 등이 나를 다른 사람처럼 행동하게 만든다. 그건 상황을 평화롭게 만들지언정 깊이 있는 경험을 하게 하지는 않았던 거 같다.


한편 영화는 이러한 내용을 표현주의적으로도 강조한다. 코닥의 세 가지 필름을 사용해 촬영해 각 시퀀스에서 특징지어야 하는 부분을 강조했고, 노라와 구스타브의 얼굴이 다중 인화된 시퀀스는 인상에 깊이 남는다. 양식적으로나 서사적으로나 인상이 남는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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