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기치 못한 이별과 만남
SF는 곧 다가올 미래 세계를 상상한 이야기다. 현대 사회에서 개발되고 있는 혹은 사용되고 있는 기술이 정점을 이루었을 때 인간이 맞게 될 미래 사회는 아직 도래하지 않은 미지의 세계라는 점에서 신비하고 또 그러한 세계에서 일어날 법한 이야기를 통해서는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애니메이션 '로봇드림'은 포스트휴먼 시대, 로봇과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리고 외로움을 해소해줄 '로봇 친구'의 이야기를 통해 세상과 더불어 사는 방식을 엿보게 된다. 개와 로봇 사이 예기치 못한 이별이 이 애니메이션의 중심적인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이 작품은 로봇과 개가 헤어진 후 이별의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그리고 이별은 어떻게 맺어지는지 이야기한다.
1. 이별의 시간
작품의 시작은 홀로 무심하게 비디오 게임을 하는 개의 일상에서 시작된다. 건너편 부부는 팝콘을 나눠 먹으며 행복해보이는데, 주인공은 냉동고에 쌓인 레토르트 식품을 전자레인지에 데워 먹을 뿐이다. 보고 싶은 프로그램은 없지만 마주한 TV 스크린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을 보기는 싫어 음소거를 해둔 채 TV를 켜놓는다. 그러다 외롭다면 로봇을 구입하라는 광고를 본다. 신비한 음악, 전화 한번으로 새로운 친구를 사귈 수 있다는 사실이 개에게 어떤 희망을 불어넣는다.
다음 날 도착한 로봇 부품을 설명서에 따라 정성스럽게 조립한다. 거대하지만 밝은 웃음을 짓는 로봇. 공원으로 이동하는 길도 즐겁고 롤러스케이트를 타고 춤도 같이 춘다. 한번도 이기진 못했지만 이제 비디오게임도 혼자 하지 않아도 된다. 바다에 가서 다이빙도 하고 스노쿨링을 하며 신비한 바닷속 세상도 구경한다. 그리고 뜨거운 태양 아래 낮잠을 자다 집으로 돌아가려는데 로봇이 움직이질 않는다.
밤새 로봇을 끌고 가려했지만 방법은 없다. 전화선은 끊어져 있고 주위에 도움을 청할 이도 안 보인다. 어쩔 수 없이 로봇을 두고 늦은 새벽 귀가해 다음 날 아침 일찍 로봇을 찾으러 가지만 해변은 다음 해 여름까지 폐장. 합법적인 방법도, 불법적인 방법도 동원하여 로봇을 구해오려 하지만 모두 실패한다. 주인공은 결국 개장 후 로봇을 되찾아오기로 한다. 하지만 개장까지의 시간은 거진 1년. 시간이 지날수록 주인공은 다시금 외로움을 느낀다.
'로봇드림'의 인물들은 모두 동물로 그려지긴 하지만 의인화된 동물이다. 인간처럼 행동하는 동물들을 바라보며 우리는 동물의 특징을 가진 사람들의 모습을 상상한다. 이 작품의 주요 인물인 '개'는 인간과 친밀한 동물로 사회성이 높은 동물이다. 홀로 생활하는 개에게는 어울릴만한 존재가 필요하지만 친구를 사귀기는 쉽지 않다. 작고 착하지만 소극적인 이 인물은 무시받기도 하고, 다른 동물들을 사귀기도 힘들다.
그런 개가 로봇을 만나 만족스러운 생활을 한다. 로봇을 구하기 위한 일련의 시도들이 실패하고 외로움을 극복할 새로운 방법을 찾는 건 현실적이면서도 (로봇의 입장에서) 잔혹하다. 하지만 개장된 해수욕장에서 해변의 모래를 있는대로 파며 로봇을 찾는 모습은 애달프다. 어떤 운명으로 만나기에는 이미 늦어버린 존재를 찾기란 쉽지 않다. 개는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처럼, 지나간 로봇(사람)을 그리워하면서도 새로운 만남을 이어간다. 평범한 삶을 이어나가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처럼 말이다.
그런 한편 로봇은 자나 깨나 개의 집으로 찾아가는 상상을 한다. 외로움을 달래주기 위해 고안된 로봇은 어떤 혹독한 상황에서도 자신을 구입한 소유주 생각 뿐일 것이다. 자신의 다리가 뜯겨도, 폭설로 얼어붙어도 즐겁게 들었던 'September'를 흥얼거리며 개를 찾아가는 마치 이 설정은 사랑하는 이를 잊지 못한 사람 같다. 특히 시간이 지날 수록 지치고 다른 사람을 만날까 불안한 마음은 로봇으로 하여금 더욱 연민이 느껴지도록 한다.
2. 새로운 만남
로봇이 해변에서 벗어나게 되는 건 불행하게도 고철 장수에 의해서다. 개장 전, 어떤 수를 써서도 들어올 수 없었던 개에 비해 고철 장수는 너무나 여유롭게 해변을 탐색한다. 로봇은 고물상에 팔려가고 로봇은 그저 고철덩어리일 뿐인 고물상은 투포환을 하듯 로봇을 던져버린다. 계절의 변화를 무력하게 맞으면서도 친구를 생각하던 로봇의 결말이 이렇게 끔찍하게 끝난다는 충격에 잠깐 숨이 멎는다.
하지만 로봇은 로봇 개조에 취미가 있는 한 너구리에 의해 새 생명을 얻게 된다. 비록 이전의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는 몸을 가지진 못하지만, 로봇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과 너구리가 좋아하는 음악을 틀 수 있는 몸체를 가졌다. 로봇은 너구리의 일을 도우고 너구리는 임시 방편으로 만든 청소기 다리를 새로운 로봇 다리로 갈아준다. 개가 새로운 로봇과 함께 시간을 보내듯이, 로봇도 새로운 친구를 만나 나름의 일상을 보낸다.
그러던 어느 날, 로봇은 너구리와 바베큐 파티를 준비하던 중 새 케첩을 가지러 가기 위해 냉장고로 향한다. 그리고 창 너머 길을 걷는 개와 다른 로봇을 본다. 로봇의 눈 앞에 개와 보낸 추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가며 개를 쫓아가 만나고 싶은 충동이 든다. 그러나 로봇은 그들을 바라볼 개의 새로운 로봇 친구, 그리고 너구리를 생각한다.
새로운 몸이 된 라디오에서 로봇이 좋아하는 노래 테잎을 재생한다. 개와 보낸 추억 속 음악, September가 흘러나온다. 로봇이 그때 췄던 춤을 추고, 개도 어디선가 들려오는 익숙한 노래에 춤을 춘다. 그리고 우연히 마주친 로봇의 팔. 하지만 벽 뒤로 숨은 로봇을 보기는 만무하다.
묘한 감정과 실망으로 축 처진 개는 이내 발걸음을 다시 옮긴다. 개의 새로운 로봇 친구는 그런 개를 달래어 둘은 다시 즐겁게 길을 걷는다. 그리고 로봇은 너구리가 좋아하는 음악을 틀며 너구리와 함께 피크닉을 즐긴다.
이 결말은 현실적이면서도 아름답다. 재회의 기쁨은 분명 있겠지만 그 사이 생겨난 새로운 관계들 또한 소중하기 때문이다. 관계는 앞으로 만날 관계에 영향을 준다. 그래서 지금은 관계가 허물어졌을지라도 누군가와 관계를 맺었다는 자체로 의미가 있다. 그리운 마음에 다시 만난다하더라도 그때와 똑같은 관계로 지내기는 어렵다. 지금의 삶을 만들어준 사람, 지금 함께 보내고 있는 존재와의 관계를 선택한 로봇을 보며 새삼 이별을 극복하는 방법을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