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과 맞닿고서야 이상에 도달하는 아이러니
(이 글은 영화의 내용을 일부 포함하고 있습니다.)
나는 믿고 있는 종교가 없다. 그래서 각 종교의 교리를 막론하고 종교를 '가진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헤아릴 수가 없다. 하지만 신앙이 삶에 있어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은 안다. 믿음이 시야를 만들기 때문이다. 나는 영화 <콘클라베>를 보며 아주 어렸을 적부터 지녀온 (개인적인) 믿음에 대한 의심이 어디서부터 비롯된 것인지 알고 싶어졌다.
영화 <콘클라베>는 미학적으로, 주제면에서 카롤릭의 정형화된 형식에서 일어나는 소란에 대해 다룬다. 오랜 전통으로 이어져 온 종교는 자연스럽게도 권력을 가지고, 권력은 집단의 내부 질서를 바꾼다. 교리를 따라 사는 삶, 즉, 이상을 실천하기 위한 매개자인 추기경 간 일어나는 분란을 이상과 현실의 분투라고 생각해도 괜찮을까. 주인공 '로렌스'는 교황청의 단장으로서 콘클라베를 주관한다. 기도를 하는 데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그에게 교황 후보자들의 자격은 실망스럽다.
로렌스에게 교황청의 모습은 이제껏 그가 이해하던 사실보다 더 별로였다. 알도가 되길 희망하지만 안된다면 아데예미도 괜찮은 후보자라고 생각했기에 아데예미의 의심스러운 행동을 더욱 더 알아야했을 것이고, 전통주의자인 테데스코가 되면 이제까지 쌓아온 진보가 퇴보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트랑블레의 의혹을 풀어야 했을 것이다. 차선택일지라도 로렌스는 부도덕한 자를 교황으로 인정할 순 없었다. 그에게 이상을 추구하는 종교는 협상하는 정치와 다른 것이었을 테다.
그렇다고 그가 적극적으로 비리를 파헤치는 행동을 보이진 않는다. 그가 잘못된 선택을 예방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한 행동은 교황의 침대 머리맡에 숨겨져있던 트랑블레에 관한 비밀문서를 추기경들에게 공유한 것 뿐이다. 몇몇 후보자의 어두운 면이 드러나며 끝내 유력 후보자로 로렌스 자신과 테데스코만 남았을 때 그는 투표 용지에 자기 이름을 휘갈겨 쓴다. 그리고 자신의 선택이 이뤄지길 바란다는 말을 끝으로 투표용지에 넣자 교회의 한쪽 벽면이 폭파한다. 마치 이 믿음은 잘못되었다는 듯이 말이다.
폭발에 관한 언쟁이 오가고 베니테스의 설교로 투표가 다시 이뤄질 땐 바람 소리와 새소리가 들려온다. 이제까지 꽉 막혀있던 공간이 열리며 세상의 소리가 들려온다. 베니테스가 교황으로서 선출되고 모든 게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영화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로렌스에게 후보자들의 부도덕한 점을 알려주던 측근이 베니테스의 비밀을 로렌스에게 알려주면서, 로렌스는 혼란스러워한다. 로렌스의 숙소 창의 보안시설이 해제되고 수녀 세명이 즐겁게 이야기를 하며 뒷문으로 보이는 건물을 나온다.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의 믿음에 따라 행동하는 베니테스였으므로, 그가 간성(염색체, 생식샘, 성 호르몬, 성기 등에서 전형적인 남성이나 여성의 신체 정의에 규정되지 않는 성징)이라는 사실을 들고 교황의 자격을 논해야 하는지 로렌스는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이제까지 교황의 자질이 의심되는 자들의 진실을 파헤치고 실제로 그런 사람은 파면 당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하던 그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로렌스는 베니테스의 진실을 아무에게도 공유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로렌스 숙소 창으로 들려오는 바람 소리, 수녀들의 이야기. 나는 마지막 장면으로부터 로렌스의 기도에 관한 문제 원인을 추측했다. 그의 신앙은 교리의 진실한 해석이 아니라 전통적인 관습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이상을 추구한다고 생각하지만 관습의 관습을 복기하며 맞닥뜨리는 불합리에 괴로워한 건 아닐까. 교리와 현실의 이격에 신앙을 더이상 가질 수 없다고 생각한 건 아닐까.
나에게도 아주 어렸을 적부터 지켜온 믿음이 있다. 나는 그 믿음을 따르기 위해 '어떠해야 한다'는 통념을 따라왔는데, 믿음을 처음 가졌을 때의 충실함은 사라진지 오래고 어딘가 불편한데 어떤 지점이 문제인지 모르겠다. 영화를 보면서 어쩌면, 내가 겪고 있는 문제도 내가 가지고 있는 믿음의 진짜 의미(나의 경우엔 믿음을 가진 이유가 되겠다)를 따르지 않고 여태껏 살아온 방식으로 믿음을 지켜온다고 생각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만약 그렇다면 나에게도 나의 통념을 깨어줄만한 사건이 일어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