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하고도 매력적인 이야기를 하는 방법
해당 글은 영화 내용을 포함하고 있는 점 참고 부탁드립니다.
영화 <미키17>은 주인공 '미키 반스'가 어떻게 얼어붙은 땅덩어리(니플하임)로 오게 됐는지 그리고 왜 실험용 쥐처럼 '죽는' 직업을 가지게 됐는지 보여주고, 예상치 못한 생존에 '멀티플'현상, 즉 또다른 자신(미키18)과 마주하며 일어나는 사건 사고를 겪다 종국엔 유한한 생명력을 가진 보통의 사람으로 살게 된다는 이야기다.
죽는 직업이라는 소재 자체도 흥미로우나 영화 <미키17>의 흥미로운 지점은 각 인물이 겪는 사건이 점층적으로 꼬이다 완전히 풀리는 전개에 있다. 그리고 이 전개를 뒷받침하는 여러 떡밥이 영화에 깔려있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이상하고 세련된 블랙 코미디 영화 <미키17>의 큰 떡밥 3가지를 소개한다. 만약 아래 3개의 떡밥이 흥미롭다면, 직접 영화를 보고 이를 포함한 떡밥들이 눈덩이가 불어나듯 커지며 폭발하는 재미를 느껴보길 바란다.
1. 다리우스: 미키 반스가 미키17이 되기까지
'미키 반스'는 햄버거 가게를 차리려다 보육원에서 만난 친구 티모의 말을 듣고 마카롱 가게를 열었지만 폭싹 망해 악명 높은 사채업자 다리우스에게 쫓기는 신세가 된다. 다리우스가 채무자의 몸을 전기톱으로 절단하고 이를 32K비디오로 남기는 변태라는 것을 알게 된 미키는 티모와 함께 지구를 아주 떠나기로 마음을 먹는다. 그래서 찾아간 곳이 우주 식민지 원정단. 어떻게 한 건진 몰라도 티모는 퓰리터 조종사로 가게 되고 내세울 것 없는 미키는 조건이 까다롭지 않은 '익스펜더블'에 지원한다. 팸플릿도 제대로 읽어보지 않고 익스펜더블에 대해 설명하는 담당자의 머리 냄새에 홀려 자신이 어떤 처지에 놓인지도 모르는 미키는 그렇게 미키17까지 복제되어 살아간다.
하지만 다리우스는 해발 1,300m 높이에 위치한 울란바토르에 숨어있는 채무자도 기어코 찾아내었다. (노인의 유일한 취미란 이렇게 무서운 것인가.) 다리우스의 집요함은 4년을 걸쳐 니플하임으로 비행한 미키와 티모를 찾아내고 티모는 감금된 미키들 중 한명을 죽이려 한다. (이 사건은 멀티플 현상이 발각되어 감금된 미키 일행에게 엎친 데 덮친 격 사건이 되는 데다가 미키의 유일한 친구인 티모가 별 볼 일 없는 인간이라는 것, 미키18과 나샤의 짝짝꿍, 그리고 32K카메라의 존재를 드러내는 재미있는 사건이다.) 마샬이 죽고 미키를 비롯해 반란을 일으킨 이들이 감금되었을 때, 혐의를 벗고 풀려난 티모는 끝내 다리우스의 부하와 마주친다. 그리고 격투 끝에 티모가 소각장에 부하를 추락시키게 되면서 나는 생각했다. 티모와 미키가 다리우스로부터 해방됐구나. 다리우스가 니플하임에 부하를 보내려면 4년이 더 걸릴텐데 늙은 다리우스는 그 전에 죽지 않을까?
2. 키에스 마샬(&일파): 사이비 종교주이자 관종인, 식민지 개척자의 새로운 세계 만들기
마샬은 우주 식민지 원정단을 주최하고 이끄는 함장이다. 그는 사이비 종교를 운영하고 있으며 선거에 3번 낙방한 끝에 새로운 세상(그를 추종하는)을 개척하려는 의도로 원정을 시작한다. (미키는 그저 지구에서 벗어나려는 의도로 원정에 참여하지만 말이다. 때로는 집단의 목적과 무관하게 상황이 맞으면 그냥 함께 하는 거다.)
여정이 시작된 후 마샬은 아내 일파의 도움을 받아 식당에서 연설을 한다. 여정 동안 한정된 식량을 아끼기 위해 에너지를 절약하고 생명력을 줄이자는 차원에서 섹스금지령을 내리고 니플하임에 도착하면 섹스장려프로그램을 개최한다고 말이다. 마샬 지지파 사람들은 열광하고 마샬과 아내 일파는 사람들의 환호를 기꺼이 받아들인다. 이 장면을 통해 마샬과 일파가 왜 그들의 지지자를 이끌고 왔는지 다시 한번 알게 되고, 안타까운 사고로 죽은 제니퍼를 '가임기 여성'으로 칭하는 그들을 보며 마샬과 일파가 사람들을 그들 세상의 쓸모있는 구성품 정도로 여긴다는 걸 알 수 있다.
마샬과 일파에 관한 이야기는 '인간 복제술'의 시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마샬의 교회(회사)에서 개발한 인간복제술은 윤리적으로 감당이 어렵다는 이유로 지구에서 금지된다. 하지만 이 기술을 개발한 천재과학자 중 한 명이 사이코패스였고, 이 사이코패스는 살인 사건의 알리바이를 만들고 두 명 모두 감금이 되었을 때 추가 범행을 저지르기 위해 한 명 더 만들어 세상에 파장을 일으켰다. 그래서 인간복제술에 관한 논쟁이 사회적, 철학적, 법적으로 격화되어 가던 중 마샬이 제안을 한다.
멀티플 현상은 극도로 경계해야 하는 현상이나 인간 기술의 발전을 위해 지구가 아닌 우주 개척 단체 한 곳에서 한 명에 한하여 인간복제술을 허용하고 멀티플 현상이 일어나면 그 즉시 복제한 인간의 기억과 존재를 모조리 지우자고 말이다. 마샬은 미키를 다리우스로부터 구해낸 구세주이면서 미키를 극한 직업으로 내몬 권력자이다. (재밌는 점은 마샬이 진짜 사이비 종교주라는 점이다.)
마샬은 니플하임에서 채집한 정체모를 돌(허허벌판에 버려진 미키가 함정으로 돌아올 때 올라탄 차에 실려있던 돌)을 그냥 넘기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개척지를 위대하게 만들기 위해 돌을 극찬하면서도 자신의 권력을 과시하기 위해 돌을 과감하게 자른다. 그 결과 돌의 구멍에선 그들이 극도로 혐오하는 크리퍼 베이비 2마리가 나와 소동이 벌어지지만 말이다.
3. 크리퍼: 행성 니플하임의 원주민
영화는 눈발에 쌓인 미키17의 얼굴에서부터 시작한다. 온도조절시스템이 망가졌고 통신시스템도 망가졌다. 무슨 상황일지 몰라도 그는 죽음의 위기에 닥쳤다. 그의 하나 뿐인 친구이자 동료, 티모는 미키의 화염방사기만 챙겨갔고 빙하 깊숙한 곳에선 낯설고 기이한 생명체들이 드러난다. 미키는 생각한다.
'제발 한번에 먹어줬으면.'
끝없이 열리는 아가리 안에서 나오는 기다란 촉수에서 떨어지는 침을 맡고 아마도 기절한 미키는, 거대한 크리퍼가 자신을 끌고 가는 걸 생각한다. '왜 안 먹었지? 아, 새끼들에게 주려고 데려가는구나.' 그리고 자기 몸을 올라타 구르고 쫓아오는 아기 크리퍼들을 보며 쟤네들이 자기를 크게 한 입씩 먹어주길 바란다.
하지만 미키의 생각과 달리 대왕 크리퍼는 미키를 설원에 냅다 던진다. 다시 새로운 몸으로 프린트된다는 이유로 사람들에게 버려졌던 탓일까. 미키는 자신이 온갖 우주 쓰레기들로 배합된 몸이니 육질이 좋지 않아 먹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도리어 크리퍼들에게 성도 낸다. 하지만 그를 배웅하는 듯 크리퍼들은 특유의 소리를 내며 다시 굴 속으로 사라진다.
살아있는 미키를 발견한 티모가 만약 미키를 버리고 가지 않았더라면 크리퍼는 인간 개척의 목적에 따라 제거해야 할 대상으로 여겨졌을 확률이 높다. 하지만 죽었다고 여겨진 미키17이 크리퍼로 인해 살아나고 그들의 언어를 따라해보기도 하고 호기심 넘치는 과학자가 즉흥적으로 통역기를 만들어내면서 크리퍼와 인간(마샬 파)의 전쟁은 일어나지 않는다.
(나중에 나오지만 크리퍼는 인간을 해칠 수 있는 능력은 없어보인다. 중대한 순간에 미키에게 뻥을 쳤으니 말이다. 실제로 능력이 있을진 모르겠지만. 이 대목에서 크리퍼와 니플하임에 정착한 인간들이 사이 좋게 지낼 거란 예감이 든다.)
이야기는 무언가 전하기 위해 재미있게 만들어진 매체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이야기에 나오는 인물, 사건은 모두 이야기를 전하는데 중요한 요인이다. 영화 <미키17>은 영화의 작은 요소 하나도 놓치지 않고 떡밥을 회수해 결말을 이끈 영화다. 나는 이런 이야기를 무척이나 좋아한다. 결말 이후 영화를 곱씹으며 '아, 이건 이래서 저건 저래서...'라는 생각을 하며 이야기의 세공성에 감탄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영화 <미키17>의 재미있는 여러 요소들 중에 이 영화의 전개 방식을 꼽았다.
그리고 이번 포스팅에서는 다루지 않았지만 영화 <미키17>은 엉뚱하고 가벼워보이는데 또 그 의미가 실상을 비추는 거울이 되어 웃긴 요소들도 곳곳에 분포되어 있다. 대표적으로 비둘기(죄인을 주교에게 이끄는, 평화의 상징)가 되겠다. 니플하임의 원주민 크리퍼의 생김새나 마샬 그 자체도 재미있는 비유다. 또 미키 17과 미키18이 마치 일란성 쌍둥이처럼 다른 인물 같이 느껴지는 로버트 패티슨의 연기력도 영화를 즐길 수 있는 포인트다.
(추신) 영화 <미키17>은 SF영화이지만 꼭 스크린이 큰 영화관에서 봐야 제 맛인 영화는 아니다. 우주적 광활함을 직관적으로 느끼는 영화라기보다는 우주를 배경으로 한 휴먼 코미디이기 때문이다. 기회가 된다면 한번 더 관람 후 미키17의 다른 재밌는 요소에 대해 포스팅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