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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lin Feb 27. 2024

긍정 마스크

[리뷰/책] Bright-Sided


<긍정의 배신>

작가 본인이 지은 원제목을 좋아하는 편이지만 이 책의 한국 제목이 꽤나 재치 있어서 가져와봤다. 저자 바버라 에런라이크가 쏟아내는 경험담들을 읽다 보면 느껴지는, 책 속에 전반적으로 깔려있는 긍정주의에 대한 그녀의 배신감을 제목만 봐도 유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책에서 바버라는 미국사회에(번역판 자기 계발서가 넘쳐나는 우리나라 또한 예외는 아니다.) 만연한 긍정주의, 그리고 그 긍정주의가 어떻게 미국을 몰락시키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낸다.


신 사상 운동 전개의 일환으로 과학을 접목해 기존 청교도 교리에 반하여 탄생한 새로운 형태의 교회. 1880s.

우선 긍정주의가 탄생한 시점으로 돌아가보면,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 사이 The New Thought Movement ​(신 사상운동) 이 유행하며 ‘긍정의 힘’, ‘끌어당김의 법칙’등의 기존 청교도 교리에 반하는 새로운 사상이 급속도로 번진다.


2000년대에 들어서며 오프라 윈프리, 엘렌 드 제너러스 등 유명인들의 지지를 받으며 전 세계적인 인기를 얻은 책과 DVD ‘시크릿’을 통해 긍정주의는 다시 한번 전성기를 맞이한다.




한편, 바버라는 유방암 판정을 받고 암 환자들 사회에 긍정주의가 어마어마하게 퍼져있음을 목격한다. 그녀는 암 환자들을 만나며 암을 통해 감사함을 알게 되었다거나, 암은 ‘축복’이라고 하는 등 그다지 병을 치료하는 것에 도움을 줄 것 같지 않은 과장된 긍정주의에 심취한 환자들을 보게 되고 그러한 사람들의 수가 결코 적지 않음을 알게 된다.


one thing I found as I entered this pink ribbon culture was a kind of "mandatory optimism." the constant advice in fact exhortations to be positive about the disease.... as a "gift."

- Barara Ehrenreich




이러한 집단 망상은 암환자들 세계에 국한된 것은 아니었다. 1980년대에 미국 기업들에 다운사이징​ 바람이 불면서 대규모 정리해고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2000년대까지 계속된 다운사이징은 현재까지도 직장인들에게 실적이 부족하면 언제든 해고될 수 있다는 불안함을 남겨놓았다.) 기업들은 실적을 내지 못하는 이들을 내쫓아 희생시킨 후 살아남은 이들을 다독일 강력한 무언가가 필요했다.


동기유발 코치를 고용해 유대감을 높이는 여러 가지 ‘신나는’ 체험을 제공하며 팀워크를 강화시켰다. 직원 포상, 신임 임원 소개 등 기업 내 행사에 빠지지 않고 동기유발 강연자를 초청했으며 그들은 불편하고 부당하다는 부정적인 감정으로 시간을 허비하는 대신에 긍정적인 마인드로 원하는 것을 그리는 것에 집중하라는 아주 희망적인 메시지를 끊임없이 전파했다.


열정적이고 생산적인 노동자들을 생산해 내기 위해 기업들은 낙천성을 높이는 각종 ‘훈련’을 도입했고 그것은 실제로 어마어마한 매출 증대를 가져왔다.


뿐만 아니라, 유명인들이 전파를 타며 자신들이 경험한 긍정의 효과를 선전하니, (종교단체에서 말하는 간증 효과와도 같다) 어느 누가 그 대열에 끼고 싶지 않았겠나.




책의 뒷부분에서 바버라는 긍정의 효과를 과학에 접목시켜 미신적인 부분을 제거하고 그럴듯한 학문으로 끌어올린 심리학자인 ‘긍정심리학’의 저자 마틴 셀리그먼을 만난 썰을 공유 하는데, 그녀가 실제로 만난 긍정심리학의 아버지는 그야말로 모순덩어리로 보인다.


셀리그먼은 펜실베이니아 대학에 위치한 사무실로 찾아간 그녀에게 눈길도 주지 않은 채 BBC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아도 괜찮겠냐며 한참을 통화하고, 인터뷰를 시작하려는 찰나 “이렇게 좋은 날씨에 실내에 있는 것은 부끄러운 일” 이라며 야외로 나갈 것을 제안, 또 다른 실내공간인 미술관으로 공간을 옮긴다. 기분을 좋게 만드는 모네의 그림 앞에서 인터뷰를 시작하려는 순간, 경비원이 다가와 날카로운 펜 소지를 지적한다. 겨우 시작한 인터뷰 내용 중 일부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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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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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리그먼은 저급한 쾌락과 만족감은 다르다며 여섯 가지 미덕을 갖춘 만족감이 좀 더 ‘고상한’ 쾌락이라는 말을 한다. 마침 그가 미덕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으니,  바버라는 셀리그먼의 웹사이트에 나와있는 행복 일람표 테스트 질문 중 ‘A 나는 자신이 수치스럽다’와 ‘B 나는 자신이 엄청나게 자랑스럽다’ 중 어느 것에도 속하지 않아 그나마 가까운 A를 골라 점수를 깎아먹은 일화를 공유하며, B가 가진 자만심은 미덕에 어긋나는 것이 아닌지 물었다. 이에 셀리그먼은 자신의 또 다른 책인 ‘Learned Optimism’을 읽을 것을 제안하며, “낙천성을 학습했다면 글쓰기 능률이 오를 것”이라며 부정적인 바버라를 꼬집는다... 이쯤 되니 그녀는 둘의 관계가 작가와 인터뷰어가 아니라 심리학자와 정신과 환자의 관계로 뒤바뀌어버림을 느낀다.


기분을 밝게 만들어주는 모네의 작품을 뒤로하고 두 사람은 불쾌한 감정을 느끼며 셀리그먼의 사무실로 돌아간다.




유례없이 긍정적인 사람들로 넘쳐나던 시기, 국민들의 낙천성이 극에 달하던 시기에 아무도 금융위기가 올 것을 예상하지 못했다.


그러나 21세기에 닥친 금융위기를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는 1920년대 경제대공황때와 달랐다.


워싱턴포스트의 기사, 경제논평 등이 전부 긍정주의자들로 채워졌기 때문에 그들은 불평등이 고도화된 사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아무 문제가 없으며 앞으로 더욱 긍정적으로 헤쳐나갈 것이라는 말로 국민들을 안심시키기 일쑤였다. 긍정적인 미국의 긍정적인 대통령 조지 부시는 긍정적인 미국인들은 충분히 위기를 극복할 것이라며 아무 문제가 없다고 국민들을 다독였다.


... 위기는 기회일 수도 있지만, 그것은 오로지 위기임을 인지했을 때만이 해당되는 말이다.




Positivity is not so much our condition or our mood as it is part of our ideology.
긍정은 우리의 상태나 기분이 아니라, 사상의 일부분이다.

- Barbara Ehrenreich, Bright-Sided

책을 거의 다 읽을 때 즈음이면, 도입부에 쓰여있던 ‘긍정은 우리의 상태나 기분이 아니라, 사상의 일부분이다.’라는 문장이 다시금 떠오른다.


“긍정의 힘이 근거가 없다고 치자. 한데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게 뭐 어때서?”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바버라는 근거 없는 긍정주의가 뭐 어떤지 답해준다.


십여 년 전 하버드 도서관에서 진행된 강의에서 그녀는, 2006년 쓰나미의 원인을 쓰나미의 진동을 우주에 전달해 끌어당긴 주민들에게 돌린 론다 번(시크릿 작가)을 예로 들며.. 의무적인 긍정주의는 victim blaming (피해자 책임전가)을 야기한다고 경고했다.


Delusion is always dangerous. it is a mistake
to delude yourself.

- Barara Ehrenreich


긍정적 사고의 반대말은 부정적 사고가 아니다. 부정적 사고 또한 망상을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둘 다의 반대말인 인지적 사고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근거 없는 낙관이 주는 거창한 의미부여는 결국 거짓의미로 가는 부작용을 일으킬 뿐이다.


바버라는 ‘사실적으로 상황을 인지하고 이해하면 행복해진다’고 말하고 있지 않다..! 그보다는, 그것을 생략하고는 진짜 행복을 찾을 수 없다는 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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