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빨간머리영 Nov 30. 2020

대나무를 그리며 떠오르는 아이에게

물을 적신 붓에 먹물을 살짝 찍어 하얀 접시에 치댄다. 치대면 치댈수록 먹색이 곱단다. 붓이 물을 적당히 머금은 걸까? 먹물의 농도가 적당한 건가? 접어둔 파지에 붓을 툭 쳐본다. 물이 많아 번진다. 붓을 돌려 한 번 더 파지에 털고, 다시 먹물을 살짝 찍어 접시에 치댄다. 치대는 붓의 각도는 어느정도일까? 돌리면서 치대는가? 치고 돌리는가? 손목에 어색한 힘이 잔뜩 들어간다.     


뾰족하게 모아진 붓을 세워 들고 서진으로 고정한 화선지 위로 와 호흡을 멈춘다. 점을 찍듯 내려서 왼쪽으로 붓을 눕혔다가 다시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선을 긋는다. 역입의 탄력을 이용해 가로획을 긋고, 다시 처음 모양으로 붓끝을 모아가며 세워든다. 역시 첫 획은 진하고 번짐이 심하다. 갈 길이 멀다. 다음은 오른쪽에서 시작해 왼쪽으로 번갈아가며 가로선을 채우고나서, 아직 마르지 않은 첫 획의 번진 자국위로 세로획을 긋는다. 오른쪽 위에서 시작해 아래로, 아래에서 시작해 위로. 빽빽하게.    




너도 그랬다. 가슴에 상처가 아물기 전에 젖 먹는 때는 찾아왔고, 유축기를 대고 짜면 피가 나와 절반은 눈물을 먹였다.     


  "효영씨, 선이 힘차고 좋네. 촘촘하게 잘했는데, 조금 여유있게 연습해도 괜찮아요."    

  "아, 네."         

  

동네문화카페 수묵화 다섯번째 시간. 맛보기 수업으로 진도를 계속 빼신다. 난도 쳐봤고, 난꽃도 피웠고, 이번엔 대나무를 가르쳐 주신다. 죽순이 자라듯 아래에서 위로 역입해 올려주고, 죽간을 띄워주고 한 마디 한 마디 자라 올라간다. 마디마다 새순도 나온다. 붓끝이 역입해 들어가는 순간, 붓결은 흐트러지지만 그대로 곧게 뻗어 그려지는 쾌감이 있다.     


빙판 위 스케이트가 전부였다가 차갑게 돌아서버린 너. 그 역입의 순간. 서로가 흐트러졌지만, 너만의 길을 그리며 걸어가는 뒷모습이 아름답구나.   

 

선긋기처럼 나는 여전히 촘촘한 대나무밭에 있지만, 꽃바람도 살랑 불어오고 봄햇살에 눈도 부셨으면 좋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그랑프리를 향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