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쭈물 살다 보니 생긴 일

가보지도 못하고 앉아서 쓰는 환상 탐험 여행을 앞두고

by 빨간머리영

조지 버나드 쇼 아저씨께
아저씨 안녕하세요?
인사말에 놀라셨나요? 이미 돌아가신 것은 저도 알아요. 우물쭈물 살다 그렇게 끝날 줄을 미리 아신 분이잖아요. 그저 편지를 시작하는 습관적인 말이니 신경 쓰지는 마세요. 아, 그리고 편지를 마칠 때도 그럴 것이니 미리 참고해 두시고요.

사실 저는 안녕하지 못했네요. 이번 여름방학을 앞두고 아저씨의 묘비명으로 상당히 불편한 마음 앓이를 해 왔거든요. 무언가를 결단하고 실행하는 시점에서는 ‘그래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 실수라도 해보는 게 낫지.’라고 아저씨의 묘비명으로부터 어떤 의미를 부여받을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무언가를 하지 않기로, 떠나지 않기로 결정한 지금의 저에게는 ‘그럴 줄 알았다는 말만큼 신경 쓰이고 주눅이 들게 하는 말은 없다!’ 이 말씀입니다. 얼굴도 모르는 외국 아저씨가 제 눈앞에 나타나 처음 듣는 목소리로 심지어 우리말로(당연히 우리말로요. 제가 알아는 들어야 하잖아요.) 얘기하는 것 같기까지 했어요.

“우물쭈물 살다 너 그럴 줄 알았다.”
(조금 더 크고 엄하게)
“우물쭈물 살더니 내가 너 그렇게 될 줄 알았다고.”

도대체 이게 무슨 악몽인가요? 아저씨에 대해서는 묘비명 밖에는 아는 게 하나도 없는데 말이에요. 어떤 위인이시기에 그런 묘비명을 남기시고 이렇게까지 저를 비웃으시는 건가요? 물론 아저씨의 묘비명은 아저씨 자신에게 던지는 이야기라는 것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는 있습니다. 그저 지금의 제 처지가 이러하여 아저씨의 묘비명을 오해하는 그런 설정을 잡은 거라는 것쯤은 아저씨께서도 이미 알고 널리 이해해주시리라 생각하고 믿고 있어요.

저는 아저씨에 대해 궁금해졌어요. 검색을 통해 만난 아저씨는 상당히 흥미로운 분이셨어요. 그건 뒤에 자세히 소개하기로 하고, 지금은 그 얘기를 할 때가 아니에요. 아저씨의 책을 시립도서관에서 검색했는데, 결과가 없다는 거예요. 아저씨는 셰익스피어 이래 최고의 극작가로 평가받기도 하고, 노벨상과 오스카상까지 거머쥔 유일한 인물인데 아저씨의 책이 단 한 권도 없다니요. 책 제목을 차례대로 넣어 검색하다가 그냥 아저씨 이름을 넣었는데 저자 검색 결과도 없었어요. ‘묘비명’이나 ‘유언’ 따위 단어도 넣었지만 마찬가지예요.

혹시나 하고 저는 ‘우물쭈물’ 네 글자만을 넣어보았어요. 세상에. 세 개의 결과가 떴는데 기뻐할 일은 아니에요. 아저씨와 연관된 책이 아니니까. 게다가 두 권은 같은 책이었어요. <우물쭈물 오소리 우화>. 패스. 패스. 아저씨에 관한 그 어떤 실마리라도 찾고자 도서관 검색대를 들락날락 어슬렁거렸던 조금은 탐정 같았던 저는 세 가지 제목 중 남아있는 단 한 권의 책 제목을 보며 놀람을 금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역시 아동자료실에 있는 책인데 제목을 보는 순간 소름이 끼쳤다니까요. 아저씨의 묘비명으로 움츠러들어야 했던 그간의 시간들을 생각하면 어서 빨리 이 제목으로 아저씨에게 복수하고 싶어 지네요. 만만치 않으니 준비하셔야 할 거예요. 아저씨 묘비명의 악몽으로부터 벗어나게 해 준 너무나도 고마운 그 그림책의 제목은 바로

<우물쭈물해도 괜찮아>


랍니다. 아 글쎄, 우물쭈물해도 괜찮다고요!


많이 놀라셨나요? 괜찮으신 거죠? 그런데 어쩐지 아저씨가 측은해지는 이유는 또 뭘까요? 저는 이 그림책의 제목만으로도 이미 큰 위로를 받았답니다. 아세요? 위로받은 자에게는 아량을 베풀 수 있는 여유가 생기더라고요. 아저씨의 책을 도서관에 비치해 드리기로 마음먹었죠. 군산에는 희망도서 바로 대출 서비스가 있는데, 아저씨 책을 서점에서 새 책으로 빌려 읽을 수 있어요. 제가 먼저 읽고 서점에 반납하면 그 책은 군산 곳곳의 도서관으로 가게 된다 이겁니다. 그러면 뭇 시민들에게 읽히게 되겠고요. 그렇게 저는 3주 전부터 아저씨의 책들을 읽고 있습니다. 5년 전에 출판된 책들은 희망도서로 도서관에 신청해 두었고요.

이렇게 아저씨를 알아가다 보니 저만의 아저씨로 간직하기에는, 그저 묘비명만 소개하기에는 아쉬워졌어요. 아 그 묘비명! 여기엔 심각한 번역의 문제가 있던데요. 원문을 보면 왜 우리말로 이렇게 번역되었는지 영어울렁증이 있는 저 조차 이해하기 어려웠어요. 검색하다 읽게 된 블로그 글에는 ‘정말 오래 버티면(나이 들면) 이런 일(죽음) 생길 줄 내가 알았지!’ 정도가 무난하겠다고 번역했네요. 번역가 이윤재 씨도 이런 문제를 제기하며 동아일보에 <정확성이 생명, 번역은 공학이다>라는 기고를 했다는데요.

“쇼는 전혀 이런 의도로 말하지 않았다. 비문의 번역은 전혀 그 답지 않다. 그는 실제로 우물쭈물한 사람도 아니었다. 묘비명의 원문은 ‘I knew if I stayed around long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이다. 번역하면 ‘나는 알았지. 무덤 근처에서 머물 만큼 머물면 이런 일(무덤 속으로 들어가는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것을’이다”

그럼 누가 이렇게 번역을 했느냐 하는 의문이 남는데요. 계속해서 블로거 Spring Fever님 의견에 따르면, 2006년 KT (당시 KTF) 마케터들이 의도적으로 오역을 한 거라고 해요. 이 부분이 상당히 중요해요. 기억하시는 분들이 더러 계실 텐데 ‘SHOW’라는 신규 브랜드를 홍보하면서 이전까지의 지루한 이동통신은 이제 죽었다는 메시지를 담고 쇼(show)와 동음이의어인 아저씨의 이름 쇼(Shaw)의 묘비명을 오역해 광고를 내보낸 것이지요. 그래서 이전의 번역이 있었는지 조차 알려질 새 없이 대중은 번역가가 아닌 마케터가 의도적으로 오역한 문장을 기억하게 된 것이래요. 이제 브랜드도 사라지고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오역은 끈질기게 살아남았고요. 번역도 새로운 창작이라는 말,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겠어요. 아저씨께는 많이 미안하지만 말이에요. 그래도 덕분에 저 같은 사람도 아저씨를 알게 돼서 군산시 곳곳의 도서관에 아저씨 책도 심어드리고 있잖아요. 그러니 너무 상심 마세요.


이제야 비로소 아저씨를 제대로 소개할 수 있겠어요.

조지 버나드 쇼 (G. Bernard Shaw 1856-1950)
- 아일랜드의 극작가이자 비평가.
- 셰익스피어 이래 최고의 극작가로 일컬어짐.
- 열다섯 살에 더블린 부동산 사무소에서 6년간 근무.
- 스무 살이 되던 해 런던으로 건너감.
- 온건파 사회주의자 모임을 주도하며 영국식 사회주의를 대중화.
- 부인과 런던 정치경제대학교 설립.
- 지방의원으로 활동.
- <성녀 잔다르크>, <메투셀라로 돌아가라>는 걸작으로 추앙받으며 노벨상 수상.
- 최대 흥행작 <피그말리온>은 영화로도 제작되면서 아카데미 오스카상까지 수상. 영화 <귀여운 여인>의 모티브가 됨.

94세의 나이로 사망하기까지 ‘훌륭한 100세 인생의 본보기’라 할 수 있을 만큼 시종일관 건강하고 유쾌하게 삶을 영위했다. 그의 피아노 연주와 미술 실력은 수준급이었으며, 젊은 시절 아마추어 권투대회에 출전하고 노년에 접어들어서도 자전거 타기와 운전, 사진 찍기, 서핑을 즐기는 등 평생 도전과 배움을 멈추지 않았다.

- <버나드 쇼 지성의 연대기> 중. 헤스케드 피어슨 지음.




아저씨야 말로 우물쭈물 사신 적이 없는, 약간은 우물쭈물거렸어도 괜찮았을 삶을 사셨네요. 자꾸 우물쭈물을 언급해서 죄송해요. 아저씨의 의도와는 상관없는 그 오역된 묘비명을 냉정하게 버리지는 못하겠어요. 그것으로 인해 진정한 아저씨를 만나게 되었으니까요.


"나는 젊었을 때 10번 시도하면 9번 실패했다. 그래서 10번씩 시도했다."

친애하는 버나드 아저씨. 이제는 아저씨의 새로운 명언을 더 기억하려고 해요. 그리고 그렇게 살아가려 해요. 이제 편지는 마무리해야겠어요. 아시다시피 내일 아침 배를 타려면 새벽 4시에는 출발해야 하니까요. 챙겨둔 짐도 다시 확인하고, 아이들도 일찍 재워야 하고요.
그럼 안녕.


2019년 8월 군산에서의 마지막 밤.
아저씨를 제대로 알아가고 싶은 효영 올림.

추신.
아저씨 책은 챙기지 않았어요. 다른 책들도요. 그곳에 가면 짐을 풀고 가장 먼저 할 일이 도서관 대출증을 만드는 것이니까요. 게다가 숙소의 주인 부부는 옆 건물에서 작은 책방도 운영하고 있어요. sns를 통해 만나게 되었지요. 안뜰이 있고 멀리 바다가 보이는 아담한 2층 집이랍니다. 이 얼마나 근사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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