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주도 좋은(좋아지고 싶은) 마흔 살 아줌마의 상상 여행
“배 타고 어디가? 제주도?”
“우물쭈물 어쩌고 하더니 결국 떠난 거야?
아닙니다. 여러분 아니에요. 혼란을 안겨드렸다면 정말 죄송합니다. 그럴 의도는 전혀 없었습니다. ‘가보지도 못하고 앉아서 쓰는 여행기’가 아니었습니까? 다만, 편지 마지막 부분에서 많이들 오해를 하신 것 같아요. 제가 너무 근사하게 떠나는 척을 했나 봅니다.
제 몸은 군산에서 일상을 살아가고 있어요. 하지만 마음만은 훌쩍 떠나버린 것이 확실합니다. 제 마음은 쟤 마음대로 6년도 더 된 기억 속에서 저와는 따로 놀고 있어요. 오죽하면 점심 즈음에는 ‘이제 도착했겠다.’ 이런 생각까지 들었다니까요.
지금은 많이 변했을 테지요. 그러니 어디냐고 물으신다면 제주도라고 선뜻 대답하기가 망설여지네요. ‘재주도’ 정도가 어떨까 해요. 기억과 환상 속 제주도 그 어디쯤. 그곳은 바로 재주도.
처음에 이 여행기를 일단 써보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이번에는 못 가지만 언젠가는 떠날 테니까 일정 짜면서 써보겠다고 했을 때. 저의 글쓰기 선생님이신 배지영 작가님께서는 두 눈을 반짝이며 한 술 더 뜨면서 이렇게 말씀해 주셨어요.
“효영, 그거 좋다. 진짜로 써 봐. 최초로 세계지도를 그렸다는 프톨레마이오스는 가보지도 않고 자료를 편집해 상상력으로 세계지도를 완성해버렸거든. 김정호는 사실 일제가 왜곡한 인물인데, 혼자서 대동여지도 완성한 거 아니야. 그전부터 우리나라는 마을마다 지도가 있었어. 그것을 하나로 모아 완성한 거지. 효영이도 정보들을 모아다가 새로운 여행기 한 번 써보면 좋겠다. 가보지도 못하고 앉아서 쓰는 여행기. 완전 괜찮네.”
일이 이렇게 된 것이랍니다. 그럼 이제 ‘완전 괜찮은, 괜찮을 것 같은, 괜찮아야만 하는 여행 이야기’ 들을 준비가 되셨나요? 이제 와서 드는 생각인데, 가상에 상상에 환상까지 겹친 여행이므로 비행기로 슝 도착했어도 되는 건데 싶네요. 돈 드는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우여곡절. 짠순이 아줌마. 집 떠나 고생 시작합니다.
목포항에 일찍 도착해 근처에서 백반을 먹었다. 우리 같은 사람들이 많은지 아침 식사하는 식당도 꽤 보이고, 식당마다 사람들도 제법 있다. 육지에서의 마지막 식사를 든든히 하고 신랑은 차를 실으러 먼저 배로 갔다. 나와 아이들은 대합실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는 간간히 사람 구경을 했다.
“엄마, 저기도 캠핑매트.”
크루즈에서는 공연도 하고 오락실이나 노래방도 있지만, 아직 아이들이 어린 우리는 들어가면 공간부터 확보하는 게 중요하다. 새벽부터 나서서 목포까지 왔고, 도착해서는 오후 일정을 보내야 하니 에너지를 충전해 두어야 한다. 굳이 부피가 큰 캠핑매트를 챙겨 들고 있는 이유다. 동지를 만나다니. 배 여행의 고수끼리 마주치니 반가우면서도 어쩐지 서로를 견제하는 눈빛을 감출 수 없다.
가까이서 보면 끝이 보이지도 않는 으리으리한 크루즈를 마주하며 인증샷 하나 서둘러 찍는다. 이번 여행의 첫 사진이다. 배를 마주하니 선장 이하 모든 승무원들을 대하는 마음가짐이 달라진다. 막내 손을 잡고 조심조심 계단을 오르며 그들을 위해 기도드린다. 그리고 우리 가족 모두 이렇게 떠날 수 있음에 감사드린다.
그 사이 캠핑매트 가족이 앞서간다. 선실에 올라 오른쪽으로 가는 것을 확인하고 나는 왼쪽 첫 번째 방을 열어본다. 벌써 신발이 가득하다. 서둘러 한 칸 건너뛰어 세 번째 방. 다행히 안쪽이 비었다. 어서 들어가 자리부터 확보하고 아이들을 챙긴다. 창가 자리라서 아이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공간이다. 어느새 캠핑매트 가족도 바로 옆에 자리를 잡고 있다.
“너 몇 살이야?”
“열 살, 얘는 일곱 살.”
“나도 열 살인데. 언니는 열두 살이고, 동생은 여섯 살.”
대합실에서부터 서로를 눈여겨봐 온 터라 어색해하기는커녕 말을 걸고 싶어 입안이 간질간질했나 보다. 다 들려서 이미 들었지만 다시 전달받는 순간 웃음이 나온다. 어른들도 밝은 얼굴로 꾸벅 인사를 나눈다. 나란히 자리를 잡고 나니 그야말로 한 배를 탄 사이다. 아이들은 가방 속에서 색칠공부와 그리기 도구를 꺼내 서로에게 설명하듯 자랑을 한다. 암, 이 정도 놀잇감은 기본이지. 서로가 자석처럼 끌리는 우리. 어쩐지 느낌이 좋다.
배가 서서히 움직인다. 아이들과 갑판에 올라 멀어지는 육지를 한참 바라본다. 안녕. 안녕. 불특정 다수에게 산에게 건물에게 다른 배들에게 보이는 모든 것들에게 보이지 않는 모든 것들에게까지 마구 마구 인사를 건네 본다.
한국말 잘하는 외국인 무명 가수의 멋들어진 노래를 들으며 기념품도 구경하고 곳곳을 둘러보다 방에 들어왔다. 조명은 꺼져있고 커튼 사이로 비치는 꿈결 같은 햇살에 우리 가족도 조용히 잠을 청한다.
“대상을 이해하고 나면 자신의 첫 생각을 믿어야 해요. 그리고 그날의 특별한 선택을 믿어야 해요.”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있었던 데이비드 호크니 전에서 문태준 시인은 화가의 ‘첫 생각’에 집중했어요. 강연회에서 그는 호크니의 말을 빌어 그 특별한 직관을 믿어보라고 강조합니다. 논리적이지도 않고 설명도 설득도 되지 않지만 마음의 회로를 따라 미로를 찾듯이 나아가라는 거예요.
저도 그렇게 이번 여행을 시작하려 합니다. 말도 안 되지만 첫 생각, 그 특별한 선택을 믿고 계속해서 이 여행을, 이 글쓰기를 즐겨보고 싶습니다.
오감 만족을 위한 발버둥 [육아여행 준비 편]
- 읽다
<내가 만난 꿈의 지도>, <탐험이 가져다준 선물-지도>, <종이 한 장의 마법-지도>
- 보다
영화 <업>
- 보고 듣고 따라 부르다
(유튜브) J Rabbit <바람이 불어오는 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