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강박이 있다. 특히 시간에 대해서 무척 예민하다. 누군가와 약속 시간에 늦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 내가 늦기 싫어하니 상대방이 늦게 오면 화가 난다. 이십 대 후반, 친구와 동대문에서 만나기로 했었다. 점심을 먹고 쇼핑하기로 했다. 그날 친구는 40분 정도 늦게 왔다. 내가 약속 시간보다 일찍 도착했으니 거의 한 시간 정도를 기다렸다. 그 친구는 평소에도 10분, 20분 정도 늦었다. 그전의 불만들이 쌓여있어서, 그날따라 더 늦은 친구에게 화를 내버렸다. 쇼핑몰 앞에서 큰소리를 질러버렸다. 친구도 나의 반응에 맞받아쳐서 화를 냈고, 우리는 만나자마자 싸우고는 헤어졌다. 친구는 지하철역 쪽으로 나는 반대쪽으로 걸어갔다. 화가 풀리지 않은 나는 쇼핑몰 밖 벤치에 한참을 앉아 있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내가 약속 시간에 늦기 싫어하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누군가와 약속하고 그 시간이 가까워져 오면 가슴이 뛴다. 늦을까 봐 긴장되고, 어떤 변수가 생길지 몰라 불안하다. 친구들을 만날 때는 보통 10분 정도는 미리 가서 기다린다. 공적인 모임이나 처음 가는 자리가 초행길이면 일부러 시간을 내어 미리 만날 장소에 다녀온 적도 있다. 나는 이런 상태를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고 일정 부분 남들도 그러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면서부터 상태가 극도로 달했고, 불안해서 힘이 들었다. 아이의 하원 시간이 가까워져 오면 가슴이 뛰어 진정되지 않았다. 어떤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괜히 이것저것 뒤적거리며 집안을 왔다 갔다 했다. 몇 분 일찍 가거나 늦게 가도 상관없었을 텐데, 괜히 혼자서 시간을 체크하며 딱 맞춰 아이를 데리러 갔다.
우연한 기회에 동생이 법륜스님이 하는 '깨달음의 장'에 다녀온 것을 알게 되었다. 그전부터 '정토회'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지만 출산 전에는 그저 나의 까다로운 성격 탓을 했고, 심리 공부도 하다가 말다가 하며 나 자신과 마주하기를 회피했다. 막상 아이를 낳고 보니 아이와 함께하는 모든 일들은 내 예상대로 되지 않았다. 시간에 맞춰 준비해도 갑자기 아이의 기저귀를 갈아야 하거나, 아이가 잠이 들거나 하는 일들이 생겼다. 시간에 맞춰야 하는 나는 예민해졌다. 그러다 문득 아이에게 내 불안이 전해지면 어쩌나 두려웠다. 동생이 다녀온 '깨달음의 장'은 2박 3일 동안 진행되어 내가 참가하기에는 무리였다. 대신 '행복학교'에 나갔다. '행복학교'는 정토회에서 진행되기는 했지만, 종교적인 것보다는 '마음공부' 위주로 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며 자신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때로는 위로받고, 때로는 위로를 주기도 했다.
그즈음에 또 하나, 나를 치유해 준 것은 그림책이었다. 아이를 위해 시작한 그림책 공부였다. 그림책을 읽다 보니 빠져들어 아이를 위한 그림책보다 나를 위한 그림책을 더 많이 보게 되었다. 그림책은 단순히 아이들이 재미로 보는 것일 줄로만 알았는데, 그 안에 심오한 세계가 있었다. 그림책을 보며 울고 웃으며 나의 유년을 돌아보게 되었다. 어린 '나'를 다독여주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사람 마음은 참 간사하다. '마음공부'와 '그림책 공부'를 하며 어느 정도 마음이 편안해지니, 시간이 맞지 않는다는 핑계로 마음공부를 그만두었다. 처음에는 새롭던 그림책도 어느새 익숙해지고, 그림책 번역 일을 시작하면서 일로써 그림책을 대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아이가 유치원 생활을 힘들어하는 시기가 왔고, 눈을 깜박이고 심한 변비로 고생했다. 다시 내 안에 숨어있던 강박과 불안 올라왔다. 가슴이 뛰고 아이가 잘못될까 봐 불안해서 아무 일도 할 수가 없었다. 밤에 누우면 아이 걱정에 잠을 설쳤다.
결국 신경정신과를 찾았다. 간단하게 설문을 작성하고 의사와 면담을 했다. 의사는 설문 결과지와 진료기록을 보고 이것저것 질문을 했다. 현재 나의 상태에 대해서 최대한 자세하게 답변했다. 의사는 인간은 누구나 약간의 강박은 가지고 있다고 하며, 내가 기질적으로 예민해서 더 발현된 것이라고 했다. 어차피 평생 안고 가야 할 숙제니, 마음을 잘 달래 가며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 마디 덧붙였다.
"조금 늦으면 어때요? 큰일 나는 것도 아니잖아요."
순간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그렇다. 약속에 조금 늦는다고 큰일 날 것도 없었다. 조금 늦으면 사정을 설명하고 미안하다고 사과하면 된다. 아이는 내가 갈 때까지 유치원에서 나를 기다려 줄 것이다. 내가 자신을 괴롭히고 있었다. 약을 먹으니 불안이 줄어들었고, 가슴 뛰는 것도 서서히 사라졌다. 그래도 불안할 때는 의사의 말을 곱씹어보았다.
“아이는 저절로 큽니다. 꼭 해 줄 것은 해주지만, 모든 것을 다 해결해 줄 수는 없어요. 특히 남자아이는 클수록 아버지의 영향을 받으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조금씩 마음을 내려놓으니 편했다. 마음이 편해지니 어쩌다가 약속 시간에 늦는 날도 있었다. 미안합니다,라고 한마디 하면 해결되었다. 나를 비난하거나 나무라는 사람은 없었다. 내가 늦으니, 다른 사람이 늦어도 화가 나지 않았다. 무슨 사정이 있겠지,라는 이해하는 마음이 생겼다. 사람들은 모두 서로 이해하고 이해받고 살고 있었다. 아직 살아갈 날이 많으니, 타인을 이해하는 여유 있는 삶을 살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