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쌤 안녕하세요! 잘 지내시죠? ㅋㅋㅋ 사진첩 보다가 쌤네 놀러갔을 때 선우 애기영상을 찾았네요. ㅋㅋ 프사 보니까 선우는 벌써 초딩 인가봐여.”
메시지와 함께 동영상 하나가 전송되어 있었다. 예전 학원에서 가르치던 Y였다. 보내온 동영상은 아들이 돌도 되기 전 아주 아기였을 때 찍은 것이었다.
나는 반가운 마음에 Y에게 전화를 걸었다. Y는 결혼하고 수원에 살고 있었다. 아가가 곧 100일이라고 했다. H는 임신 16주라는 소식도 들려주었다. 열여섯 살이던 아이들은 여덟 살이 되고, 스물이 되더니 이제는 서른이라고 한다. 시간이 많이 흘렀음을 그제야 알아차렸다.
Y는 내가 도봉구로 학원을 옮기면서 가르치던 학생이다. 한창 예민한 시기인 중3을 앞둔 겨울 방학부터 가르쳤었다. 늘 그렇듯 여자아이들은 서너 명씩 짝을 지어 다니는데, Y도 성이 다른 두 명의 H들과 셋이 몰려다녔었다. 아이들은 가끔은 공부하기 싫어하고, 때로는 보충수업에 빠지기도 했지만, 착하고 평범한 여학생들이었다. 작은 일에도 웃고, 울고, 화내고 기뻐하던 흔히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중3이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즐겁고, 꾸미지 않아도 가장 반짝일 시기이지만, 그때는 모른 채 시간을 흘려보내는 그런 시기를 지나고 있는 아이들이었다. 어떤 때는 세상에 ‘공부밖에’ 할 게 없는 듯 열심히 하다가도 또 어느 날은 ‘공부 따윈 해서 뭐해’라는 반항모드로 나를 힘들게도 했었다.
남편과 연애할 때 동네 공원에 산책을 하다가 아이들과 우연히 자주 만났다. 그럴 때면 아이들은 이유 없이 깔깔거리고 웃으며 우리와 함께 산책을 했었다. 함께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남학생들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아재 개그를 하는 남편을 ‘아저씨’라 부르며 서슴없이 대해주기도 했었다. 결혼 소식을 알리자, 자기들이 꼭 와서 축하해 주고 싶다며, 학원 아이들을 데리고 몰려오기도 했었다. 아이들은 커다란 전지에 꾸민 편지와 함께 마트에서 산 머그컵과 그릇을 선물했었다. 그렇게 아이들은 중3을 마무리하고 고등학생이 되었다. 고등학생이 된 아이들은 스승의 날이라고 학원으로 찾아와 놀다 가기도 하고, 우리 집으로 와서 성적 고민 같은 것을 하기도 했었다.
아이들과는 가끔 연락하기도 하고, 동네에서 우연히 마주치기도 했었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취직을 앞두고 있던 즈음 우연히 만난 아이들은 선우를 보러 몇 번 놀러 오기도 했었다. 하지만 사회초년생인 아이들은 직장 생활과 연애 생활로 바빠 보였다. 몇 번 오다가 차츰 메시지나 통화로만 소식을 전해왔었다.
그런 아이들이 이제는 서른이 되었고, H는 임신 중이고 Y는 백일 된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아이가 백일이니 얼마나 사람이 그리울까. 얼마나 사람이 그리우면 몇 년 전 사진까지 들춰볼 정도일까. 분명 정신없는 일상에서 아가를 돌보다가 잠깐 아가가 잠이 들어 짬이 났을 것이다. 친정도 멀리 있고, 친구들도 없는 지역에서 혼자라고 하는 Y의 모습이 그려졌다. 나도 그랬었다. 동네에서 우연히 만난 아이들이 놀러 와서 아들과 놀아주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어 주었을 때 얼마나 고마웠던지. 하루 종일 아기와 둘이 있다 보면 누군가 ‘대화상대’가 필요했다. 우유먹이고 기저귀 갈고 씻기고 하는 무한 반복의 일상에서 벗어나 특별한 일이 생겼으면 하고 바라던 시기였다. 분명 Y도 그런 시간 속에서 핸드폰을 뒤적이다 추억을 발견했을 것이다. 그때 선생님이 느낀 감정이 이런 감정이었구나. 그때는 나에게 이런 시간이 있을 줄 몰랐는데, 라며 Y가 그때의 나와 같은 마음으로 지내는 것 같아 기분이 이상했다.
“가까이 있으면 내가 아가도 봐주고 할 텐데.”
“어머 선생님, 진짜요? 진짜 봐주실 거예요?”
내 말에 Y의 목소리가 밝아졌다.
“그럼, 봐 주고말고. 꼭 놀러와. H랑도 같이 보자.”
“네. 놀러 갈게요.”
친구들과 같은 반을 시켜주지 않으면 학원을 그만 두겠다고 투정을 부리던 열여섯의 아이들은 어느새 아기엄마들이 되어있었다. 14년이란 시간 동안 가늘게 이어진 인연의 끈은 끊긴 듯했지만, 서로 ‘엄마’가 되면서 다시 이어지고 있었다. 우리가 다시 만났을 때, 이제는 또 다른 이야깃거리가 생겨날 것이다. 이 아이들과 성적 고민이나 연애 고민이 아닌, 육아 고민을 함께 할 날이 올 줄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