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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양 Sep 25. 2023

달 보러 갈래?

단체방에서 달 이야기로 떠들썩했다. 이번에 뜨는 달은 슈퍼 블루문이라고 한다. 올해 보지 못하면 14년 후에나 볼 수 있단다. 나는 저녁 준비로 바빠, 달을 보러 갈 생각도 하지 못했다. 평소처럼 퇴근한 남편과 셋이 저녁을 먹고 뒷설거지를 하려는데 남동생에게 사진이 전송됐다. 뒤이어 온 메시지에 ‘달 봤나?’라는 글이 화면에 떴다. 카톡에 들어가 보니 시골집 마당에서 찍은 달과 확대해서 찍은 달 사진이었다.      


 정월 대보름이나 한가위에 시골집에서 달을 보면, 서울에서 볼 때보다 훨씬 크고 밝다. 아무래도 집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주변의 불빛이 적어서 일 것이다. 지난 대보름에는 일부러 실내 불을 다 끄고 밖으로 나갔다. 추위를 막아줄 담요 한 장을 몸에 두르고 온 가족들이 달구경을 했었다. 아들은 연신 ‘와~밝다, 멋지다.’라는 감탄사를 내뱉었었다.     


 남편에게 동생이 보낸 사진을 보여주며 달 보러 갈래,라고 물었더니 좋다고 한다. 아들은 두말할 것도 없이 오케이다. 아들은 이런 예상 밖의 일을 즐긴다. 더구나 밤에 외출이라니, 더 신난 것 같다. 나는 뒷설거지는 미뤄두고 달을 보러 갔다. 시골과 달리, 건물이 높은 우리 아파트 단지에서는 달을 찾기가 힘들었다. 101동 쪽으로 가도, 106동 쪽으로 가도 달은 보이지 않았다. 제일 끝 쪽에 있는 107동 뒤쪽으로 가니 드디어 훤한 달이 보였다. 얼른 사진을 찍어 동생에게 보냈다. 거기도 달이 떴냐고 바보 같은 메시지도 함께 보냈다. 곧 동생에게서 여기도 떴다고 답장이 왔다.    

  

 서울에서 자동차로 3시간을 달려야 내 고향, 영주에 도착할 수 있다. 달은 얼마나 크기에 거기서도 여기서도 잘 보이는 걸까? 평소에는 아무 생각 없이 마주하던 달인데, 동생과 달을 동시에 보고 있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이상했다. 그리고 나의 부모님과 달에 얽힌 옛날이야기가 떠올랐다.     

 

 나의 아버지는 48년생, 엄마는 50년생이다. 두 분은 1970년에 결혼을 했다. 당시에는 드문 연애결혼이었고, 더구나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한 결혼이었다. 엄마는 아버지가 살던 동네에 큰집이 있어 몇 번 다니러 왔다가 아버지를 알게 되었다고 한다. 아버지는 홀어머니를 모시고 있었고, 누나 둘과 여동생과 살았다. 변변한 직업도 없이 방황하던 아버지는 가난했다. 나의 외할아버지는 아버지와 엄마의 결혼을 심하게 반대했다. 엄마는 몰래 아버지와 편지를 주고받으며 사랑을 키웠다. 큰집에 다니러 간다는 핑계를 대며 몰래 만나 연애했다. 그러다가 둘의 비밀연애가 들켜버리고 엄마와 아버지는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다고 한다. 그때 아버지가 엄마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서로 몸은 멀리 떨어져 있어도 마음은 항상 같이 있는 거다. 우리 매달 보름에 달을 보며, 서로를 생각하자.”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은 아주 예전에, 엄마에게 왜 아버지와 결혼했냐고 물은 적이 있었다. 그때는 아버지가 자주 미웠고, 엄마가 고생하는 것이 아버지 탓이라 원망을 많이 했었다. 내 물음에 엄마는 ‘좋아해서 결혼했지.’라는 말 대신 달 이야기를 들려주었었다. 아버지가 미울 때는 ‘달 같은 소리 하네.’라고 속으로 못마땅했었다. 그래도 가끔은 보름달이 뜰 때 함께 달을 보자,라는 아버지의 말이 로맨틱하게 생각되기도 했었다. 엄마는 아직도 보름에 달을 보며 아버지와의 추억을 떠올릴까? 숱한 세월의 풍파에 이제 그런 기억은 구름에 가린 달빛처럼 희미해져 버렸을까? 그 이야기를 들은 후로 나는 가끔 달을 보면 아버지가 떠오른다. 

    

 14년 후의 슈퍼 블루문이 뜨는 날을 상상해 본다. 엄마와 남동생, 남편과 아들……. 그때 우리는 어떤 모습을 하고 달을 보고 있을까? 나는 그때 누구와 달을 보고 있을까? 또 달을 보며 누구를 떠올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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