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전한 생활 습관과 아버지의 치매
- 건전한 생활 습관과 아버지의 치매
내가 읽은 치매 책의 골자는 이랬다.
- 치매는 80 퍼센트 이상이 평소 습관에서 나오는 습관병이며 젊었을 때부터 규칙적이고 건강한 생활 습관, 식습관, 긍정적인 생활 태도 및 꾸준한 운동을 유지하면 치매에 걸리는 걸 예방할 수 있다. 또 걸리더라도 이른바 ‘예쁜 치매’가 될 수 있다.
사뭇 뻔하고 교과서적이지만 가슴에 비수를 꽂고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그리고 자연스레 시부모님을 떠올리게 되는데, 그도 그럴 것이 시부모님은 ‘좋은 생활 습관’의 정석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직 의사시며 네덜란드 남쪽의 작은 마을에서 살고 계시는 올해 71세의 시아버지께선 나에게 항상 이걸 강조하셨다.
- 청결한 생활, 휴식하는 생활, 규칙적인 생활.
은퇴 후 여유로운 생활을 즐기시는 시부모님의 일상은 다음과 같다. 아침 8시 반쯤 일어나 샤워를 하시고 9시 반쯤 아침을 드신다. 아침은 항상 빵, 삶은 달걀, 오렌지 주스와 티다. 아침 후 클래식 라디오를 배경으로 커피를 마시고 신문을 보시며 마지막에 꼭 같이 신문에 있는 가로 세로 낮말 맞추기를 푸신다. ‘내가 먼저 끝냈다!’며 시어머니를 약 올리는 시아버지의 표정이 재밌다. 약 11시 반쯤부터 각자 일을 하신다. 시아버지는 대부분의 시간을 당신의 제법 멋진 작업실에서 목공 작업을 하시고 (목공 실력이 가히 수준급이다.) 시어머니는 성가대 노래 연습, 재봉질, 베이킹, 정원 가꾸기, 그림 그리기 등 여러 활동을 하신다. 점심은 따로 안 드시고 4시쯤 간단히 쿠키와 차를 드신다. 부엌 권한이 전적으로 시아버지께 있는데, 그래서 요리는 항상 시아버지께서 하신다. 대강 10개 정도의 메뉴를 돌아가며 만드는데 화요일엔 파스타, 금요일엔 생선, 토요일엔 빵, 이런 식이다. 전체요리, 메인 요리, 후식의 순서를 꼭 지킨다. 시아버지의 요리 솜씨는 꽤 좋다. 7시쯤 저녁을 먹고 (같은 요리인데도 오늘은 무슨 재료를 썼네, 레시피를 이렇게 바꿨네, 하시고 그러면 어머나 그러냐, 어쩐지 맛이 다르더라, 뭐 이런 소소한 얘기가 오간다. 난 그냥 속으로 웃는다. 내 입엔 다 똑같은데 뭘 그리 호들갑인지) 8시에 20분짜리 티브이 뉴스를 꼭 챙겨 보시는데 이땐 쥐새끼 소리 하나 안 날 정도로 조용해야 한다. 이후엔 책을 읽거나 티브이 영화를 보거나 이메일을 확인하는 걸로 하루를 마감하고 시어머니는 11시쯤, 시아버지는 12시쯤 집 전체 안전 점검을 하신 후 주무신다. 한 편의 지루한 단편 소설 같다.
코로나 19 때문에 지금은 달라졌지만 주중 계획도 확실하셨다. 시아버지는 2주에 한 번씩 화요일에 자원봉사를 가셨고 수요일엔 친구분들과 자전거 마라톤을 하며 매주 금요일 저녁엔 배드민턴을 치셨다. 시어머니는 화요일엔 성가대 연습을, 목요일 아침엔 그림 수업을 받으셨다. 산책도 자주 하셨고, 날씨가 허락하면 최소 10킬로 정도 자전거를 타셨다. 이러면 정말 일주일이 기다릴 세 없다는 듯 휙 간다. 담배는 안 피우시고 술은 저녁 상에 와인 한 잔 즐기는 정도며 끊임없이 움직이신다. 누구에겐 지루할, 파장의 폭이 좁은 파도와 같은 생활이지만 모든 면에 여유가 있으면서도 하루를 알차게 쓴다는 인상을 받는다. 그건 마음도 마음이지만 경제적인 여유에서 온다는 걸 부정할 수 없다. 평생 열심히 일하셨고 그걸 연금에 부으셨으며 그 대가로 노후에 편하게 사시는 것이다. 그리고 그건 비교적 안정적인 네덜란드 복지 시스템과도 연결되어 있다. 물론 그 시스템을 제대로 누릴 수 있는 자격에 대해서는 그 이면의 이야기들이 있지만 말이다.
반면 한국으로 돌아와 지켜보는 아버지의 생활은 시부모님의 그것과는 사뭇 거리가 있었다. 1937년생이신 아버지는 규칙성과는 거리가 먼 분이셨다. 매일 몇 갑의 담배로 대한민국의 공기를 오염시켰으며 술 좋아하시는 거야 ‘말해 뭐해’였다. 여러 사업을 하셨기 때문에 항상 바쁘셨고 출퇴근 시간 및 스케줄은 들쭉날쭉이었다. 어렵다는 최고 대학을 나오신 엘리트답게 엄청난 독서량을 자랑하셨지만 달리 몸을 움직이시진 않으셨고 마작이나 바둑, 가끔 골프를 치시는 게 당신 취미의 다였다. 부엌엔 발 들인 적 없으며 라면 한 번 끓여본 적 없고 전구 한 번 갈아보지 않을 정도로 집안일엔 무관심하셨다.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하셨고 장난과 농담을 좋아하고 호탕하고 손 큰 성격에 인기가 많으셔서 우리 집과 회사 사무실은 항상 아버지 친구분들로 왁자지껄했다. 거의 매일 밤 서재에서 시끌벅적 친구분들과 마작을 두시던 아버지와 다과 및 술상을 준비하시던 어머니의 모습이 아직도 선명하다. 가세가 기운 후엔 조금 달라졌지만 그래도 아버지의 근본적인 성향과 성격은 달라지지 않았다.
치매 예방의 첫째 조건이 규칙적이고 건강한 생활 습관이라고 봤을 때, 시아버지의 점수는 상위권이고 아버지는 하위권에 가깝다. 문화, 환경, 인생관이 전혀 다른 아버지와 시아버지를 비교하는 건 무리일 거다. 하지만 두 분을 보며 나 자신을 반추할 수는 있다. 지금까지 아버지와 별반 다를 바 없이 이른바 그냥 ‘꼴리는’대로 자유롭게 살던 나. 몸이 예전 같지 않다고, 노안이 왔다고 투덜거리는 나이가 된 지금, 새삼 두 분의 모습을 다시 보지 않을 수 없다. 아버지 나이가 되었을 때 과연 난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아버지에게서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내 모습을 본다. 아버지의 피가 흐르는 내가 지금부터라도 시아버지의 말씀처럼 ‘청결한 생활, 휴식하는 생활, 규칙적인 생활’을 실천할 수 있을는지. 다른 건 몰라도 규칙적인 생활은 도전 중의 도전일 것 같다.
내가 한국으로 돌아갔던 이유는 80퍼센트 이상이 아버지 때문이었다. 하지만 돌아왔다고 한들, 아버지의 치매를 처음으로 감지한 사람은 나였지만 내가 아버지께 해드릴 수 있는 건 별로 없었다. 치매로 인해 시나브로 변해가는 아버지를 보며 난 그를 얼마나 알고 있나 자문했다. 성인이 된 후 아버지와 진지한 인생 토론을 해 봤던가? 같이 뭘 해 본 적이, 하다못해 단 둘이 밖에서 외식을 하거나 술잔이라도 나눴던 적이 있던가? 내가 먼저 뭘 제안한 적이 있던가? 아버지는 아버지 인생을 사시느라, 나는 내 인생을 사느라 바빴고 서로 사랑을 표현하는데 수줍고 어색해했다. 그래서인지 아버지에 대한 내 정서는 어린 시절 주문진에서 바다 낚싯대를 손에 쥐어주셨던 그때에 멈춘듯하다. 서로 단편적인 모습만 알고 있는 이 관계는 너무나도 전형적인 한국식 ‘부모와 자식’ 관계이려나? 내가 위에 서술한 아버지의 모습은 그저 내 눈에 비친 몇몇 조각일 뿐 난 아버지를 몰라도 너무 모른다.
내 아이의 성장에는 집착하듯 기록하면서도 부모님에 대해선 달리 기록한 적이 없다. 그래서 더 늦기 전에 아버지를 알고 기록하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다. 내가 아버지께 질문을 퍼부었을 땐 이미 입을 다무신 후였으니까. 아버진 왜 그 전공을 선택했어요? 아버진 어머니 만나셨을 때 어떠셨어요? 아버진 인생 중 언제가 가장 행복했어요? 치매에 걸리신 후 말이 없어진 아버진 대답 없이 그저 허허허 헛웃음만 지으셨다. 아버지의 목소리로 그 대답을 듣지 못했기에, 다시 떠난 내 발걸음은 여전히 무겁다.
조지타운, 페낭, 말레이시아.
그림 by 옐로우덕
<이 글은 이미 브런치북 '공항에서 당신이 한 마지막 질문'에 실린 글을 다시 에디팅 하여 올린 것임을 알려드립니다. 브런치북에 있는 글은 발행 취소가 되질 않아 그대로 있습니다.>
<그동안 '시시껄렁할수록 심오한 여행의 잡설' 매거진과 '시시껄렁할수록 심오한 오늘의 잡설' 매거진에 있는 글들을 하나로 정리하고 있습니다. 판데믹 시대에 '노마드'로서의 정체성을 정리하고자 함입니다. 새로운 길을 찾을 수 있겠죠? 정리가 되면 다른 매거진에 있는 기존 글은 발행을 취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