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켓북으로 추억 정리 중
자기소개서를 쓸 때 머뭇거리며 쉽게 말하지 못하는 특기와는 달리, 거침없이 말하는 내 취미가 있다.
바로 직관이다.
정확히는 음악 공연 직관인데, 요즘은 음악 공연뿐만 아니라 뮤지컬, 스포츠 등 범위를 넓히고 있다. 음악 공연 또한 장르를 넓히는 중.
최근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직관은커녕 외출조차 최소화하며 집돌이 생활을 하고 있다. 여러 가지 불편한 점이 있지만 무엇보다 취미 생활을 당분간 못 하는 게 힘들다. 올해는 해외 아티스트들의 내한공연 직관 위주로 계획했는데, 이미 몇몇 내한공연이 코로나로 인해 취소되면서 강제로 내 표도 예매 취소당했다. 슬프지만, 코로나 바이러스가 잠잠해지는 동안은 지난 직관 경험들을 정리하며 특별한 순간을 자주 기록하려고 한다. 일단은 음악 공연에 관련한 추억이 많기에 음악 공연 위주로 적어보려 한다.
그리고, 기록의 첫 스텝으로 티켓북을 구입하였다.
몇 년 전부터 티켓북을 사야겠다고 말만 되뇌었는데, 결국 지금 구입하게 되었다.
인터넷에서 100매짜리 티켓북을 12,000원가량에 구입하였다.
버건디 색상을 원했지만 당시 재고 소진으로 대신 머스터드 색상이 왔다.
다행히 사진보다 실물이 예뻐서 만족한다!
그리고 그동안 티켓 봉투에 모아 놓았던 수십 장의 티켓들을 하나씩 정리해보았다.
사실 나한테 있어서 첫 음악 공연 직관은 고등학교 1학년 때 단체로 서울에서 봤던 야니 내한공연이었다.
뮤지컬 역시 어렸을 때 봤던 어린이 뮤지컬을 제외하고는 고등학교 때 단체로 서울에서 봤던 뮤지컬이다.
당시에는 아무 생각 없이 학교에서 가니까 가서 봤었는데, 돌이켜보면 정말 좋은 경험이었다. 고향 강릉은 지금의 관광 도시와는 달리 10년 전에는 여름, 겨울에만 바다 보러 눈 보러 오는 흔한 강원도 도시 그 자체였다. 큰 공연은 열리지도 않았고, 수용할 만한 공간도 딱히 없었다. 나한테는 이런 공연들이 한마디로 컬처쇼크였다.
그 외에도 고등학교에서 친구들을 통해 힙합을 접하고 락을 접했다. 공연 영상들도 쉬는 시간 틈틈이 보며 꼭 대학생 되면 공연 보러 다녀야겠다고 생각했다. 돌이켜보면 고등학교 생활이 지금의 커리어 패스뿐만 아니라, 촌놈이었던 나에게 문화생활을 일깨워주고 지금의 취미 생활을 시작하게 된 계기라고 할 수 있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에 지금까지 참 많이 직관을 다녔다. 티켓 정리를 하기 전까지는 이 정도인 줄 몰랐는데, 분실 제외 보유하고 있는 티켓만 60장이 넘었다. 대학교 문화행사실에서 공연 스태프 하며 봤던 공연들, 교환학생 중 봤던 해외 공연들을 포함하면 훨씬 많겠지.
학교도 대전에 있었고, 서울에 집이 없었음에도 공연 때문에 서울에 참 자주 다녔던 것 같다. (매번 숙박을 챙겨주신 이모와 외삼촌께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맨날 없는 돈 모으고 모으며 공연 다녔던 것 같다. 덕분에 서울에서 학교 다니는 친구들한테 서울 지리를 소개하고, 공연에 한 번쯤 가보고 싶어 하는 친구들에게 공연 가이드를 해주며, 종종 친구들이 티켓팅을 할 때 내게 도움을 청하기도 한다. 나 또한 종종 함께 공연을 즐겼던 가족, 친구 포함 소중한 분들 덕분에 좋은 추억을 많이 쌓았고 지금도 참 고맙다!
음악이야 멜론으로 들으면 되고, 연예인 무대야 유튜브로 공연 영상 보면 되는데 왜 그렇게 돈과 시간을 많이 쏟냐는 이야기도 정말 많이 듣고, 지금도 듣고 있다. 하지만 나한테는 공연이 그저 연예인 실제로 보고, 노래 들으러 가는 것은 아니다. 물론 처음에는 연예인 보고 노래 듣는 것에 집착해서 공연을 보러 다녔다. 하지만 대학생이 된 이후 처음 가본 록 페스티벌 2013 그린플러그드에서 나와 관객들과 아티스트들이 한 공간에서 함께 미친 듯이 비 맞으면서 놀고 끝장나는 하루를 보낸 후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었다.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같이 좋아하는 관객들과, 그 음악을 보여주는 아티스트들.
그분들과 같은 장소, 같은 시간에서 함께 하는 호흡.
그 호흡과 분위기는 나 혼자 이어폰을 꽂고서는 절대 느낄 수 없었다. 그리고 이것이 내가 공연 직관을 지금도 다니는 이유이다.
연도별로, 종류별로 티켓을 정리하면서 재밌는 사실을 발견했다.
처음에는 페스티벌 위주로 참 많이 다녔다. 2013 그린 플러그드 분위기를 잊을 수 없기도 했고, 또 가성비로 따졌을 때에도 여러 아티스트들의 여러 노래를 접하기에는 페스티벌이 최고였다. 지금도 한강 난지 공원에서 친구들과 즐겼던 많은 페스티벌들이 스치듯 생각난다.
군 제대 이후에는 콘서트 위주로 다녔다. 군대 있는 동안 휴가 때 엠씨 더 맥스 콘서트 갈 기회가 생겨 다녀왔었다. 그때 음원보다 훨씬 좋았던 라이브에 충격을 받으며 처음으로 내가 듣고 있었던 음원들에 대해 불신까지 하였었다. 제대할 즈음에는 볼빨간사춘기에 푹 빠져서 볼빨간사춘기 콘서트도 다녀왔다. 페스티벌에 비해 가격도 비싸고, 볼 수 있는 아티스트들도 제한적이지만 그만큼 훨씬 그 가수의 많은 노래를 들을 수 있는 콘서트의 장점이 있다. 노래뿐만 아니라 아티스트와 관객 간 멘트들도 주고받고, 무대 장치도 훨씬 다채롭다는 것 또한 콘서트의 큰 매력이었다.
지금은 페스티벌과 콘서트를 고루고루 다니고 있지만, 콘서트에 많이 재미를 느끼는 것이 사실이다. 20대 초반처럼 페스티벌에서 방방 뛰지도 못하겠고, 앞서 언급한 콘서트의 장점을 더욱더 느끼고 있다. 아이유나 허클베리피와 같이 콘서트 잘하기로 유명한 아티스트들은, 그 아티스트에 대해 잘 모르더라도 우선 콘서트에 가서 입덕 하기도 한다. 볼빨간사춘기나 넬처럼 오래오래 쭉 좋아하는 아티스트들은 콘서트를 주기적으로 가면서, 이번에는 무대 구성을 어떻게 했는지, 조명은 괜찮은지 (개인적으로 조명을 중요하게 여긴다. 콘서트는 시각 예술이기도 하다.) 셋 리스트는 어떤지, 공연 시간은 어떤지 등을 나름 판단하며 즐기기도 한다.
음악 공연 외에도 2018년도부터는 뮤지컬, 축구 직관, 해외 아티스트 공연 등을 새롭게 추가하며 즐기고 있다. 점점 스펙트럼도 넓어지고 돈도 많이 들지만, 그만큼 시야가 넓어지는 것 같아 아직 후회는 없다. ㅎㅎ
짧게 작성하기 위해 Prologue로 따로 글을 쓰려고 했는데, 원치 않게 글이 길어졌다. 그래도 Prologue를 쓰면서 기록으로 남기고 싶은 몇몇 직관들을 정했으니 적어도 나한테는 충분히 이 글이 가치 있다.
오래오래 취미 생활을 이어나가고, 브런치에도 직관 기록을 오래오래 남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