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의 의미

내가 사랑하는 집

by 물고기

큰 집, 작은 집, 작은 방 등 다양한 집에 살았다.

내가 살았던 집, 방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집의 의미를 찾아보려 한다.


고등학생 때 우리 집은 우리 반에서 제일 잘 살았다.

새로 지은

넓은 아파트

일주일에 한 번씩 오시는 도우미 아주머니.

이런 것들은 내 친구들에게 부러움을 사기 충분했다. 하지만 정작 우리 가족은 그 집에 살 때 마음이 힘든 일을 많이 겪어서 그 집에 대한 추억이 썩 좋지는 않다. 동생과 나는 정신적으로 힘든 일이 많았고, 아버지의 사업은 부도를 맞았다. 집은 넓었지만, 마음이 쉴 곳은 없었다. 햇볕도 하루에 2시간 정도밖에 들어오지 않았다. 집에 있으면 왠지 우울해졌던 것으로 기억한다. 몇 년 뒤 우리는 이사를 갔다.


대학교 때 전공 때문에 한 달 정도 튀니지에 가서 산 적이 있다. 어학연수라는 미명 아래 '놀러'간 거였는데

당시 먼저 유학을 가 있던 한국인이 살던 집에 놀던 방 하나를 빌려 살게 되었다. 열다섯 집이 있는 작은 아파트 꼭대기층이었는데 햇볕이 잘 들었고 하얀 벽에 붙박이 장까지 있어서 잠깐 머물기에는 제격인 곳이었다. 가끔 부엌에서 바퀴벌레가 나와서 앞 집 유학생 오빠들을 부르며 소란을 떨기는 했지만. 학원 수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책상에 사전을 펼쳐놓고 숙제를 하고 있으면 창문에서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한창 더울 7월이었는데도 한국보다 덥지 않았고 집 앞 잔디밭에는 고양이들이 늘어져 있었다. 한 달 살이었기 때문에 집에 대한 걱정도, 불만도 없었다. 가장 느긋한 마음으로 산 집이었다.


이듬해에는 두바이에서 네 달 정도 머무르게 되었다. 정부와 학교가 함께 추진하는 '해외인턴' 프로그램으로 가게 된 것인데, 막상 가려고 보니 학교나 정부나 준비된 것이 없었다. 일할 곳도, 살 곳도 너무나 막막했지만 두바이에서 사업을 꾸리고 있는 학교 선배의 도움으로 한국식당을 운영하는 한국인 가족 집 방 한 칸에 3명의 여학생들과 살게 되었다. 침대 2개에, 테이블 2개, 작은 옷장 2개가 끝. 칸막이도 없었기 때문에 서로 그 어떤 프라이버시도 없었다. 청소, 빨래와 같은 별거 아닌 집안일에 다투고 별 일은 아니었지만 '일'이라는 것을 했기 때문에 직장에서 받는 스트레스 때문에 서로 맘이 상하기도 했다. 그때는 집의 공간이 좁아서 싸우게 되는 거라고 생각했다.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만 했다. 하루하루를 버티는 공간일 뿐, 그곳은 집이 아니었다. 집이라는 곳은 더 많은 뭔가를 포함하는 것이어야 했다.


약 1년 전, 결혼을 했다. 사회생활을 한지 얼마 안 되었기 때문에, 집 값이 너무 비싸기 때문에, 집을 살 엄두는 내지 못했다. 투룸 전세를 낼 돈도 없었다. 부모님께 손을 벌릴 수도 없었고,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남편이 혼자 살던 자취방 원룸에 내가 들어가 살게 되었다.

지금 집은 내가 살던 그 어떤 집보다, 어떤 방보다 작다. 얇다고 표현해야 맞을 붙박이 옷장 2개에 싱글 침대 하나, 티브이가 있는 책상, 4단짜리 책장, 그리고 옷장 옆 수납장 4칸이 다인 우리 집, 아니 우리의 방. 부엌과 신발장이 함께 있는 작은 공간이 더 있다고는 하나 요리 하나 제대로 하기 힘든 좁은 공간이다. 하지만 나는 이제야 나의 집을 찾았다고 느낀다. 우리의 작은 공간이 누군가의 눈에는 안타까운 청춘, 집이 없는 세대, 불안한 주거 환경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나는 친정 부모님이 사시는 60평에 육박하는 신도시 마천루 아파트보다, 지금은 눈을 씻고도 찾아볼 수 없는 여유가 있던 튀니지 방보다, 동기들과 부대껴 살던 두바이보다,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좋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지금 사는 집엔 사랑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사랑이 있기 때문이다.

언젠가 아이를 낳고 키우게 되면 공간을 넓혀가야겠지만, 지금은 더 큰 공간의 필요성은 그다지 느끼지 못한다. 집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그곳에 사랑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보기만 해도 기분 좋은 내 사람을 매일 볼 수 있어서 나는 열 평 남짓 원룸에서도 무척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