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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Ah Oct 04. 2022

<공정>의 잣대, 개인 VS 집단


파이는 한정돼 있는데 가지려 하는 자가 많을때 항상 파이를 차지하기 위한 경쟁이 일어나게 된다. 공정한 경쟁을 통해 승부가 정해지면 경쟁률이 얼마나 치열 했는지와 상관없이 대부분 결과를 납득하고 승자는 정당성을 가지게 되지만 그 과정에 른 외압적인 요소가 첨가될때, 파이를 놏친 수많은 루저들은 불만을 품게된다. 과정이 공정하지 않다는것에서 대부분 문제가 발생된다. 원칙과 룰이 사라지면 경쟁은 모두가 승패를 인정하고 악수하는 스포츠에서 '룰이 없는게 룰'로 서로를 죽여야 하는 치킨게임 전쟁이 된다. 모두가 점점 괴물이 되어 갈수밖에 없다.


"돈도 실력이야, 돈없는 너희들 부모를 원망해"


몇년전 국가 전반을 뒤흔든 자의 승마 금메달 리스트 딸 입에서 나온 시대적 명언(?)이다.


'돈도 실력' 이라는 시대적 명언에 화답하듯 시대가 흘러 요즘 인기 드라마인 '작은 아씨들' (가난한 집안에서 자란 3자매의 정치 비자금 7백억 횡령기와 죽음을 담보로 받게되는 '특혜'에 관한 스릴러) 에서는 자매들간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착한데 무능한 부모와 부자인데 나쁜 부모 둘중 어떤게 나은데 ?"


" 부모가 무능한거 자체가 나쁜건데?"


아무리 자녀를 사랑하고 좋은 부모가 되려해도 힘없고 가난 하다는것 만으로도 현대의 자녀들은 부모를 나쁘다고 보며 원망 한다는 이야기다. 가진자들의 변칙과 특혜를 이미 기정 사실로 받아들여 인정 한다는 말로 전부는 아니어도 대부분 현대의 일반적 젊은 세대 감정은 그렇다.


집단 공정주의 vs 개인 경쟁사회


젊은이들 사이에 경쟁이 가장 치열한 분야가 연예인이다. 요즘은 청소년 열에 아홉은 연예인이 꿈이라고 대답한다. 경쟁률이 치열한만큼 가장 공정해야 할것 같지만 현실과 시스템그렇지 않다.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공정'은 다수가 합의한 룰에 따라 결정되는 사안이다. 수십년 군사정권 하에서는 모든 사회구조가 군대식으로 서열이 매겨지는것을 당연시 했고  대중 예술인들은 인기를 얻은 최상층만 빼고 대부분은 모두가 만류하던 춥고 배고프고 사회적으로 손가락질 받는 하층 직업군 이었다. '딴따라' 라고 천대받던 연예계도 마찬가지 였다. 배우들은 기생들처럼 권력의 노리개 취급받았고 대중가요는 조금만 가사가 권력의 비위에 안 아도 금지곡 처분을 받았다.


* 송창식의 ' 불러?' 도망가는 시위대를 잡으려는 ? 검문 검색하려는 군인들에게 반항한다는 ? 알수없는 이유로 금지곡이 됐다.


80년대말 탤런트 연예인들은 해당 방송국 소속 직원이었다. 험한 경쟁률을 뚫고 입사해서 년차를 기준으로 인기와 상관없이 근로기준법에 입각해 공식 책정된 공평(?)한 출연료받았고 가수들은 적자를 감수하고 음반 홍보를 위해 방송에 출연했다. 연예인은 방송을 타야 인기를 얻고 인기 따른 수입은 방송 출연료가 아닌 광고 섭외와 행사였다. 대중들에게 자신을 알릴수 있는 유일한 통로인 방송국이 절대 '갑' 이었고 가수 배우들은 방송국이 시키는대로 해야만 하는 힘없는 노동계급 '을' 에 속했다.


지금은 주연급 젊은 스타 배우들이 드라마 회당 억대 출연료를 받지만 그 시대에는 연이건 조연이건 몇장면에 등장하는지도 상관없이 기수에 따라 급을 나누고 출연료 지급이 일률적 이었던 지라 한컷 등장하는 가장 기수가 높은 노 배우 선배가 주연을 맡은 젊은 신인 배우보다 인기 역활 비중 상관없이 전관예우? 로 수십배 차이나는 많은 출연료를 챙겼다. (최장수 드라마 '전원일기' 에서 가장 출연료가 비싼 배우는 기수가 제일 면서 가끔 한컷등장해 방안에서 인사받고 허 ~ 하는 할아버지 역의 '최불암' 이다.)


무조건 기수에 따라 주연보다 반짝 한컷 나오는 조연이 출연료를 더 많이 받고 공헌도와 인기도 상관없이 년차에 따라 책정되는 일괄 출연료 지급 방식이 년차와 계급을 중시하는 단체적 관점에서는 나름 공정하다고 볼수도 있겠으나  개인 성취와 성과급으로 따지면 공정 하지않으므로 당연히 여러 부작용들이 이어진다. 나이 먹을수록 인기가 없을수록 가성비가 안 따르는 배우는 출연을 안 시키게 되고 인기도에 따른 빈익빈 부익부는 극대치로 몰린다. (반대로 해도 마찬가지다.)


군사정권이 종식되고 90년대 들어서면서 한국 연예계도 일본 미국등의 기업 엔터테인먼트 시스템을 벤치마킹 하기 시작한다. 인기가 곧 돈이되는  규칙과 룰이 없는 무한 경쟁이 자본주의가 주장하는 성공에 대한 '정의'다. 모두가 목적을 위해 수단과 룰이 무시되는 그것을 자본주의 경쟁의 새로운 '공정함' 이라 인식하기 시작했다. 


자본주의 논리에 따라 드라마도 효율적인 하청 외주제작이 점점 대세가 되고 방송국보다 인기 연예인을 데리고 있는 기획사 파워가 더 쎄지기 시작했다. 배우들 인기를 등에업은 외부 기획사들의 낙하산 꼽아넣기가 대부분 드라마 주연을 맡게되자 연예계는 인기 척도에 따라 서열과 법이 되는 치킨게임으로 재편되기 시작다. 연예계에서 대중들과의 유일한 통로를 쥐고있던 절대권력 '' 이었던 방송사가 ''이되고  아이돌 문화가 형성 되면서 어린 나이에 가수로 먼저 데뷔해 지명도를 얻고 탤런트로 전환해 연기력과는 별개로 드라마 주연 자리를 꿰차 특혜 케이스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자녀를 명문대에 보내고 스팩을 안겨주기 위한 특권층의 자녀교육을 다룬 드라마 '스카이캐슬'


기획사에서 미는 낙하산들이 모조리 드라마 주연과 조연을 꿰차게 되버리니 따로 매니저를 두지않고 수백대일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시험봐서 뽑힌 정식 탤런트 들은 연기자로 기회를 잡고 성공하는 길이 처음부터 막혀 버리게 된다. 아무런 출연기회 조차 잡지 못하고 엑스트라로 탤런트 연기자 생활을 접는 사람들이 대부분 이었다. 당연히 실력있는 배우들은 방송국 소속 탤런트를 기피하는 현상이 벌어졌고 기존  방송국의 직장인 연예인 양성 시스템은 군사정권의 몰락과 맞물려 순식간에 무너졌다.


시스템이 바뀌면 공정의 룰도 바뀌게 된다. 권력과 자본이 시스템을 만드는 이유는  도박에서 최대한 위험요소가 될만한 돌발변수를 없애기 위함이다. 자본과 권력은 계속해서 도박을 안정적인 시스템 안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새로운 체계를 만들어 낸다. 현재는 영화계도 원하는 것을 대중들이 보게 만드는 넷플릭스의 새로운 제작 시스템이 기존의 영화계 판도를 급속도로 바꾸는 중이다. 넷플릭스 시스템 안에선 열개중 하나만 성공해도 손해가 아니게 됨으로 립영화처럼 창작자의 권한과 자유가 최대한 보장되고 그만큼 다양한 시도가 가능해지는 장점이 있다.


단점은 흥행위주의 치열한 생존 경쟁이 사라지고 공장식 기획 제작에 따른 품질 (재미) 저하와 시청자들이 시스템이 제공하는 테두리 안에서만 볼것들을 골라야 하는 좁은 선택폭이다.  선택이 편리한만큼 넷플릭스가 보여주는 것만을 수동적으로 보게 된다. 과거 방송국이 가지고 있던 절대 '갑' 의 위치에 넷플릭스가 있게된다.  세계인들이 한순간에 '오징어 게임' 을 볼수있게 만드는 배급망의 힘을 넷플릭스라는 공룡이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지금의 대형 기획사 위주의 연예인 스타 양성 시스템은 기획사가 대중들을 통제하며 대중들이 원하는 스타를 만들어 공급해주인기를 자신들이 통제하는 시스템이다. 대중들의 통제는 엔터테인먼트 사업에서 도박성을 줄일수 있는 절대적 요소이다. 예능프로 들을 보면 알수있듯 대중들은 가짜 효과음을 넣어 지정하는 장면에서 웃으라면 웃고 탄식 하라면 탄식한다.


인간의 감정을 조정하는 약물을 죄수들 상대로 실험하는 내용 스파이더헤드


미디어도 그렇고 정치도 마찬가지다. 연예인들은 인기로 먹고 살고 정치인들은 지지율로 방송국은 시청률을 가장 중시하며 아무도 공익이나 사회적 공정(?) 따위를 중시하지 않은채 각자 원하는 파이를 얻기위해 사력을 다한다.


지금은 유투브가 전세계인 눈과 귀들을 장악한 시대라 관심을 끌수만 있다면 무슨짓이든 하는 개인 미디어 까지 가세해서 위에서 아래까지 각자 온갖 조작질을 해대도 마땅히 통제할 수단이 없는 난장판 상황이라 하겠다. 각종 비리가 드러나도 지지율만 오른다면 욕을 먹어도 지지자들만 믿고 온갖 미친짓을 해댄다.


집단주의가 내세우는 공정이 정치 정당이며 그 안에서 개인의 이익을 위해 룰없는 게임을 한다는것이 암묵적으로 모두가 합의한 현 시대의 공정(?)이다. 공정을 누가 만들어 내는가 누가 그것을 무너 뜨리는가 잘 관찰해보면 그것을 조정하는 핵심 주체가 보일것이다.


국가도 시스템에 의해 유지되며 그것을 올바르게 운영 하는것이 정치다. 위에서 하나가 고장나면 시스템 전체가 마비되고 법도 지켜지지 않으면 있으나 마나가 된다. 위에서 하나가 삐끗하면 줄줄이 어긋난 셔츠의 단추가 된다. 법을 지켜야 하는 주체부터 엉망이면 사법 시스템이 제대로 운영 될리가 없다.


이미 사상검증이 끝나고 퇴출 당했던 그들이 다시 집권, 국민들 품으로 돌아왔다.


언론과 미디어는 대중들을 통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언론과 미디어의 독립 수준은 항상 시대를 재단하는 직접적 도구가 된다.


독재는 항상 언론과 미디어의 통제를 필요로 한다. 대중들은 미디어가 웃으라면 웃고 화내라면 화를 낸다. 선거도 지금 결과를 보면 알수있듯 한쪽을  뽑으라면 뽑고 범죄는 이쪽이 저질렀어도 저쪽을 욕하라고 프래임을 짜주앵무새처럼 그대로 따라한다. 그런 대중들 의식수준 에서 '공정'이란 단어를 바란다는것 자체가 무리다.


언론 통제하고 탄압 하는 자들을 뽑으라고 국민들에게 강요한게 지난 대선때의 언론들 이었고 민중은 그런 언론들을 기래기 (기자+쓰래기)라 불렀다. 언론과 미디어를 지배하려 그들에게 대중들이 바라는 공정을 아무리 외쳐본들 그들에겐 개돼지들의 짖어댐과 다를바 없다. 미디어가 보여주는대로 그런줄 알면서도 범죄 카르텔에 속한 순사들에게 권력을 쥐어준것 역시 대중들 이기 때문이다. 쿠데타를 해도 전역해 버리면 보통사람이고 군사정권이 아니란 노태우식 궤변이 검찰 정권에도 그대로 통용 됐으며 국민 절반에겐 그 어린애 장난같은 논리가 여전히 먹힘을 증명하였다.


영화'내부자들'에서 언론이 남긴 명대사


https://v.daum.net/v/20221003121302643


커버가 불가능한 외교 망신 사태앞에서 언론도 뒤통수를 맞고 정국이 뭔짓을 저질러도 수습 불가의 엎질러진 물이 된것은 지금의 혼란한 정국이 벌어질것을 이미 대다국민들이 예견하고 알면서도 허용했기 때문이다. 절반의 국민들이 80년대 정치로 후진을 원하고 부패한 검찰 나리들과 전범들다시 나라를 다스려주길 원했다.  시국은 예상을 뛰어넘어 조작질이 주 업무였던 검찰 정권구태와 무능을 더 이상 증명할 길이 없다. 


지지율 열심히 분석하고 있어봤자 이미 사기로 판명되 망한 코인과 주식이 다시 살아날일은 극히 드물다. 부도난 코인 주식을 사라고 꼬드기고 주가를 올리려는 사람들의 목적은 언제나 한가지 뿐이다. 이미 사기당한 사람들 상대로 '손실보상' 이라는 명분하에  마지막 까지 욹어먹으려 하는 설겆이 '사기' 다. 잘하는것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뭔짓을 저질러도 잘하고 있다고 응답하는 지금 검찰 정권에 대한 지지율이 바로 그런것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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