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 해야는 될것 같고 길은 모르겠고 무엇을 해도 답답하고..“
십여년 알고지낸 친구에게서 뭔가 삶에 대한 돌파구에 대한 가르침을 청하는 진지한 청원이다. 내가 어떤 말을 해줘도 한귀로 흘려듣던 지난 세월 그럴싸한 데를 이리저리 기웃기웃 돌아다녀도 같은 자리를 맴도는 시간낭비 였음을 나이들어 갈수록 조금씩 알아간다. 박스안에 갖혀 있음을 알게된것만 으로도 일반인 평균보단 좀더 시야가 발전한 거다.
* 근래들어 야심한 밤에도 이런저런 잡담과 조언(?)을 듣고 싶어하는 오랜 친구들의 전화가 이어진다. 두명과 릴레이로 통화 하다보니 어느덧 4시간이 흐른다.
“너가 아직 바깥세상을 본적이 없어서 그래”
박스안에 갇혀 자란 아이는 바깥세상을 모른다. 나가 본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신이 갇혀 있다는것은 자각한 상태가 바로 친구가 처한 그런 상태다. 박스 안에는 수십개의 문이 나있고 그중 하나의 문을 통해 나가야 하는데 어떤 문을 선택해야 할지를 모르는것은 본인도 목적지를 모르기 때문이다. 불혹의 나이를 지나 지천명을 따라야할 시기임에도 아직 아이의 상태다.
스스로 가야할 목적지를 모르는 상태에서 어는 버스를 타야하는지 결정을 못내리겠는데 막차는 떠난다고 하고.. 이미 노선을 정하고 버스를 탄 주변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아이는 막차 시간 다되감에도 어디로 귀가해야 하는지 노선을 정하지 못하고 있다. 본인이 가야할곳을 모르니 이리저리 수십년을 터미널에서 빙글빙글 어느 버스를 탈지 겁나서 계속 문앞만 어슬렁 거리고 나이는 먹어가는데 뒤쳐짐에 마음만 조급하다.
우선적으로 고민해야 할것은 자신이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해야 가장 잘 맞고 행복할수 있는가? 존재의 성향과 정체성에 대한것을 스스로 확실히 자각해야만 자신에게 맞는 노선을 선택하고 스스로의 천국을 찾아갈수 있다. 내가 바라는 천국이 모두에게 맞는 천국은 아니다. 자신도 그러하다.
건달은 나이트 룸싸롱에 가서 술판을 벌려야 행복을 느낀다. 남의 천국에 정장 차려입고 따라가봤자 이태리말을 모르는데 VIP 석에서 관람하는 네시간 오페라 처럼 불편함만 가중된다. 각자의 천국을 향한 갈림이 곧 그런것이다.
두려움의 본질은 ‘모름’ 언노운(Unknown)이다.
가본적이 없는자의 지식과 맹목적 믿음은 아는것이 아니다. 중년의 나이에도 그러한데 자식세대 어린것들 한테 무엇을 보여주고 따르라 훈계할수 있을까? 부모가 때론 자식을 따라야함을 인정해야 할때도 있는거다. 하나의 성숙한 개체로서 자녀된 자의 자립 독립이란게 그런거라 성인된자의 기본이다.
성인이 되지 못한채 늙은 아이로만 살다가는 많은 이들이 갖는 최후의 감정이 ‘회한’ 과 ‘후회’다. 길을 모름에 그들이 갈구하는 행복은 ‘방황’ 이라 본다. 지나봐야 알게되고 그제서야 내말의 진실을 깨달아 알게 되니 대답은 항상 같음에도 십여년 세월이 지나 똑같은 질문을 다시 되묻는것이라.. 답변 역시 같은 말 이지만 귀담아 들을 마음가짐이 되었는지가 관건이다. 나이를 떠나 더이상 아이가 아니어야 한다는것을 받아들일 용기가 나약한 에고에겐 항상 쉽지가 않다. 경계선을 깨달아서 얻는 ‘깨우침’ 이란게 그러하다.
* 인간이 40대 시절에 지녀야할 기본 소양인 ‘불혹‘ 은 ‘아집’ 이 아닌 ‘깨우침’을 통해 얻게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