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에 대한 글을 쓰니 이틀후, 갑자기 36년만에 대학 동창모임이 집주변에서 열린다. 경기 남부쪽에서 모이던 모임이 갑자기 (한 멤버의 사정으로) 경기 북부 집근처로 잡혀 어찌어찌 참석했다. 말도 글도 역시 조심조심 이다.
과거와 현재를 동시에 보게 되는것이 옛 인연들이다. 20대 청춘이었던 그때는 현재의 50대 자신의 모습들을 상상도 못했을것이다. 말년이 어떻게 변할지 또한 누구도 알수없다. 공감대 별로 모이고 각자 자신이 어떤 노선을 걷고 있는가 서로 확인할수 있는 자리가 옛 친구들간의 친목 사교다. 중년은 의리 우정으로 어울려도 섣불리 남의길 따라 나서지 않고 끌려 들지도 않는다. 옳던 그르던 주관이라는것이 각자 서있다.
20대 청춘 다들 사랑의 열병들을 앓았고 알콩 하면 알아서 달콩해주던 그 역사들을 서로가 다 알고 있다. 지금와서 보니 (나를 포함해) 당시 연애 커플중 제대로 메이드 된 커플은 한 커플도 없다. 학창시절 연애질들은 전부 각자의 뇌리에 흔적만 남았다. 보통 좋은 기억을 추억이라 하는데 글쎄..
과거와 현재를 동시에 바라볼때 미래 또한 느껴진다. 흐름이 감지되기 때문이다. 행로는 제각각이나 인품이나 본성이 환경이나 나이에 의해 변하지 않는다는것을 확인할수 있다.
주말 모처럼 방문한 오랜 친구와 돈코츠 라멘을 먹고 소화시킬겸 극장을 찾아 범죄도시4 영화를 보다. 선택권 같은건 없다. 상영관 거의 전부를 범죄도시가 차지했기에 아무때나 가도 볼수있고 대신 꼭 극장서 보리라 맘먹고 실행을 미루던 고질라는 퇴출되서 OTT 올라오기만 기다려야 한다. ㅠ
‘범죄도시4’ 는 온라인 카지노 그리고 가상화폐 상장을 둘러싼 범죄단을 소재로 잡았다. 모두가 악이 주도하는 놀이터 라는것을 알고있고 범죄 라는것을 알고 있음에도 빠져드는것이 ‘도박’ 이다. 국민들 대부분이 도박 부동산 투기등에 빠져있고 국가가 장려한다면 그건 완벽한 망조다.
몇센트 가치도 없던 가상화폐 비트코인이 일억을 돌파하는 상황을 지켜본 사람들의 예측은 극으로 갈린다. 원래대로 제로로 환원한다는 쪽과 더 올라 백억이 될거라는 주장, 대박이냐 쪽박이냐 도박이다. 관심없거나 판 사람들은 주로 전자고 샀거나 사려는 사람은 후자다.
시간의 흐름속에서 각자 보고 들었던 단편단편의 조각들을 이어 부치며 하나의 흐름을 발견하기 까지.. 그 맥을 잡을수 있는 적정 연령층이 중년대다.
삶이 아직 청춘시절 처럼 갈팡질팡 도박속에 놓여있다고 한다면 중년에 꼭 얻었어야 할 기본 소양인 ‘불혹’과 ‘지천명’에 대해 아무런 소득이 없음을 말하는것이고 계속 철부지 상태속에 놓여 있다는 의미다. 그 흐름의 맥을 발견하는것이 곧 스스로의 처지에 대한 자각 이다.
중년은 감성보다는 이성이 살아남았고 부모로서 칭얼대는 아이들을 겪었고 청춘의 틀을 벗어난 성인으로서 완숙한 절정의 상태이다. 곧 노년을 준비해야 하고 미래에 대한 흐름을 바로 잡아야 무사히 삶에대한 완주 마무리를 한다.
마음만은 항상 청춘인것은 90세가 넘어도 마찬가지다. (노부모를 보면 알수있다.) 그러나 마음이 지천명과 닿지 않으면 불편하고 끌리지 않는것이 중년 이어야 한다.
현재의 나는 어디로 향하는 과정인가? 결실 열매로 수확을 기다리느냐 또는 시들고 썩어서 결국 버려질 찌꺼기냐 전후 맥락 흐름을 볼수 있는것도 그에 따른다. 중년의 위기란것이 정확하게 그 지점에 도달해 서 있음이다.
가난한자 부자, 강자와 약자, 빈부를 떠나 중년에 지천명을 따르지 않는다는것은 참으로 고달픈 일이다. 번뇌만이 가득하다. 살아온 세월이 있는데 다들 몰라서 그렇다는 변명들이 참으로 어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