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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Ah Jul 13. 2024

영혼(靈魂)의 ‘가치’

영혼을 전부 끌어와 내다 판다는 유행의 끝에서..


 ‘영끌 (영혼까지 끌어땡김.)‘ 이란 단어가 주식 가상화폐 아파트에 대한 투기 집착을 표현하는 상투어가 됐다. 그야말로 영혼까지 저당잡혀 아파트를 얻겠다 라는 시대적 유행어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저당 잡혀야 할만큼 절박한 상황이란 죽음의 문앞 에서나 어느정도 정상참작이 이해된다. 빚내서 가상화폐 아파트 투기를 기본 생존권이라 할수는 없고 사람들이 말하는 영끌이란 불가항력이 아닌 자발적 욕망이 선택한 도박을 의미한다. 투기 도박에 빠지면 이익을 얻거나 손해보거나 상관없이 생활과 영혼이 빨려 들어 간다는것이 문제다.


영혼(靈魂)

육체 속에 깃들어 생명을 부여하고 마음을 움직인다고 여겨지는 무형의 실체


영혼(靈魂)을 명칭함에 있어서 정확한 뜻을 구분해 쓰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대부분은 진심을 영혼이란 의미로 두루뭉실 사용한다. 사람에 따라 ‘얼’을 의미하기도 하고 ‘진아’ 를 의미 하기도 한다. 어떤 의도로 사용하건 껍데기가 아닌 자신의 실체를 가리키는 용어가 영혼이다.


현대인들은 영혼을 자각한적이 없기에 아무런 가치가 없는 전설의 고향에 등장하는 배역 쯤으로 안다. 말세기 사회 풍토가 그러해서 다들 집단의식에 기대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의 영혼들이 불편하다 앞다퉈 내던진다. 껍데기들인 에고가 저지르는 아주 못된짓인데 과거는 악인들이 그러했지만 지금은 자신과 평범한 이웃들 대다수가 그러하다. 얼이 빠져나가도 배부르고 돈좀 쥐고 있음 아무런 아쉬움이 없다.



‘악마에게 영혼을 판다‘


현대의 한국인들에겐 영혼을 내다파는 행위가 대수롭지 않은 일이다. 소원만 들어준다면 악마를 악이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심지어 악마가 정의가 돼고 로멘스의 주인공 조차 ‘악마’ 다. 인기를 끌기위해 별짓 다하는 유투버들 처럼 돈을 준다면 못할짓이 없다.


양심을 아무렇지도 않게 저버리는 행위가 곧 영혼을 내다파는 짓들이다. 대부분 장사꾼들이 그러하고 사업자가 그러하고 공무원들이 그러하니 나라꼴이 기관이다. 도둑놈 아닌자 찾기가 더 힘들다.



 악이 장악한 세상에서 다들 자신이 선한 피해자라고 착각 하게 만드는 것이 현대인들이 악마에게 홀린 최면이다.


” 남들도 다 하잖아 남들도 그래 너만 그런게 아냐 죄책감 같은거 가질필요 없는거야“


경쟁에서 낙오됨과 유행에 뒤쳐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자극하며 끊임없이 양심을 버리라 내면에서 속삭인다. 자신보다 더한자를 기준으로 스스로는 적당하다고 위안삼는다. 전쟁에서 오십보 도망간 병사가 백보 도망간 사람들에 비해 자신이 훨씬 용기 있다고 떳떳히 주장하고 다들 자신은 선량한 시민이자 피해자라 항변한다. 행동과 다른 판단에 계속 모순속을 헤맬수밖에 없다. 그런자들이 모여서 민주주의라고 투표한다고 나서니 나라꼴도 이 모양 되는거다. (민주의 최전방 이라는 미국은 트럼프 재등장에 남북전쟁 다시 터질지도 모른다.)


갈리는 길목에선 방향만 틀어도 편이 정해진다. 줏대없이 어정쩡한 위치를 대부분 중도라고 생각하는데 모든것을 결산하는 말세기엔 무관심 영역의 떨거지들 무리가 된다. 도매급으로 쓸려간다.



기본 생존권이란 모든 생명체가 생존할수 있는 최소의 권리를 말한다. 악에 굴복하게 만드는 대부분의 원인이 금전적 어려움 때문이다. 돈이 많으면 삶에서 즐거움이 많아지고 부족할수록 쪼그라들고 움추러 든다. 가난은 영혼의 무게를 더욱 가중 시킨다. 생활고’ 와의 전쟁에서 악마의 유혹에 굴복 당하지 않는다면 그야말로 사육신 생육신의 삶이다. 그만큼 주변이 온통 엉망이된 말세기엔 나홀로 정도를 지키기가 쉽지 않다. 자본주의 논리가 더욱 이탈을 부추긴다. 선택권이 없을땐 다들 올바른척 꾸미지만 대부분 선택권이 주어지면 이익앞에선 말과 행동이 달라진다.


* 권력의 하수인으로 깐죽대던 인사를 처음부터 (이미지상 전혀 안 어울리는)삼국지의 여포로 줄곧 비유했던 나의말이 무엇을 말한건지 여당 전당대회와 문자파동을 보며 이제 사람들은 이해했을 것이다. (용맹한 장수였던 여포를 촉살맞음에 빗댄것이 아니다.) 권력과 한몸처럼 당장은 충견 행세를 하고 있어도 조건이 충족되면 결국 동탁과 여포의 관계가 될것임을 진작에 알았기 때문이다.


거대한 악마의 유혹과 공격앞에서 자신의 영혼을 지켜내려면 영혼의 가치에 대한 인지능력과 확신을 가져야만 버팀이 가능하다. 그 의미를 찾는것이 수행이고 영성 공부다. 눈앞의 이익을 추구하지 않음에 주변에서 온통 멍청하다 어리석다 온갖 참견과 조롱을 무시할만한 내공이 있어야 하고 잡스런 장난질에 솔깃해 끌려가지 않을만한 충분한 사리판단 인지능력을 가져야 한다.



” 당신의 영혼은 (부와 아파트) 그 이상의 가치가 있(없)다.“


껍데기들이 설치는 세상에서 영혼이 인간들에게 아무런 가치가 매겨지지 않고 당연한 말도 어리석다는 손가락질과 조롱의 대상이 되는것이 말세의 풍경이다.


설득이 먹히지 않음으로 무의미한 말장난 시도는 안하는것이 낫다. 스스로도 가치를 자각하지 못한다면 외부의 조롱을 참아내지 못하고 휘둘리거나 자책에 휘말린다. 영혼의 가치를 아는자 누군가? 아무리 힘들고 바보스럽다 사회적으로 구박 당할지라도 내가 나를 버릴수 없는 극 소수만이 영혼의 주인으로 남는다.


https://youtu.be/-nkbHMuIKnM?si=hcltfu9HSvEsSn9T

반복되는 좁은 틀안에서도 자격이 그대를 자유롭게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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