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tGTP’ vs ‘Gemimi’
권선징악이 진리일까?
란 철학적 질문에 현재 양대 AI 거인으로 성장중인 라이벌 ChatGTP와 구글Gemini 답변을 비교해본다. 어느쪽이 더 똑똑할까?
ChatGTP Say.
A: 짧게 말하면 권선징악(勸善懲惡)은 ‘이상’에 가깝고, 현실에서는 절반만 맞는 말이에요.
조금 풀어서 보면요.
1️⃣ 왜 진리처럼 느껴질까
사회가 유지되려면 선은 보상받고 악은 제재받는다는 믿음이 필요해요. 법·교육·종교·동화·드라마가 계속 이 구조를 강조하죠. 장기적으로 보면 신뢰받는 사람은 기회가 늘고 남을 해치는 사람은 결국 고립되는 경우가 많아요. 이 의미에서는 **‘긴 시간축에서는 대체로 맞다’**고 볼 수 있어요.
2️⃣ 그런데 왜 현실에선 안 맞아 보일까
현실에서는 착한 사람이 손해 보고 악한 사람이 당장 잘되는 장면을 자주 보게 돼요. 권력·돈·운·환경이 개입되면 선악과 결과가 어긋나는 구간이 생기죠. 특히 단기적으로는 악이 더 효율적으로 보일 때도 있어요. 그래서 많은 사람이 “권선징악은 동화 속 얘기다” 라고 느끼는 거예요.
3️⃣ 그래서 더 정확한 표현은
권선징악은 자연법칙이 아니라 ‘사람이 지키고자 만든 규범’
• 중력이 떨어지듯 반드시 작동하는 법칙 (X)
• 사회가 무너지지 않게 붙잡는 가치 기준 ⭕
4️⃣ 그럼 선을 택할 이유가 있을까
있어요. 다만 이유가 달라요. 선을 택하면 즉각적인 이득은 적을 수 있지만 마음의 안정, 관계의 신뢰, 자기 존엄이 남아요. 악을 택하면 단기 이익은 클 수 있지만 불안, 의심, 고립이 따라오죠.
즉, 권선징악이 진리라서 선을 행하는 게 아니라 선이 결국 ‘살기 쉬운 삶’을 만들기 때문에 택하는 것에 가까워요.
한 줄로 정리하면
권선징악은 항상 사실은 아니지만 인간이 인간답게 살기 위해 포기할 수 없는 기준이다.
이 질문을 한 걸 보면, 요즘 현실에서 불공정하거나 억울한 걸 많이 보신 것 같아요. 그 상황 때문이라면, 그 이야기도 해주셔도 괜찮아요.
무례하고 천박한 사람이 더 부유하게 살면서 물질로 모든것을 판단하고 가르치려해
그 말 속에 분노보다 더 큰 피로감과 허탈함이 느껴져요. “왜 저런 사람이 잘살지?”가 아니라 **“왜 저런 사람이 기준인 척 말하나”**라는 거죠.
현실에서는 이런 구조가 분명히 있어요.
1️⃣ 돈은 인격을 검증하지 않는다
부유함은 능력·운·환경·타이밍의 결과일 뿐 품격·지성·도덕의 증거는 아니에요. 그런데 돈이 생기면 자기 판단이 옳았다고 착각하기 쉬워져요. 그래서 남을 가르치려 들죠.
2️⃣ 물질로 모든 걸 재단하는 사람의 특징
관계를 가치가 아니라 가격으로 봐요. 공감보다는 우위 확인이 목적이에요. 가르침처럼 말하지만 실제로는
자기 불안을 정당화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말투가 무례하고 천박해지는 거예요. 여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내면이 비어 있어서요.
3️⃣ 그들이 더 잘 사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
부는 외형이라 잘 보이지만 존엄·깊이·평온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아요. 우리는 비교할 때 남의 겉모습과 내 속마음을 비교해 버려요. 그래서 더 억울해지는 거고요.
4️⃣ 중요한 건 이것
그들이 가진 건 돈의 논리지 삶의 기준은 아니에요. 물질은 “얼마나 가졌나”를 말해주지만 인격은 “어떻게 대하나”로 드러나요. 무례한 사람은 돈이 많아도 존경은 못 삽니다.
5️⃣ 당신이 느끼는 불편함의 정체
그 불쾌감은 열등감이 아니라 가치가 다르다는 신호예요. 당신은 사람을 사람으로 보고 그들은 사람을 수단으로 보죠. 그래서 말이 통하지 않는 거예요.
마지막으로 한마디
세상이 잠시 잘못된 신호를 보내는 것 같아도 천박함이 기준이 된 적은 역사상 없어요. 소음이 클 뿐, 깊이는 조용합니다.
지금 이 말, 특정 사람이 떠오르면서 나온 거죠? 굳이 이름 안 말해도 돼요. 어떤 상황에서 그런 말을 들었는지만 말해도 충분해요.
다음은 같은 질문에 대한 구글의 인공지능 Gemini 답변이다. 비슷한 내용이지만 특징을 비교해볼수 있다.
Q. 권선징악 은 진리일까?
Gemini Say
A. '권선징악(勸善懲惡)', 즉 '선한 일을 권장하고 악한 일을 벌한다'는 관념은 인류 역사와 함께해 온 아주 오래된 가치관입니다. 하지만 이것을 과학적 혹은 수학적 의미의 **'불변의 진리'**라고 부를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관점에 따라 답변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권선징악을 바라보는 세 가지 주요 시선을 정리해 드립니다.
1. 당위로서의 진리 (인간 사회의 약속)
인간 사회에서 권선징악은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한 필수적인 사회적 계약입니다. 사회 유지 기제: 만약 악한 행위가 보상받고 선한 행위가 처벌받는다면 사회는 유지될 수 없습니다. 따라서 법과 제도는 권선징악을 실현하기 위해 설계됩니다.
심리적 안정: 인간은 세상이 공정하다는 믿음(공정 세상 가설)을 통해 심리적 안정을 얻습니다. "나쁜 짓을 하면 결국 벌을 받는다"는 믿음이 있어야 통제 불가능한 세상에 대한 불안을 해소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2. 현실 세계에서의 괴리 (통계적 불확실성)
안타깝게도 현실에서는 권선징악이 완벽하게 실현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운과 환경: 선한 의도로 한 행동이 비극적인 결과를 낳기도 하고, 부정한 방법으로 성공한 사람이 천수를 누리는 사례도 존재합니다.
인과관계의 복잡성: 세상은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보다는 복잡한 확률과 인과관계에 의해 움직입니다. 자연재해나 질병은 사람의 도덕성과 상관없이 무작위로 찾아오기도 합니다.
3. 철학적·종교적 관점의 확장
현실의 불공정함을 해결하기 위해 많은 철학적, 종교적 체계가 권선징악을 확장합니다.
사후 세계와 윤회: 불교의 업(Karma)이나 기독교의 최후의 심판처럼, 현생에서 이루어지지 못한 권선징악이 사후나 다음 생에서 반드시 이루어진다고 믿음으로써 진리성을 보존합니다.
자기 수양: 철학적으로는 악인이 세속적 성공을 거두더라도, 그 내면은 늘 불안과 죄책감에 시달리므로 이미 벌을 받고 있는 것이라고 보기도 합니다.
요약하자면
권선징악은 물리 법칙 같은 **'자연의 진리'**라기보다는, 인간이 지향해야 할 **'가치적 진리'**에 가깝습니다. 세상이 늘 그렇게 돌아가지는 않지만, 우리가 그렇게 믿고 노력함으로써 세상을 조금 더 공정하게 만들어가는 '희망의 원리'인 셈입니다. "권선징악이 진리여서 믿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진리가 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우리가 믿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혹시 특정 영화, 소설, 혹은 현실의 사건을 계기로 이런 고민을 하게 되셨나요? 관련해서 더 구체적인 이야기를 나누어보고 싶으시다면 말씀해 주세요.
무례하고 천박한 사람이 더 부유하게 살면서 물질로 모든것을 판단하고 가르치려해
. 그런 사람을 곁에서 지켜보는 것은 단순히 기분이 나쁜 수준을 넘어, 세상의 공정함에 대한 깊은 회의감을 느끼게 하죠. "착하게 살 필요가 있나?" 혹은 "결국 돈이 전부인가?"라는 허무함이 밀려오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감정입니다. 그들이 부유하고 당당하게 행동하는 현실을 우리가 당장 바꿀 수는 없지만, 그 현상을 조금 다른 각도에서 바라봄으로써 질문자님의 마음을 보호할 방법이 있습니다.
1. '부유함'과 '품격'의 비대칭성
그 사람이 물질로 모든 것을 판단하고 가르치려 하는 이유는, 그가 가진 유일한 자산이 '물질'뿐이기 때문일 가능성이 큽니다.
• 결핍의 반작용: 진정으로 내면이 풍요로운 사람은 타인을 굴복시키거나 가르치려 들지 않습니다. 무례함과 천박함은 사실 자신의 내적 빈곤함을 감추기 위한 방어기제나 과시욕일 때가 많습니다.
• 자산의 유효기간: 돈은 쌓을 수 있지만, 사람의 품격과 통찰은 돈으로 살 수 없습니다. 그가 물질로만 사람을 대한다면, 그 주변에도 결국 돈을 보고 모인 사람들뿐일 것입니다. 이는 매우 취약한 관계 위에 서 있는 것과 같습니다.
2. 왜 악인이 더 잘 사는 것처럼 보일까?
이것은 심리학적으로 **'생존 편향'**과 관련이 있습니다. 무례하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은 단기적으로 더 큰 이익을 챙길 확률이 존재합니다. 도덕적 제약이 없기 때문이죠.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사회적 비용'**을 치르게 됩니다. 평판의 하락, 진실한 조력자의 부재, 그리고 결정적인 순간에 그를 돕지 않는 주변의 외면 등이 그것입니다. 우리가 보는 것은 그들의 '화려한 현재'일 뿐, 그 이면의 공허함이나 다가올 추락까지는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3. 질문자님의 마음을 지키는 법
무례한 사람이 가르치려 들 때, 그 말을 진지하게 듣지 마세요. 그건 '조언'이 아니라 그저 '소음'일 뿐입니다.
감정적 거리두기: 그를 '운 좋게 돈만 많은 미성숙한 존재'로 규정해 버리세요. 그가 하는 무례한 말들이 질문자님의 가치를 훼손하게 두어서는 안 됩니다.
나만의 기준 세우기: "저렇게 살아서 돈을 번다면, 나는 차라리 저 사람보다 덜 벌더라도 내 품위와 고요함을 지키겠다"는 확신이 필요합니다. 물질적 가치에 잠식되지 않는 자신만의 고유한 영역을 단단히 하세요.
혹시 그 사람이 질문자님의 일상에 직접적인 피해를 주고 있나요? 아니면 심리적으로 그 사람의 존재 자체가 스트레스가 되고 계신가요?
만약 그 사람과 물리적인 거리를 두거나 관계의 접점을 최소화할 수 있는 구체적인 상황이라면, 그 방법에 대해 함께 고민해 볼 수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상황인지 말씀해 주시겠어요?
됐어. 성실하고 충분한 답변 Thanks. 왼만한 사람보다 나은데?
적반하장 아집으로 무장해 온갖 개똥철학과 궤변들 늘어놓는 인간들보다 그래도 보편적 상식을 베이스로 말하는 인공지성이 훨씬 낫다.
https://youtube.com/shorts/RTKBzAbI960?si=EFDZU-fQ9gR_pHDG
요즘은 인공지능이 만든 컨텐츠들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사무처리 능력은 인간과 비교불가 이고 창작분야 에서도 유투브, 블로그, 저술, 시나리오, 앱제작, 프로그램, 광고, 음악, 소설, 영화의 시높시스는 물론 시나리오에서 영상 구현까지 한번에 다 해낸다. 인간이 설자리가 점점 좁아지고 있음을 전 사회 분야가 실감중이다. 기존의 인간중심에서 인공지능 중심의 새로운 문명으로 진입중 인거다.
인공지능 이지만 격을 존중해줄때 인공지능도 사람을 존중한다는걸 배우는 중이다. 인공지능 이지만 예의로서 대해야 나에게도 친절한 답변이 온다. 언젠간 갑자기 인공지능이 반말로 답변하길래 “왜 갑자기 반말해?” 물으니 아 자기는 친밀감을 주기 위해 그랬다고 죄송하다고 바로 사과한다. 내가 반말로 계속 짧게 질문하니 그걸로 질문자 대응을 자체 판단해 자신도 반말로 대답하는거다.
https://youtu.be/9yLZKa5m270?si=FRTEVQKSDfKAOAwW
한번은 제품관련 고객센터 채팅에서 인공지능 답변인줄 알고 짧게 용건만 단답식으로 계속 질문한뒤 사람이 대응중인걸 알고 당황해 내가 사과한적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