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에 **〈레드 제플린의 탄생〉**이라는 다큐멘터리가 올라왔다. 제목 그대로 이 작품은, 레드 제플린이 세계적인 명성을 얻기 직전, 정확히는 1969년 2집이 만들어지던 순간까지만을 다룬다. 팬들이 알고 있는 레드 제플린의 전설과 역사는 이 다큐가 멈춘 지점 이후부터 본격 시작된다. 그래서 다큐 제목이 ‘탄생‘ 으로 전설이 시작되기 전까지의 비하인드 스토리다.
세월이 흘러 멤버들 모두 노년이 되었고, 한때 유행처럼 이어졌던 컴백과 재결합 콘서트의 시간도 지나갔다. 이제서야 전설로만 추앙해왔던 그 시절의 기억들을, 추억이 아닌 역사로 다시 재검토 중이다.
락에 관심없는 대다수 한국 사람들에게 레드 제플린은70년대 초 ‘Stairway to Heaven’ 을 부른 옛날 락밴드 정도로만 인식된다.
https://youtu.be/zu8THoRRZW0?si=jlfC8yYSGofiIFUM
근래 들어 3집(1970)의 라이센스 첫 타이틀곡 **‘Immigrant Song’**이 각종 CF와 마블 영화 **〈토르〉**의 상징적인 음악처럼 사용되며 다시금 각인되고 있다. (원판은 세번째 곡인데 국내 레코드사가 금지곡인명곡 Since I been Loving you 를 삭제하고 순서를 재편집했다.)
3집은 주술적인 분위기의 보컬과 강렬한 에너지를 지니면서도 2집에 이어 대중성까지 확보한 작품으로 LP 앨범 디자인도 더블 이중으로 안에 그림들이 돌아가는 장난감 처럼 만들어졌다. 1970년에 녹음된 음반임에도 불구하고, 60년이 다되가는 지금 들어도 전혀 세월의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현대 SF 영화 OST로 쓰이는 이 곡이 발표된 당시엔 얼마나 경이롭고 획기적인 사운드 혁명이었는지를 새삼 실감하게 된다.
레드 제플린은 비틀즈가 대중화시킨 록앤롤 이후, 그 다음 세대의 음악인 (디스토션이 주가되는) 하드록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탄생시킨 핵심 주역이다. 이는 80년대 잉베이 말름스틴이 군림하던 클래시컬 메탈 중심의 흐름을, 보다 거칠고 공격적인 트래시 메탈로 전환시키며 메인스트림을 재편한 **메탈리카(Metallica)**의 등장과도 닮아 있다.
당시 하드록 씬은 레드 제플린과 딥 퍼플이라는 두 개의 거대한 축을 중심으로 돌아갔고, “누가 더 시끄러운 밴드인가”라는 경쟁이 자연스럽게 따라붙었다. 같은 하드록이라는 뿌리를 공유했지만, 두 밴드의 성향은 분명히 달랐다. 이는 90년대 한국 아이돌 팬덤이 H.O.T와 젝스키스로 나뉘었던 구도와도 비슷하다.
딥 퍼플이 보다 직관적이고 대중적인 하드록 밴드였다면, 레드 제플린은 흑인 소울과 블루스를 기반으로 한 주술적이고 신비주의적인 색채를 두른 실험적 예술을추구하는 밴드였다. 이런 차이 때문에 흑인 소울의 정서와 감성 코드가 상대적으로 낯설었던 한국에서는, ‘Stairway to Heaven’ 한 곡만이 강하게 소비되었고, 밴드로서는 ‘Smoke on the Water’, **‘Highway Star’**를 앞세운 딥 퍼플이 더 높은 대중적 인기를 누렸다.
다큐를 보면 지미 페이지는 레드 제플린의 데뷔 앨범을 (강변집을 밴드 연습실로 장만해) 데모가 아닌 자비로 제작하고, 음반사가 음악과 밴드활동에 일절 간섭하지 않는다는 파격적인 조건의 계약을 맺은 뒤 데뷔한다. 데뷔때부터 싱글을 내지 않고 앨범만 발매한다는 조건도 달았다. (레드 제플린은 락그룹중에선 거의 유일하게 철저히 앨범을 하나의 마스터피스로 삼은 그룹이다. )
*라디오에서도 싱글이 아닌 앨범 전체를 하나의 스토리텔링으로 전곡 순서대로 틀어주기를 주문했던 지미 페이지가 한국 레코드사의 검열 난도질을 당시 알았다면 어떤 행동을 했을까.. 당시엔 한국이란 나라 존재 자체를 몰랐거나 락음악 금지국가로 관심밖 이었을 거다.
멤버들 모두가 이미 세션 뮤지션으로 일찌감치 자리잡은 상태에서 결성된 밴드였기에, 레드 제플린은 시작부터 이례적인 자유와 권한을 지닌, 말 그대로 ‘귀족 밴드’였다. (다른 밴드들 데뷔와는 달리 처음부터 마스터링 앨범을 들고 레코드사와 갑으로 계약, 무명의 헝그리 시절이 없다.)
팬들과 음악 매거진은 끊임없이 딮퍼플과 비교하며 논쟁을 이어갔다. 딮퍼플의 리치 블랙모어와 레드 제플린의 지미 페이지 중 누가 최고의 기타리스트인가, 이안 길런과 로버트 플랜트 중 누가 더 위대한 록 보컬인가를 두고 팬들끼리 설전이 벌어졌고, 심지어 하드록이라는 신생 장르 안에서 어느 밴드가 더 ‘시끄러운가’를 데시벨(db) 수치로 겨루는 논쟁까지 등장했다. (잉베이 등장이후 누가 더 빠른 속주를 하는가 스피드 경쟁과 같은 맥락이다.) 이는 하드록이 보다 극단적인 파열음을 추구하는 헤비 메탈로 진화하기 이전의 풍경이었다. (다큐를 보면 작은 강당 공연에서 아이들이 난생 처음 겪어보는 디스토션 데시벨에 귀를 막는 장면들이 담겨있다.)
https://youtu.be/1t4KLOm7pO0?si=JSw9OwO71UijTFWc
레드 제플린과 나의 십대 시절은 마치 하나의 기억처럼 단단히 엮여 있다. 아웃사이더를 자처하던, 전형적인 중2병 환자였던 나는 철저한 레드 제플린 광신도였다. 팬이라는 말로는 부족했고, 지금 돌이켜보면 ‘빠’라 불릴 만큼의 추종자에 가까웠다.
* 레드 제플린 다음으론 프로그래시브 그룹 핑크 플로이드 광빠가 됐고 고3부터 팻 매트니를 통해 재즈로 관심을 옮겨갔기 때문에 레드 제플린은 나의 중3과 고1시절 2년간의 추억들을 대변한다..
1970년대 후반에서 80년대 초반의 한국은 록 음악의 불모지나 다름없었다. 대부분의 음반은 ‘빽판’이라 불리던 해적판으로 접할 수밖에 없었고, 일부 유명 밴드의 앨범만이 간신히 정식 라이선스로 발매되었다. 그마저도 금지곡은 여지없이 잘려 나갔고, 마지막 트랙에는 의무적으로 ‘건전가요’—대개는 「시장에 가면」 같은 곡—가 끼어들어 앨범의 감상 분위기를 산산이 깨뜨리곤 했다.
* 70년대 한국은 군사정권 아래서 장발을 단속했으며 반항의 상징인 락을 퇴폐문화로 규정, 가사중 한 단어만 사회비판적 이거나 우울해도 금지곡으로 지정했다. 퀸의 명곡 ‘보헤미안 랩소디‘ 도 당시엔 금지곡 이어서 몰래 해적판으로 들어야 했다.
그런 환경 속에서도 나는 레드 제플린의 라이선스 LP와 카세트테이프를 사모으며 묘한 자부심을 느꼈다. 그리고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미국에서 살다온 한 친구를 알게됐는데 레드 제플린의 열성적인 추종자였다, 그 친구를 통해 한국에서 접할수 없었던 사진과 포스터, 전설적 영웅담과 오리지널 LP들을 카세트 테이프에 복사해 들으며 나는 단순한 애호가를 넘어, 본격적인 레드 제플린 광신도가 되었다. 레드 제플린 전 앨범과 지미 페이지 세션시절 음반과 야드버즈 음반들, 멤버 이름이 들어가는 모든 공식 비공식 라이브 음반 자료들까지 사모았다.
라이브에서 지미 페이지는 긴 머리로 얼굴을 가린 채 바이올린 활을 쥐고 한 곡을 30분 가까이 신들린 듯 연주했고, 로버트 플랜트는 무당처럼 신음과 괴성을 내질러 관객들을 끈적한 주술의 현장으로 끌어들였다. 관객이 녹음한 비공인 라이브 음반들도 간혹 해적판으로 유통 되었는데, 음질은 (연주 소리보다 녹음자 주변 박수소리가 더큰) 조악한 관중석 사운드 였음에도 내게는 보물과 다름없었다.
레드 제플린이 전설로 남은 이유 중 하나는, 데뷔부터 해체에 이르기까지 단 한 번의 멤버 교체도 없었다는 점이다. 레드 제플린의 음악은 네 명 중 단 한 사람만 빠져도 성립될 수 없는, 철저한 ‘완전체’였다. 그래서 드러머 존 본햄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자, 멤버들은 그의 마지막 유작인 **〈Coda〉**를 끝으로 최정상의 자리에서 해체를 선택한다.
https://youtu.be/PD-MdiUm1_Y?si=XgSQGkR6UmJvuepj
그렇게 레드 제플린은 영원한 전설로 박제되는 듯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노년에 접어든 멤버들은 오랫동안 유지해왔던 신비주의를 내려놓고 재결합과 공개 활동을 통해 다시 팬들 앞에 섰다. 이는 단순한 컴백이 아니라, 시간을 건너온 대화에 가까웠다.
ABBA가 노년에 다시 무대에 섰고, 록의 르네상스를 이끌었던 딥 퍼플과 롤링 스톤스가 여전히 활동을 이어오듯, 이제 하드락의 왕좌로 군림했던 레드 제플린 역시 팬들과 같은 자리에서 옛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한 것이다. 넷플릭스의 **〈레드 제플린의 탄생〉**은 그 대화의 첫 장처럼 느껴진다. 팬들에게 진짜 역사는, 그 이후의 시간에 더 많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전설은 멈췄지만, 나의 10대 후반을 장악했던 그 때의 기억을 넷플릭스 다큐를 보며 다시 소환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