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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Ah Jan 27. 2017

삶과 죽음의 경계선 산책하기..

삶과 죽음, 의지로 선택할수 있는 삶..


2017. 1. 27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서 어정쩡하게 쭈삣 거린지도 반년 이상이 지났다. 엄청난 양의 피를 쏟고 병원을 찾게된 2016년 7월달을 기점으로 내 인생은 누구도 생각지 못했던 완전히 다른 궤도로 진입하기 시작했다.


젊은시절 내내 식사대신 술과 고기 인스턴트로만 끼니를 때우면서 자유분방 지독한 알콜홀릭과 꼴초로 몸을 학대(?) 하는 삶이었던것 같다. 수십년간 스스로 몸의 자연회복 체계에는 자신이 있어서 몸이 내보내는 이상 신호들을 무시 하다보니 어느덧 육체가 자연회복의 임계치를 넘어가 몸이 '죽겠노라' 갑작스례 선언을 해버렸다. 믿었던 몸의 자율정화 체계가 완전히 망가졌음을 장폐색 증상으로 피를 양동이로 쏟아내고 쓰러지면서 그제서야 알아차렸으니 미련도 나같은 미련둥이가 없다.


어찌보면 그 흔한 대장암... 나에게도 그런것이 찾아오다니 아프면서도 신기하기만 하다.  발견할 당시 종양이 이미 14cm 로 수술도 될지 말지한 상황에서 사촌동생 의사부부가 솔직하게 말해주는 실제 가능한 옵션들의 결론은  끔찍하게 고통받으며 죽게된다는것 이다. 단지,그 시기만 얼만큼 연장이냐 얼마나 덜 고통받느냐에 초점이 모아졌다.


애초, 인간의 의료기술에 특별한 매력을 못느끼는 나는 미련없이 그런 상식적인 데이터와 진단들을 무시하기로 했다. 어차피 결론은 육개월 정도 시한부에 그 기간동안 얼마나 더 고통받을지를 결정하란 얘긴데..그런 웃기지도 않은 선택지가 맘에 들리가 없다.


병원에 입원하라는 집안식구들과 한달 가까이 전쟁을 벌인끝에 결국 식구들에게서 간신히 죽은사람 인증을 얻어냈고 드디어 자유를 얻었다.



자연속에서 혼자 생활할수 있는 자유.. 병원에서 주사바늘 꽃이로 고통받으며 생명을 연장하는것이 별다른 의미가 없다고 판단했기에 나는 의사들이 말하는 방식과 정반대의 길을 택했다. 이미 가족력으로 할머니 이모 외삼촌등이 암으로 의사말대로 수술과 항암 치료받으면서 끔찍하게 고통받다 결국은 미라같은 모습으로 죽음을 맞이한것을 몇번이나 눈으로 보았기에 내가 그길을 똑같이 갈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내 스스로 움직이고 여행하면서 태어나 처음으로 누려보는 시골의 맑은공기, 수돗물 대신 천연 게르마늄 풍부한 지하수를 마시고 라면 담배등은 가급적 자제하려고 한다.



내가 추구하는 목표는 단순하다. 철저하게 망가진 몸의 지연치유 면역체계를 다시금 되살리는 것이다.


그리고,  6개월 정도라는  시한은  지나가고 있고 스스로 제대로 된 음식을 만들지 못하는 나는 맛있는 음식을 먹기위해 오지스런 시골에서 40킬로 거리를 매일 밥사먹으로 다니면서 하루종일 먹는 고민을 한다.


70킬로 였던 몸무게가 50킬로로 자연 다이어트 된것만 빼면 술과 담배에 찌든 예전보다 훨씬 기분도 좋다. 이미 몸은 세계적 발레리나 몸매가 됐으니 발레만 배우면 된다고 농담하는 무한 낙천적인 내 반응에 주위사람들은 혀를 내두르지만 나에겐 지금의 내 상태가 진짜로 전혀 심각하지가 않다.


예전엔 통증을 무시하고 쌩까면서 불통으로 살아왔지만 지금은 통증을 받아들이고 조절하는 법을 배우면서 몸과 조금씩 소통의 창구를 만들며 친해지고 있는중이다. 통증을 접하면서 죽음을 오락가락 하기를 몇번 겪고나니 그것도 나름대로 적응이 돼며 아무렇지도 않은 일상이 돼어버렸다. 정말 아플땐 이러다가 죽는거구나 생각들고 죽음이 얼마나 힘든 선택인지 깨닫게 된다. 왼만한 인내심 가지고는 죽음으로 가는 고통을 참지못한다. 결국 본능은 삶을 선택할수밖에 없다. 그 당시 상황에서 의사들이 해줄수있는 유일한 처방이라는 진통제 같은것은 생각해 본적도 없다. 지금의 사태가 몸의 자잘한 신호들을 무시해서 발생한 것인데 이런 상황에서도 진통제나 마취로 신호를 외면한다는것은 끝까지 몸과 소통을 포기하고 죽음을 선택한다는 의미와 다를바 없다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고통만 없다면 삶과 죽음 경계를 오락가락 유유자적 하는것도 재미있는 일이지만 죽음에 대한 호기심은 고통앞에서 사라지게 돼어있다. 아파본 사람만이 그 고통을 이해할수 있다. 대부분 의사들은 자신이 환자와 같이 아파본적이 없고 환자의 고통을 지식으로만 알지만 나는 죽음으로 가는 고통을 느껴서 알고 그것을 참지못하기에 삶을 선택해 지금처럼 남들보기에 아무렇지도 않은 유유자적 삶과 죽음의 경계선을 산책하는 삶속에 있는것이다. 만약에 아무런 완치의 희망이 없으면서 고통만이 지속되는 거라면 차라리 죽는것이 더 나을수 있다라고 생각한다. 안아플거란 희망이 없는 고통속의 삶은 곧 지옥이니까..


오직 숨쉬고 살아가는것만 신경쓰면서 잡스런 고민들을 안해도 되니 맘이 이렇듯 느긋한적이 이전엔 없었다. 돈과 명예 사랑 성공 이런것들이 건강과 죽음앞에서는 아무런 힘도 유혹도  발휘하지 못한다. 사형선고를 받고 자연스례 사회와 단절되면서 내안에 숨겨진 나를 만나는 즐거움은 도를 닦아본 사람만이 이해할수 있다.



구정을 맞아 몇달만에 집에 돌아왔다. 제대로 된 식당도 없는곳에서 요리도 못해 제대로 먹지 못했던 한을 풀기위해 부지런히 맛있는것들을 찾아먹을 생각이다. 입맛이 없고 음식먹는게 귀찮아 하루종일 생라면 하나를 뜯어먹기도 했으니까..


나는 혼자있으면서 내 입맛이 엄청 유별나고 까다롭다는것을 드디어 인정하게 되었다. 똑같은 음식이라도 식당에서 싸와서 집에와서 먹으려하면 먹어지지가 않는다. 그 분위기에 그접시가 아니면 하루종일 굶어도 먹을 기분이 나질 않는다.이상하게 내가만든 음식은 정말 맛이 없다.도저히 먹을만 하지가 않아 몇달간 '나는 자연인이다 ' 흉내를 내면서 자연식 만들어 먹는걸 시도했지만 번번히 재료만 버리고 실패해서 인스턴트 음식으로 다시 회귀 하기도 했다가 결국은 40킬로 거리를 운전하고 나가서 백반 하나를 사먹고 들어오는게 낫다는 결론을 냈다.그리고 지금껏 그렇게 하루한끼 사먹고 들어오는게 일과가 돼 버렸다. 당연히 살이 찔리가 없다. 175키에 50킬로 몸무게에서 10킬로만 더 살이 붙어줬으면 하는게 지금의 내 바램이다. 대부분의 암환자가 암세포 때문이 아닌 항암 후유증으로 인한 면역체계 파괴와 영양실조로 목숨을 잃는다는 말을 절실히 실감한다..나는 기존의 의료치료와는 담을 쌓고 어떠한 약물치료도 전혀 받지않으니 부작용은 걱정할것이 없고 오로지 먹지못해 생기는 영양실조를 경계하기만 하면 된다.


집에 오니 모든 음식들이 맛있다..한달간 , 열심히 먹고 다시 재충전해서 이제는 나의 실제 보금자리가 돼어버린 자연속 시골 황토 보금자리 한옥으로 다시 내려가야 겠다..


이제 슬슬 시골 요양 초보티도 벗고 날씨만 좀 풀리면 좀더 부지런하게 잘 숨쉬고 여행도 다니며 여유롭게 살아갈수 있을거란 생각을 한다. 그 누구의 말보다도 나는 이미 끝장을 봤지만 아직까지 내 육체의 자연회복력을 믿는다.이미 어릴적 뇌막염으로 의사들이 곧 죽는다던 육체를 약을 끊고 스스로 재건했던 경험도 있기에...그 이후 병원 근처도 안가볼 정도로 여지껏 40년 이상을 잔병치례 조차 없이 살아왔다. 이제 수십년 마구 굴리며 쓸만큼 쓴 육체를 이번을 계기로 수리 복구 재건할때도 됐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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