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의 버킷리스트, 애증의 인격 형성지 재방문
이번 주 금요일, 5월 23일에 송도에 다녀왔다. 그곳은 내가 중고등학교를 졸업한, 내 실질적 인격 형성지다. 그래서 스무 살에 그곳을 떠난 이후 내 버킷리스트 중 하나는 '스물 다섯쯤 되어 차를 끌고 송도에 드라이빙 가는 것' 이었는데, 떠난 지 7년이 지나서야 찾아가볼 수 있게 됐다.
차에서 내려 가장 먼저 간 곳은 출신 중학교 앞이었다. 주차장이 하필 그 시절 집에서 학교 가던 길목에 있어서, 이참에 학교부터 찾아가기로 했다. 눈에 익은 아파트 단지들을 지나 학교로 향했다.
학교가 가까워지자 어디선가 앰프 소리가 들렸다. 내 모교가 있는 블럭의 중학교, 일반고, 초등학교, 자사고 중 어디에서 나는 소리일까 싶었는데 웬걸 우리 학교 체육대회 소리였다. 그치 5월 말이면 체육대회 하지. 형형색색 반티를 맞춰 입은 아이들을 담 너머로 지켜보며 모두들 행복하길 바라던 와중, 담장 밖에서 아이들을 지켜보는 어머님들이 보였다. 나 때도 중학교 체육대회에 어머님들이 오셔서 봤었는지는 가물가물한데, 내가 기억하는 내 성장기의 필수요소가 이런 '어머님들의 열정'이었던 지라 그마저도 묘하게 그 시절 같았다.
앰프 소리를 들을 만큼 들은 다음, 길을 건너고 에어팟을 꺼내 김범수와 박효신의 '친구라는 건'을 틀었다. 굳이 그 노래가 생각난 이유는 아무래도 그 시절에 결여된 것이 떠오른 탓이었을까? 걷는 내내 김범수 노래를 계속 틀었던 걸 보면 그 이유가 맞는 것 같다.
https://youtu.be/i-FfSork2dU?si=jmgTan8r3tCnLQpa
그 시절 하굣길을 걷다가 울컥했다. 듣는 노래가 슬퍼서 그런 건 아니었다. 어차피 울어도 볼 사람도 없는데, 응어리가 쌓이는데 눈물은 나지 않았다. 지금 써야 할 눈물을 그 시절에 다 써버린 것 같다.
내게도 매일 밤, 혹은 매일 낮 울던 시절이 있었다. 12년 전, 그 길을 매일 걸어다니던 시절에 그랬다. 분명 소속이 있는데 그곳의 구성원으로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못했다. 공기 속에 은은히 퍼져 있던 냉대의 기운을 매일 마주해야 했는데, 그런 고통이 존재한다는 걸 알아주는 사람이 없었다. 나조차도 그런 기운을 애써 무시하려 할 때면, 나를 밀어내는 적의를 명확하게 느끼게 해주는 사건이 꼭 생겼다. 그나마 나를 받아들여주는 소수가 생기기는 했지만, 거기서도 튕겨나오는 순간이 그 중에서도 가장 힘겨웠다.
언덕도 없고 복잡한 골목도 없는, 20분도 채 되지 않는 그 거리가 그때는 그렇게 길었다. 그때 늘 고개를 숙이고 휴대폰을 보며 걸어서 목과 어깨가 굽었다. 그때도 맨날 어깨 펴고 다니라는 잔소리를 들었지만, 보고 싶은 게 현실이 아니라 휴대폰 액정 속에 있는 걸 어떡해. 내게는 살아서 그 시간을 빠져나오는 것이 투쟁이었는데, 무사히 빠져나왔는데도 그 과정에서 잃은 것이 가끔 뼈아플 때가 있다.
길에서 사진을 찰칵, 찰칵 찍었다. 없던 건물이 생겨서 풍경은 바뀌었지만 여기 살던 시절 찍던 것과 각도는 똑같았다. 휴대폰으로 풍경 사진 찍는 습관이 이때 처음 들었는데, 좋아하는 구도가 변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 동네는 맑은 날에 카메라 들고 어지간히만 찍어도 그림이 나오는 데라, 여기서 사진 찍는 버릇이 드는 건 당연한 거다.
보면 알겠지만 이 큰 길, '컨벤시아대로'는 한가운데에 여러 나라의 국기가 걸려 있다. 이 도시 사람들은 그만큼 '국제'에 진심이라 국제학교, 해외 대학, 외국계 기업, 국제기구를 유치하고는, 국제는 커녕 업무지구도 없는 맨땅에 '국제업무지구역' 을 지었다. 그 역 근처에 아파트 단지가 들어온 건 내가 송도를 뜨고 나서의 일이다.
이 도시는 지금도 그 이름과 열망에 비해 국제도시가 덜 됐다. 내 학교생활은 이 도시의 미진했던 국제화 현황보다도 더더욱 국제적이지 못했다. 2010년대에 칼단발 두발규제를 하고 수업 시간에 떠들면 단소로 손바닥을 때리는 것이 국제적이었는지는 의심스럽다. 공동체를 감시와 처벌로 통제하는 어른들과, 그걸 보고 배워 서로가 서로를 통제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뭐가 국제적일까. 내게 '국제'의 덕목보다 깊이 새겨진 건 모순을 느끼고 비웃는 본능이었다.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찾아간 곳은 바로 이 거리였다.
https://youtu.be/z-rftpZ7kCY?si=bH92-MsUvzFqOCSo
https://youtu.be/N6ndPiblDPg?si=JDS5tb4lTc1cExAG
https://youtu.be/M8GUlNNXBVg?si=OPih1A9wA62kPbgr
저 건물 사이는 내가 살던 시절 이 동네에서 가장 많이 영상 매체에 나오던 곳이었다. 정확히 어디인지 눈 감고 찾아갈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막상 가보니까 똑같은 앵글을 만들려면 생각보다 공이 많이 들어갔다. 다 도로 통제하고 가운데에서 찍은 것들이라 그런가?
영상 아래에 두 개는 그곳에서 내가 가장 각별히 사랑한 사람들과 음악들이다. 살아있기 위해 가장 열심히 투쟁하던 그 시간은 동시에 무엇인가를 가장 열심히 사랑하던 시간이기도 했다. 성인이 되어 오랫동안 떠났는데도 그 시간의 흔적은 이후 많은 일들의 밑바탕이 되어 지금까지 나를 밀어올렸다. 5년 정도는 뒤 돌아보지 않고 살다 한번 찾아오고 싶다던 소원도, 이후 그 소원을 달성할 수 있게 했던 기반도 전부 이곳에서 나왔다.
그래서 영원히 그립지 않을 시간에, 한번 감사를 보내고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