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아침 9시 30분, 눈을 뜨자마자 김영대 평론가님의 부고를 들었다. 오랜만에 아무 일정 없는 휴일이니 아무도 만나지 않으려던 계획은 그렇게 없어졌다.
한국에서 대중음악에 대한 글과 말을 찾아보는 사람이라면 아마 김영대라는 이름을 대부분 알았을 것이다. 그 분은 지금 현 시점 한국에서 가장 큰 규모의 대중음악을 가장 큰 창구에서 말하는 사람이었으니까. 워낙 큰 창구를 많이 드나드는 사람이었다 보니 굳이 음악평론을 찾아보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라디오 방송이나 유튜브 컨텐츠에서 그를 스쳐지나간 사람도 많았을 것이다. 글을 본격적으로 쓰기 이전 내가 그 분에 대해 가진 인상도 그랬다.
그 분의 글과 말을 다시 보게 된 것은 내가 공식 결과물을 발표하게 된 뒤였다. 내가 속하게 된 웹진의 히스토리를 공부하며 평론가님의 글들을 여럿 돌아보게 되었는데 그 대부분이 재미와 깊이가 보장되는 글들이었다. 그 분이 나온 영상을 돌려 보고 쓴 책을 사 읽으며, 세부 분야를 가리지 않고 넓이와 깊이를 전부 잡아내는 공력을 신기하게 생각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분의 시야는 더욱 신기하게 느껴졌다. 그 분은 미국에서 미국 음악을 공부하며 얻은 식견을 적극 활용하면서도, 자신이 발 붙이고 사는 한국의 음악과 음악인을 언제나 존중했다. 록의 시대에 성장하고 힙합을 다루는 사람들과 어울렸지만 기획형 아이돌을 다룰 때도 이 산업과 종사자를 존중하며 그를 기반으로 가치 있는 이야기를 하기 위해 노력했다. 일관된 취향을 유지하는 동시에 다양한 종류의 탁월함을 잡아내는 능력도 돋보였다.
무엇보다 가장 놀란 것은 그 분이 '큰 음악'을 대하는 자세였다. 그 분은 대중적 지명도가 큰 음악을 토픽으로 삼아 거기서 가치를 논하는 데에 주저함이 없었다. 큰 창구에 나가 유명한 음악을 다룬다고 해서 그것이 무작정 시류에 영합하는 일만은 아님을 보여주는 명확한 예시가 되어 주셨는데, 날이 갈수록 필자로서 큰 음악을 잘 다루고 싶어졌던 내게 큰 음악을 다루면서도 전문가다울 수 있음을 보여주신 그 분의 행적은 큰 귀감이 되었다.
나는 김영대 평론가님의 시야를 따라가는 독자이기도 했고, 그 분과 멀지 않은 거리에 있는 동종 분야 사람이기도 했다. 한 다리 건너면 만날 수 있는 분이었고 웹으로는 종종 대화를 나누었지만 실제로 얼굴을 마주 뵌 적은 없었다. 워낙 큰 창구를 많이 드나드는 분이다 보니 그런 분과 그리 멀지 않은 자리에 있다는 게 신기하기도 했고, 세상이 좁다는 게 보여 무섭기도 했다.
그 분의 말과 글을 가장 열심히 챙겨봤던 건 올해였다. 친구의 강권으로 앰플리파이드 팟캐스트를 알게 되어 이것을 매주 수요일 저녁 밥친구로 삼았다. 음악을 깊이 있게 다루는 콘텐츠를 오랜만에 주기적으로 챙겨 보게 되었으니 당연히 할 말이 생기지 않겠는가? 이 콘텐츠 후기를 이리 저리 남기면서 점점 음악에 대해 할 말이 늘어나기 시작했는데, 올해 글을 다시 열심히 쓰게 된 것이 음악 콘텐츠를 주기적으로 보게 된 것과 무관할 것 같지 않다.
크리스마스 이브 저녁에도 앰플리파이드 팟캐스트를 봤다. 이 회차는 20세기에도 마치 21세기 아이돌처럼 음악을 통해 아이덴티티를 철저하게 구축하던 윤상과 박창학의 모습을 담았는데, 그 분이 워낙 윤상을 좋아하던 분이니 애정만큼이나 탁월한 시각을 보여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콘텐츠를 소개해준 친구와 감상을 나누며 크리스마스 이브를 보냈다.
그래서 부고가 더 믿기지 않았다. 어제 영상으로 뵈었던 그 분이 왜 지금 가신 거지? 집에 두고 온 책이 생각났다. 친구의 강권으로 댓글 이벤트에 참여했다가 당첨되어 <더 송라이터스> 사인본을 지난 주에 받았는데, 주말에 이 책을 부모님 댁에 가져갔다가 한 쪽도 못 읽고 그대로 두고 왔다.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한 쪽이라도 읽어보는 거였는데.
빈소에 다녀온 지금도 이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그 분을 기억하는 많은 분들과 함께할 수 있음에 감사했지만, 그렇게 많은 사람을 슬퍼하게 만들 분이었다면 애초에 지금 떠나지 않는 게 좋았을 것 같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너무 추웠던 건 아마 날씨 때문만은 아니었겠지.
부디 그곳에서는 평안하시길.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