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녕 고기를 전혀 먹지 않는가’에 대한 대답
비건지향이라고 해서 온전한 채식을 실천하는 건 아니다. 사람에 따라 그 범위는 다를 테고, 적어도 사사로운 탐욕을 생명체의 생사에 앞세우지 않겠다 다짐한다.
연말을 지나면서부터 몸이 부쩍 안 좋아졌다. 물론 지난 한 해에 걸쳐 꾸준히 쇠약해진 것이겠지만, 반년의 시간을 지날 때까지는 피로 이상의 심각함을 느끼지 못했다. 가장 먼저 알아차린 건 몸무게의 변화였다. 규칙적으로 운동하러 가기 어려운 상황에 놓이면서, 운동을 잠시 그만두었으므로 근육이 빠져나갈 줄은 알았지만 6개월 동안 2kg(그리고 1년 이상 지난 지금은 4kg)이나 빠질 줄은 몰랐다.(그게 다 근육이었다고 생각하면 기분 좋은 일인가..?) 또한 근육이 사라진다고 해서 이토록 무력해질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딱히 어렵다고 느끼지 못했던 작은 일조차 힘겨워졌고, 하고자 하는 의지가 생기지 않았다. 이때까지만 해도 다시 운동하면 해결될 문제라고 생각했다. 루틴을 쌓아올리는 힘에 강력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기에 무너진 규칙성만 바로잡으면 될 거라 짐작했다. 하지만 사지에 힘이 빠진다는 느낌은 어쩌면 손발끝까지 혈액이 미치기 힘들다는 신호였던 걸까. 서두른 건강검진에서 저혈압이 나왔다. 걱정어린 간호사의 눈빛에 비해 대수롭잖아 하는 의사의 반응에 ‘심각한 정도는 아닌가?‘ 방심할 무렵, 일주일 동안 저혈압 쇼크가 세 번이나 찾아왔다. 저혈압일 때는 사력을 다해 일상을 지켜내야 한다는 걸 오랜만에 실감했다. 단순히 오래 서있기만 해도, 잠이 조금만 부족해도, 물을 섭취한지 오래되면 숨이 가빠지고 눈앞이 흐려지며 식은땀이 흐르는 것이 저혈압 쇼크였다. 1시간 남짓의 이동 시간조차 두려워지고 증상이 가라앉는 데만도 한참의 시간이 필요한 지경이 되자 모골이 송연해졌다. 대체 어디까지 체력이 바닥난 것인가, 혹시 다른 어딘가가 안 좋은데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닌가. 그러고 보니 언제부턴가 입맛도 잃었다. 체력을 다지려면 먹는 것이 우선인데 마땅히 먹고 싶은 음식도, 예전처럼 음식을 먹으며 즐겁다거나 더 먹고 싶은 마음도 들지도 않았다. 허기가 성가시고 씹는 일이 귀찮을 정도로 입맛이 없었다.
육식에 길들여진 주위 사람들은 그 이유를 ‘식단’에서 찾고 싶어 했다. 하지만 2년 반 동안 천천히 채식의 범위를 넓히며 운동을 병행해온 시간을 돌아보관대, 그 시절은 내 인생에서 가장 근육이 많고 체력이 좋은 때였고, 그래서 다른 스포츠에 도전하는 데도 두려움이 없었다. 잠을 설치는 일도 없었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많이 먹었으며 생에 대한 의지가, 무엇이든 못할 것이 없다는 자신감이 가장 높은 때였다. 그야말로 심신이 모두 건강한 때였다. 그렇다면 심신의 근간을 뒤흔들 수 있는 건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무더운 여름날 남자친구와 지난한 실갱이를 벌이던 나는 그제서야 깨달았다. 강한 자기 통제 습관이 억눌러온 뭉근한 스트레스를.
스트레스를 인지하지 못했던 건 아니다. 단지 스트레스를 이겨내고 싶었고, 견디기만 해도 스트레스에 대한 대항력이 길러지고 감당할 수 있는 범위도 넓어지리라 믿었다. 그래서 꼿꼿이 버텼다. 그러나 스트레스는 견디는 것이 아니라 해소되어야 하는 것이었다. 스트레스는 시간이 흐르며 자연스럽게 휘발되는 것이 아니라 몸 속 군데군데로 서서히 퍼져나가는 암 덩어리와 같았기 때문이다. 특히 스트레스가 지속적으로 발생할 경우 암과 더욱 닮은꼴이 된다. 어마무시한 속도로 퍼지며 나를 집어삼키고 삶을 뒤흔드는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잘 통제되고 있다고 믿었던 스트레스에 도리어 휘둘리고 있던 셈이다. 어쩌면 스트레스를 억누르던 그때 내가 알아야 했던 건 지지 않기 위해 버티는 것이 아니라 실패를 받아들일 때 더 큰 성장을 이룰 수 있다는 사실이 아니었을까.
건강을 되찾기 위해 나는 기초 공사부터 다시 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나 당장 루틴을 되돌릴 여건은 되지 않았고, 그만한 기력도 없었다. 그래서 원인이 아닌 해결방법으로서 식단을 고민하게 되었다. 다시 말해 내 건강을 저하시킨 원인으로 채식을 문제 삼는 게 아니라, 더 빠르게 회복할 방법으로 육식을 병행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육식의 성장성은 대단하다. 식물성이 점진적이라면 동물성은 폭발적이다. 육식이 과하면 살이 찌는 이유도 이때문이고, 동물성 성분이 암 세포의 성장마저 촉진한다는 연구 결과가 더러 있다. 그래서 발육이 완료된 어른에게는 육식이 필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다. 일반적인 성인은 건강을 유지할 만큼의 영양소만 섭취하면 되고, 먹을 것이 풍요로워진 현재는 기본적인 식단만으로도 영양소가 충분하다. 반면, 아직 기본 골격이 완성되지 않은 유아나 노화나 질환으로 체력이 급격히 떨어진 노인, 환자 들에게는 소량의 육식이 기력 보강이나 회복에 도움이 되리라는 데에 동조하는 편이다. 그러한 관점에서 나 자신을 ‘경증 환자’로 상정하고, 회복의 탄력을 받기 위해 육식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많은 사람들이 채식을 하다 육식을 만나면 눈이 반짝이고, 군침이 싹 도는 줄 알지만 사실 이마저도 쉬운 일은 아니다. 육식을 병행한지 두 달 만에 채식만큼이나 육식이 다짐만으로 되는 일이 아님을, 나는 뼈저리게 깨달아야 했다. 익숙해진 채식 생활과 약해진 체력은 육식을 소화시키기 힘겨워 했다. 이따금 별생각없이 채식하듯 우걱우걱 고기를 삼키다 소화불량에 시달리기 일쑤였다. 그러자 식사가 두려워졌고, 그러니 입맛이 생길리도, 살이 오를리도 만무했다. 그렇다고 금세 포기하고 안락한 채식으로 도망가 비실거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정상 체력과 체격을 회복할 때까지는 어떤 방법이라도 찾아봐야 했다. 시행착오를 거쳐 요즘 시도하고 있는 식단은 60%의 채식과 40%의 육식을 배합해 먹는 방법이다. 내 몸이 받아들이지 못하는 걸 안 이상, 육식 위주의 식단은 가급적 하지 않고, 하던 대로 채식 중심으로 먹되 육식을 조금씩 곁들여 보는 것이다. 덩어리 고기가 힘들면 계란이나 생선을 먹는 정도로 한정한다.
여전히 효과는 눈에 보이지 않고, 이게 정답일지, 적어도 나를 위한 정답일지 장담도 못하겠다. 체질마다 맞는 식단이 있다곤 해도 동물성은 줄일수록 개인의 건강에도, 전체의 생명에도, 환경에도, 지구에도 도움이 된다고 믿어왔기에, 채식을 시작하던 그날처럼 내 신체를 활용한 실험은 계속되고 있다. 그리고 이렇게 헤매고 있는 나 역시 오랜 채식생활을 한 분들이나 채식을 주장하는 의사들의 의견도 너무 궁금하다. 체력과 면역이 떨어져 허우적거리는 이들도 과연 채식만으로 회복할 수 있는 건지. 솔직히 빨리 낫고 싶은 마음이 앞서기 마련이며, 고통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도리어 만성 질환을 불러올 것 같은데, 점진적 회복을 가져온다는 채식으로 정말 괜찮은 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