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도로 향하던 날.
떠나기 전 날 일기예보 보니 전국적으로 비예보.
게다가 전국 바닷가에 풍랑주의보까지 여러 군데 보이니 여행을 떠나려 하는 마음이 좋을 수만은 없었다.
서울에서 시간을 내어 한번 가기 쉽지 않은 먼 섬 여행인지라 바다 날씨가 따라 주지 않으면 배 문제부터 시작해 폭망 여행이 될 수도 있으니까.
자고로 섬 여행이라 하면 여유로워야 제맛인데, 출발부터 이리 맘 편하지 못해서야 원.ㅠㅠ
어쨌든 주중에 쌓였던 피곤도 풀어야 하고, 운전도 해야 하니 잠을 충분히 자야 하겠기에 오전 늦은 시간까지 자고 일어나, 점심때가 되어서야 출발하여 먼 해남 땅을 거쳐 완도항에서 청산도행 마지막 배를 탔다.
배가 안 뜰까 봐 걱정했으나 오히려 전산 시스템 고장 문제로 지체.
표를 끊는데도 한참을 기다리다가 터미널까지 이미 저리 뛰어다닌 끝에 겨우 자동차 선적 성공.
완도항에서 청산도 도청항까지는 50분의 바닷길이었는데, 가는 도중 파도가 어느덧 거칠게 높아지기 시작하여 배가 흔들흔들거렸다.
그래도 다행이다..
주말을 낀 1박2일의 짧은 4월 여행을 계획하고 있었는데.. 먼데까지 가서 배도 못 탔으면 얼마나 안타까왔을까? 어쨌거나 다행히도 배를 탔고, 결국 해가 떨어지고서야 청산도에 도착했다.
(결국 날씨에 발이 묶여 제때 나오질 못해 2박3일이 여행이 되어 버렸지만, 그래도 당일 섬에 들어간에 어딘지 싶다)
비예보가 있어 마음을 내려놓았지만, 그래도 적당한 운이 따라주기를, 그리고 무사히 예정대로 뭍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기원하며 청산도에 발을 내 디뎠다.
천천히 걷는 길이라 하여 슬로 길이 있는 청산도.
도착하자마자, 민박집부터 알아보려 하였으나, 우선 제1 코스 슬로길에 있는 서편제 주막에 들러 도락리와 섬 주변의 야경을 내려다본다.
배 시간 때문에 슝슝~ 달리며 지나쳐왔지만, 봄을 맞은 해남 땅은 아름다웠고, 청산도에 들어와서 야경부터 보게 됐지만 좋았다. 아직 다 지지 않은 동백꽃이 달린 동백나무가 주막 마당에 예쁘게 서 있었네.
그리고 청송 지리 해변가로 가서 한적하고 소박한 민박집에 짐을 풀었다.
2층의 방을 내어 주셨는데, 한적한 바닷가에 어울리는 그 소박함이 정겨웠던 민박집이었다.
이곳은 일몰이 아름다운 바닷가라지만, 이미 일몰이 지난 후 섬에 들어왔기 때문에 야경을 본 것으로 만족하고, 내일의 일출을 위해 비교적 일찍 잠들었는데, 몇 시간쯤 자고 일어났을까?
그렇게 문득 깨어 일어 나, 달빛에 빛나는 바다의 소리를 들었다.
문득, 이곳의 삶이 내 것인 듯한 착각이 드는 소박하면서도 운치 있는 평화의 느낌.
순간 내가 나그네인지 아니면 하루 단위로 생활이 리셋되는 한가한 시절의 이 동네 아낙인지 헷갈릴 것만 같은 그런 느낌....
현실 속 섬에서의 삶은, 어쩌면 고단할 수도 있겠지만, 이곳에서의 깊은 새벽 시간은 참으로 고요하고 여유롭게 흐르고 있었다.
#청산도 #배선적시간